同志少女よ、敵を擊て
逢坂冬馬 / 早川書房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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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러시아. 세라피마는 작은 마을 이바노프스카야라는 곳에서 엄마와 함께, 가족 같은 동네 사람들과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농촌이라서 농작물을 해치는 야생 동물이 늘 골치를 썩히기에 누군가는 꼭 사슴을 잡을 필요가 있는 곳이었다. 그때마다 마을 최고의 사냥꾼이었던 세라피마는 주저 없이 사냥에 나섰다. 한창 전쟁 중이었으나 외교관이 되기 위해 독일어를 공부하며 모스크바 대학 입학을 준비하고 있던 세라피마. 자신도 참전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 예카테리나는 참전했다가 일짝 병사한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에게 분명히 말한다. 전쟁은 곧 살인이라고.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정적이 깔리게 되고,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세라피마와 엄마는 급하게 몸을 숨긴다. 알고 보니 마을에 유격대가 숨어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 독일군이 쳐들어온 것. 그들은 저격병을 이용하여 세라피마의 엄마를 죽이고, 마을 사람들 모두를 잔인하게 사살한다. 이후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던 세라피마 앞에 러시아 붉은 군대가 나타나서 독일군을 무찌르고 그녀를 구해주지만, 이리나라는 이름의 상급 상사는 마을을 모욕하고 휘발유를 뿌려 다 태워버린다. 그걸 목격한 세라피마는 결심한다. 독일 병사를 죽이고, 엄마를 죽인 군인을 죽이고, 마지막엔 모두를 모욕한 이리나도 죽여버리겠다고. 슬픔이 분노로, 나아가 적의로 바뀌는 순간, 세라피마는 냉혈한 저격병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세라피마는 이리나가 이끄는 저격병 학교에 배치된다. 그곳은 여성 저격병을 키우는 곳으로써, 대부분의 학생들은 세라피마처럼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혼자가 된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세라피마처럼 복수심을 품고 힘든 훈련을 이겨나간다. 그들이 저격병이 된 이유는 다양하다. 아이들을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 여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싸울 수 있는 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 1년이라는 그다지 길지 않은 훈련을 마친 끝에 졸업하게 된 학생들은 겨우 몇 명. 그러나 실력을 인정받은 이들은 실전에 배치되게 되고 비로소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게 된다. 동료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되고, 이제는 더 이상 사람을 쏘는 일에 머뭇거리지 않으며, 죽을 고비를 직접 경험하게 되는 세라피마.

평범했던 소녀 세라피마는 눈앞에서 엄마를 잃고 마을이 잿더미가 되는 걸 지켜보면서 적들에게 복수할 것을 결심한다. 그 복수심이 어쩌면 훈련을 견디게 해주고 그녀를 일류 저격병으로 만든 동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어떤 전쟁 영화보다도 이 책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가 전쟁을 겪고 있는 상황을 굉장히 생생하게 전달해 주었다. 점점 더 냉혈한으로 변해가면서 거리낌 없이 사람들을 쏘는 세라피마의 모습과 전쟁으로 인해 비참해지는 아이들의 삶을 보면서 전쟁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비극을 낳는 괴물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실제로 러시아 저격병이었던 류드밀라 파블리첸코라는 사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것이라고 한다. 뛰어난 사격병이었던 그녀가 전쟁 이후 심각한 PTSD에 시달리다가 일찍 사망했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 같다. 너무나 사실적이고 현장감이 있었기에 군사 훈련은커녕 군대에도 가보지 못한 내가 이 책을 통해 전쟁이 참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전쟁의 비극과 참상을 정말 현실감있게 묘사하고 있는 소설 [소녀 동지여, 적을 쏴라]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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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마사키 도시카 지음, 이정민 옮김 / 모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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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타인의 불행을 바라는 인간이 돼버렸다 "

