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 단 한 명의 백성도 굶어 죽지 않게 하라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다르면 다른 대로, 같으면 같은 대로,

조선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

특정 국가가 선진국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기준이 뭘까? 경제 지표를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국민들의 어려움을 잘 살펴서 필요시 적절한 도움을 주는 복지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는 국가가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본다. 조선 시대에도 과연 복지 제도가 있었을까? 과거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 조선의 복지 제도를 면밀히 살펴 본다면 현재 우리 상황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사실 책이나 드라마 속 조선의 모습을 보면 "복지 제도" 가 바로 떠오르지는 않는다. 오히려 탐관오리의 수탈로 고통받는 백성이 모습이 더 익숙하게 다가온다. 얼마나 지배층의 수탈이 많았으면 암행 어사 제도까지 있었겠는가? 하지만 이 책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은 지금처럼 체계적이진 않지만 어려운 백성을 구제하는 복지 제도가 조선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크게 두 개의 장으로 나뉜다. 1장의 제목은 " 조선의 복지 정책은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이고 2장은 " 복지 정책은 그들의 삶을 어떻게 바꿨을까" 이다. 1장에는 굶주리는 백성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 왕과 조정의 모습이 엿보인다. 사실 조선의 통치자는 안녕하지 못한 상태에 있는 백성을 구제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한다. 걸인이나 부랑자들을 '사회 부적응자'로 여기고 강제 노동을 시켰던 서구 국가와 다르게 조선에서는 빈곤층에 대한 인간적인 공감이 우선시 되었다.


대표적인 복지 정책 중 하나는 "진휼" 이었는데, 천재 지변이나 기근과 같은 재난이 발생했을시 재난 지원금을 백성들에게 지급하는 것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긴급 재난 지원금 정도로 볼 수 있을 듯 하다. 추수한 쌀이 다 떨어지고 이를 대체할 보리가 아직 익지 않은 봄마다 일종의 보릿고개를 겪어야 했는데, 조선은 이 시기에 쌀을 빌려주고 추수하는 가을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는 정책을 시행하였는데 이를 "환곡" 이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의 환곡 제도는 국가와 백성이 서로 연대 책임을 지는 사회 보장 제도의 성격이 두드러졌다.


위에서 이야기한 "진휼"과 "환곡"은 수혜 희망자를 대상으로 했지만, 환과고독 (어린이,노인,혼자사는 남성과 여성 등등 일종의 취약 계층)을 위한 복지 정책도 있었다고 한다. 부모를 잃고 아사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관청에서 보호하거나 민간에서 노비로 삼았고, 평범한 노인들을 위한 양로연 (왕과 왕비가 노인 초청하여 음식과 의복제공) 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혼자 사는 남성과 여성을 위해 국가가 직접 '커플 매니저'가 되어 혼인을 추진한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조선은 취약 계층을 돌보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2장에서는 조선의 복지 정책이 과연 실효성이 있었는가의 문제를 따져 보고 있다. 사실 천재지변이나 흉년이 닥쳐서야 복지 정책이 가동되었던 만큼 조선의 복지 정책은 지금처럼 일상적이고 장기적이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사람이 복지 혜택을 받았다는 면에서 결코 유명무실한 제도는 아니었다고도 볼 수 있다. 환곡과 구휼은 양반에서 노비까지 만백성에게 지급되었고 환과고독을 위해 곡식이 지급되고 세금이 면제되기도 하였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기초생활수급자' 제도와도 비교될 수 있겠다.

이 책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은 옛사람들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사료들, 즉 왕에게 올리는 상소나 지방관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서신 등을 다양하게 활용하여 당대 사회의 분위기를 생동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수백 년 전 이야기임에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자기 녹봉까지 털어가며 밤낮없이 일하는 지방관의 모습도 보이고 온갖 탈법 수단을 동원헤 불법적인 이득을 취하는 탐관오리의 행태도 보인다. 책을 읽고 나니, 조선의 복지 제도가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으나 앞으로 우리가 지향할 복지 정책에 대해 영감과 힌트를 제공하는 것 같다. 조선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 책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을 읽고 최대한 솔직하게 리뷰하였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태리 아파트먼트 - 팬데믹을 추억하며
마시모 그라멜리니 지음, 이현경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 당연히 이탈리아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3인 이상 모일 수 없었던 탓에 외출은 상상도 못 했고, 상점들은 문을 닫고 학교는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서로 거리를 두게 되었고 포옹이나 키스 같은 신체적 애정 표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더 끈끈해진 가족이 있었으니, 바로 마티아의 가족이었다.