미스터리 소설을 읽고 이렇게 큰 여운을 느껴본 지 얼마만인가? 상당히 복잡하게 꼬여있는 실타래였지만, 모든 미스터리가 해결된 후 느껴졌던 감정은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끝까지 고결함을 잃지 않았던 한 사람에 대한 존경심에 가까운 감동이었다. 한 노숙인의 죽음이라는 사건 뒤에는 실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사연이 모여 있었다. 스토리가 굉장히 탄탄했을 뿐더러 캐릭터들의 개성도 빛났던 소설이었다. 괴짜같지만 천재적인 추리력과 통찰력을 가진 형사 미쓰야는 일본판 셜록 홈즈 같았다. 자신과의 소통 없이 언제나 한 발 앞서있는 미쓰야에 대한 신참 형사 가쿠토의 답답함이 종이를 뚫고 나올 것처럼 강렬하게 분출될 때마다 조금 코미디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건물의 비어있던 1층에서 노숙자로 보이는 한 중년의 여성이 죽은 채로 발견된다. 신고자는 그 건물을 관리하고 있던 부동산 회사의 직원. 골반과 늑골이 골절된 것으로 미루어봤을 땐 옥상에서 추락이 의심되었지만, 치명상은 아 마도 둔기에 의한 두부 손상일 것으로 짐작되었다. 입고 있던 옷이 많이 흐트러져있었지만 성폭행의 흔적은 없었기에, 위협을 느낀 피해자가 필사적으로 도망치다가 옥상에서 떨어진 것으로 결론이 내려진다. 사건을 맡게 된 괴짜 형사 미쓰야와 신참 가쿠토 형사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피해자의 삶을 역추적해 들어간다. 그러던 와중에 그들은 1년전 발생한 한 살인 사건 현장에서 남겨진 지문들 중 하나가 그녀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살인 현장에 남겨진 지문 그리고 지문 주인의 죽음... 과연 이 둘의 상관 관계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소설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은 여러 시점과 시간을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여러 사람들의 사연들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면서 펼쳐진다. 살인을 당한 피해 노숙인 여성의 이름은 마쓰나미 이쿠코. 그녀가 평범했던 시절의 이야기가 잠시 등장한다. 바록 자식은 없었으나 남편 히로시와 행복했던 그녀, 그러나 남편이 질병으로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그녀는 혼자 남겨지게 된다. 갱년기 장애로 인한 어지러움증 등으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던 그녀는 생활 보호 대상자 신청을 하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자, 아니면 필연적 결과인지, 이쿠코의 생활 보호 상담을 맡았던 창구의 직원이 바로 1년 전 살인 사건의 피해자였던 히가시야마 요시하루 였던 것. 그는 이쿠코가 신청을 했던 당시 그녀에게 냉정하게 굴면서 신청을 단칼에 거절했던 남자였다. 그것이 이유였을까? 과연 요시하루를 죽인 사람이 이쿠코가 맞고, 누군가가 이쿠코에게 복수를 했던 걸까?

이 소설 [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은 소설 [그날, 너는 무엇을 했던가]의 속편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전작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피해자 노숙인 여성 이쿠코의 사연에서 히가시야마 요시하루의 아내 리사의 사연으로 그리고 이쿠코의 남편인 히로시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지주막하출혈을 일으켜 쓰러진 사고 현장에 있었던 트럭 운전사 요스케의 사연까지 이야기가 쭉 이어지면서 갑자기 이 미스터리의 실타래가 점점 더 길어지고 점점 더 꼬여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매우 복잡한 미스터리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작가의 훌륭한 필력과 탄탄한 스토리 구성 그리고 계속 여기저기에 뿌려지는 떡밥과 복선 덕분에 매우 흥미진진했다.

책 속엔 정말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묘사되어 있었다. 자신이 벌인 일에 책임을 지지 않고 덮어씌우는 자.. 진실함이 전혀 없이 남자의 손길만 기다리는 여자... 욕망은 그득한데 자존감이 너무 낮아서 스스로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사람.... 책을 다 읽고 나니 정말 삶을 똑바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매우 촘촘하고 정교하게 짜여진 구성, 여러 갈래로 뻗쳐나가는 이야기지만 나중에는 결국 다 회수되는 결말, 개성 있는 두 형사들의 티키타카까지.. 책 [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은 다양한 재미로 가득한 책이다. 알맹이가 탄탄한 미스터리를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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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 학원
배명은 외 지음 / 빚은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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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정은 중요하지 않아. 결과가 중요한 거지.

너도 알잖아. 문제 하나에 순위가 뒤바뀌는 거.”

한 여름의 더위를 없앨 수 있을 만한 으스스하고 소름 끼치는 이야기에 뭐가 있을까? 아마도 머리끝이 쭈뼛 서게 만드는 귀신 혹은 괴담 이야기가 아닐까? 그런데 귀신이나 괴담 이야기보다 더 무서운 현실 공포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극단적인 경쟁과 극한의 긴장감을 겪어야 할 한국 입시생들이 겪는 공포가 아닐까? 한국의 입시생들과 부모들은 적어도 1년은 오직 입시만을 위해 달려가야 한다. 워낙 경쟁이 심한 탓에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는 사람들. 이 책 [괴이, 학원]은 그 지옥 같은 삶을 묘사하고 있다.

첫 번째 단편 [나를 구해줘] 의사 아버지를 둔 지혁은 반드시 의대를 가야만 한다. 하지만 수학 성적이 도통 오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소위 돼지 엄마라 불리는 현수 엄마가 소개해 준 학원으로 가게 되는 지혁. 겉으로 보기에 매우 낡고 으스스 한 학원인 [신명 수학 클리닉]이다. 서울이 아니라 월영시에 있지만 지난 20년간 맡은 학생들 모두 인서울시킨 걸로 유명한 학원이다. 그런데 분명 1 대 1 수업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어느새 수업을 받는 지혁의 옆자리엔 혜진이라는 이름의 여학생이 앉아서 함께 수업을 듣고 있다.

두 번째 단편 [특별 수업] 허름한 논술 학원에서 수업을 받게 되는 " 나 ". 워낙 싫증을 잘 내고 질리는 성격이라 이 학원에서도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학원에 뭔가 끌리는 게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논술 선생님은 주인공이 쓴 글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특별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주인공이 쓴 글에는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행동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게 선생님의 주장이다. 그런데 논술을 배우던 그 시기에 주인공 " 나 "는 잘 모르는 학생들로부터 단톡방 초대를 받게 되고, 그때부터 심한 폭언과 욕설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세 번째 단편 [얽힘] 영서는 친구 은혜와 함께 과탐 특별반에 들어가게 된다.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줄여서 만든 매싸 라는 별명을 가진 원장은 외모부터가 독특하다. 백발 머리에 푸른빛이 나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매싸는 수업 내내 양자 얽힘, 즉 두 입자의 성질이 하나로 묶여 있는 상태에 대해서 강조한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던 그때, 친구 은혜가 자신에게 질투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영서. 은혜는 매싸가 영서에게 관심을 보일 때마다 눈빛이 달라질 정도로 표시를 하는데.. 매싸가 수업 끝에 나눠주는 검은색 알약과 그가 강조하는 얽혀 있음의 비밀.. 과연 무엇일까?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이 책 [괴이, 학원]을 읽다 보니 고3 수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하루하루가 좌절의 순간이었고 성적에 목숨을 걸었던 시절이었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입시 문화가 건재하다는 게 공포로 다가온다. 아무리 뛰어도 항상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있고 그렇게 경쟁에 시달리다 보니 아이들은 잠을 없애주는 약까지 먹으면서 이 입시 지옥을 버티고 있다. 다른 가능성은 모두 배제되고 시험 성적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이 일그러진 현실이야말로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공포의 세계가 아닐까? 도시의 중심부를 장악하고 있는 거대한 입시 학원들... 그 학원들을 바라보며 느낄 현실 공포를 잘 표현해낸 작품 [괴이, 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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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 코드 - 모두에게 익숙한 소년과 처음 만나는 나 사이 생각학교 클클문고
이진 외 지음 / 생각학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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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말투, 성격, 키.... 수백 가지가 모여서 나를 만들지.

그런데 남자다움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 걸까?

" 보이 코드 " 란 쉽게 말해 " 남자다움 "이라는 의미이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남자들에게서 남자다움을 그리고 여자들에게서는 여자다움을 바라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과연 남자다움이라는 게 뭘까?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것, 여자들보다 강해 보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감정을 쉽게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것 등등이 있을 것 같다. 이 책 [보이 코드]는 5명의 작가들이 모여서 그런 '남자다움'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동시에 답하는 이야기라 볼 수 있다. 다양한 작가들이 뭉친 터라 다양한 빛깔과 개성이 돋보이는 단편들이었다. 과연 그들은 '남자다움'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첫 번째 단편 [더블] 주인공 수혁은 180이 넘는 키에 남다른 신체 구조를 가진 남학생이다. 하지만 최근 그를 괴롭히고 있는 문제가 있다. 수혁은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일에 끌렸었다. 예쁘고 멋진 옷을 이것저것 입어본다던가 환하게 핀 꽃들을 구경한다던가 하는... 하지만 그런 일은 모두 여자아이들이나 하는 일! 수혁은 자신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여자 정체성을 없애버리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곤 정체성을 없애준다는 소름 끼치는 의식에 돌입한다. 미미 인형에 피를 묻힌 뒤 거울을 보며 주문을 외우는 수혁.. 그런데 의식을 하고 난 뒤 자꾸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수혁... 과연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두 번째 단편 [맹금류 오 형제]에서 독수리 멤버는 모두 5명이다. 그들은 남 박사의 손에 의해 탄생한 지구 방위대이고, 가장 소년다운 그리고 가장 남자다운 지구 방위대를 만드는 일을 목표로 한다. 멤버들이 타고 다니는 우주선 X 피닉스는 부엉이 용이 조종하고 있는데, 지구의 평화를 해치는 악당 게레로로쉐가 등장하면 그를 물리치기 위해 독수리 멤버들은 X 피닉스와 합체하여 뜨거운 불새로 변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남 박사는 모의실험을 통해 한 단 명만을 불새로 변화시키겠다고 한다. 계속되는 실패로 불새로 변하는 멤버가 없자, 남자 멤버들은 하나같이 정신력과 체력이 약한 여자 멤버 유미를 비난하기 시작하는데....

세 번째 단편 [기둥] 태수는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자신에게 남긴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 아빠가 없을 땐 네가 아빠 대신이다. 엄마와 동생을 잘 부탁한다. 네가 이 집의 기둥이야. " 태수는 장례식에서 아빠 영정 사진을 보며 약속한다. 엄마와 여동생 태경이 자신이 꼭 지켜내겠다고. 이후 태수는 집요하리만치 여동생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점검하고 살핀다. 태경이의 교복 치마가 너무 짧다고 난리 치고, 수업 마치고 스터디 카페에 있는지 확인하는 영상통화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태경의 뒤를 밟게 된 태수, 공원 벤치에 앉아있는 태경과 그 옆 낯선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남자의 손이 태경의 어깨로 올라간 순간 남자에게 뛰어가 주먹을 날리는 태수.. 과연 이 이야기의 결말은?

주로 호러를 담당하는 전건우 작가의 [더블]은 여성성을 없애기 위해 으스스한 의식을 실행하는 수혁의 이야기이다. 공포 전문 작가답게 섬뜩하고 소름 끼치는 분위기를 잘 이끌어냈다. 남자다운 외모와 달리,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수혁이는 과연 마음속 여성성과 화해했을까? [맹금류 오 형제]에서 유미를 제외한 남자 멤버들은 남자들이 흔히 추구하는 명예욕, 권력욕, 지배욕 등등에 휘말리면서 거대한 데미지를 입게 된다. 현실에서도 유독 남자다움에 집착하다가 낭패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재미있는 단편이었다. 세 번째 이야기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집착하는 태수 이야기인데, 다른 단편들에 비해서 좀 훈훈했다. 엄마와 태경이의 안위를 누구보다도 바라는 장남 태수! 하지만 너무 지나친 간섭과 통제로 인해 태경과의 사이가 멀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되는데... 다양한 단편들을 통해서 독자들이 스스로 " 남자다움"에 대한 질문을 하고 답을 찾게 해주는 소설 [보이 코드] " 남자다움"에 집착하기보다는 나 자신으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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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이 돋는다 - 사랑스러운 겁쟁이들을 위한 호러 예찬
배예람 지음 / 참새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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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겁이 없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저도 모르게 비명이 튀어나오고 심장이 뜨거워지며

눈을 질끈 감게 되는 순간이 얼마나 짜릿하고 즐거운지 말이다 ”

책 [소름이 돋는다]의 제목 아래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 사랑스러운 겁쟁이들을 위한 호러 예찬'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그럼 나도 이 '사랑스러운 겁쟁이' 부류에 속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책을 읽은 그 순간부터 나는 " 호러를 사랑하는 동지를 만났다 "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벌벌 떨면서도 [컨저링]이나 [파라노말 액티비티]를 봤다는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경험이 마치 내 경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나의 경우, 평소에는 조그만 벌레도 무서워하는 겁쟁이이지만 호러 장르의 작품들은 그야말로 푹 빠져서 보게 되고 읽게 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나 같은 세상 졸보야말로 호러 장르를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라고 한다.

" 창작자가 의도적으로 설치한 함정에 충실히 빠지고, 숨통을 조여오는 긴장감에 실눈만 겨우 뜬 채로 비명을 지르는 겁쟁이들이야말로, 어쩌면 호러라는 장르를 가장 잘 이해하고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

다양한 호러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하는 책인 [소름이 돋는다]의 내용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얘기하자면, 우선 첫 번째로 2장 : 나를 보는 그 눈, 그 눈! 이었다. 2장에서 작가는 " 시선 " 이 가진 굉장히 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한 설문조사에서 남들 앞에서 장기자랑을 하는 것과 1년 동안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을 때, 나는 당연히 후자를 골랐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그 자체가 정말 공포스러운데, 하물며 귀신의 시선이라니! 특히 영화 [인셉션]을 예로 들면서, 꿈속에서 꿈을 꾼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곳의 모든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뚫어지게 쳐다본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소름이 돋는 상황이라고 본다. 아직까지 그런 경험을 못 해봤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공포는 미지의 상대가 저기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확신에서 온다. (....) 존재한다는 확신과 무엇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불확신의 사이를 능수능란하게 넘나들며, 시선은 우리를 조금씩 얽매어온다 "

4장 : 우리는 누구를 무서워하는가 에서 작가는 우리가 귀신을 상상할 때 유독 비슷한 이미지, 즉 길게 머리를 내려뜨리고, 눈가가 시커멓고 입술은 붉은 처녀 귀신을 떠올리게 되는지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다. 저자는 영화 [장화 홍련] 과 [전설의 고향]의 예를 들면서 당대 사회에서 억압받고 배척당하던 존재가 귀신으로 묘사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은 정절을 지켜야 했고 따라서 자기 주도적인 삶을 전혀 생각지도 못한 존재였던 것. [장화 홍련]에서 남성의 성폭력에 저항하다가 목숨을 잃은 원귀가, 결국엔 사건 해결을 권력을 가진 다른 남성에게 맡긴다는 설정이, 곧 이 귀신들이 유교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했기 때문이라고 가리키는 점이 흥미로웠다. 앞으로는 호러 장르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귀신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들이 결국 현실의 부조리함에 대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억압과 차별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 그들의 이야기가 단순히 재미를 뛰어넘어 설명할 수 없는 씁쓸함과 슬픔을 안겨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위에서 설명한 것 외에도, 5장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괴물들과 11장 우주, 광활한 공포의 세계에서 다룬 내용도 대단히 흥미로웠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무서운 괴물을 사랑했고 그들이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눈을 반짝였다고 한다. 영화 [킹덤]을 보고 빠른 속도로 미친 듯이 뛰어오던 좀비 떼와 영화 [미스티 ]에서 구석에 몰린 사람들에게 긴 촉수를 뻗어서 사람들을 잡아먹던 괴물들.... 그들에게 완전히 매료되어 영화를 봤었다. 그래서 나는 저자가 느끼는 외로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 괴물을 좋아해요! "라고 말하는 순간, 사람들이 던지는 애매한 시선과 지독한 외로움을 견뎌야 했다는 저자. 저자에게 피켓 들고 알려주고 싶을 정도이다. " 여기에 작가님과 똑같은 사람 1명 추가요! "

본격 호러 세계 안내서인 [소름이 돋는다]는 일종의 에세이이지만 내용이 내용인 관계로 밤에 읽는 것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소름이 돋고 등줄기가 으스스한 느낌을 굳이(?) 느껴보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꼭 여름밤에, 혼자서 읽어보기를 바란다. 무더운 여름밤이 어느새 서늘한 밤으로 바뀌어있을 테니....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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