이 책은 2080년에 할아버지가 된 마티아가 자신이 꼬마였던 2020년 이탈리아의 모습을 이야기로 만들어서 손주들에게 들려준다는 설정이다. 코로나로 인한 봉쇄령 때문에 외출을 하지 못하고 아파트 내에서만 머물러야 했던 마티아의 가족들과 이웃들의 상황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힘든 가운데, 서로에 대한 불신과 오해가 커지기도 하지만 이웃들은 서로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뉴스에서도 한 번씩 보도되었던, 베란다에서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며 서로를 응원했던 장면들이 이 책에 생생하게 묘사된다. 눈물과 웃음 그리고 감동이 있는 소설 [이태리 아파트먼트]

아홉 살 소년 마티아는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누나와 함께 살면서 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다. 하지만 항상 허전함을 느꼈는데,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부재 때문이었다. 아버지 안드레아는 마티아가 3살 때 집을 나갔고 그 이후로 여자 친구와 함께 로마에서 살고 있었다. 마티아는 아버지를 무척 그리워하면서도 동시에 정말 미워했다. 그는 엄마를 슬프게 만들었고, 마티아의 아이스크림 취향도 몰랐으며, 생일 선물을 하기로 약속해놓고 까먹는 한심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티아의 삶에 큰 변화가 발생한다. 이혼 서류에 서명을 하러 밀라노에 온 아버지가 머무르던 호텔이 문을 닫게 되는 바람에 아버지가 잠시 마티아의 집에 머물게 된 것이다. 안드레아는 그동안 소홀했던 것이 미안했는지, 마티아 주변에 맴돌며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며 친근한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마티아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악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가오는 아버지를 계속 무시하면서 집에서 쫓아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마티아.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마티아는 아버지 안드레아의 진면목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그는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자유롭고 애정이 풍부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외출금지령으로 인해 남자 친구를 못 만나게 된 로사나 누나를 위해서 탈출 계획을 세우고,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민트 사탕이 다 떨어지자 먼 거리를 달려가 사탕을 사 오기도 한다. 너무나 인간적인 아버지에게 점점 빠져드는 마티아.... 이제는 아버지가 조금 더 머물러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데!! 아뿔싸! 아버지가 다시 로마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마티아는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데...

소설 [이태리 아파트먼트]는 꼬마 마티아의 성장 스토리이자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사랑을 지켜나갔던 한 가족을 이야기한 휴먼 드라마이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한동안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던 마티아는 코로나로 인한 봉쇄 기간을 계기로 잃어버렸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해 나간다. 아슬아슬해 보이기는 하지만 모래알처럼 흩어져있던 가족 관계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을 보는 게 참 좋았다. 힘든 상황 속에서 더 빛을 발하는 가족의 사랑, 그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준 착한 소설 [이태리 아파트먼트]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최대한 솔직하게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드비히 베멀먼즈 일러스트레이터 4
퀜틴 블레이크.로리 브리튼 뉴웰 지음, 황유진 옮김 / 북극곰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시대를 통틀어 굉장히 중요한 일러스트레이터 "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그림들이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친근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그림들이라고 할까? 흔한 듯 흔치 않은 이런 그림들을 찾아내기가 힘들다는 게 문제인데, 일러스트레이터 루드비히 베멀먼즈의 손끝에서 탄생한 그림들은 매우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독창적이고 생생하다.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 일상을 새로운 각도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루드비히 베멀먼즈는 매우 독특한 삶과 예술 세계를 구축한 사람이다. 아버지가 호텔 가문의 일원이었던 그는 1898년 호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던 까닭에 부모가 일찍이 이혼을 하는 바람에 그는 질풍 노도의 아동기를 보내야 했다.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그는 열두 살의 나이에 호텔을 운영하는 삼촌 밑으로 가게 되었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호텔 일을 하게 된다.


호텔은 그가 화가와 작가로 발전해나갈 수 있는 기본 터전이 되어주었다. 호텔을 드나드는 다양한 고객들과 거기서 벌어지는 상황들이 그가 그리는 그림의 풍성한 소재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호텔 고객들을 주로 그려서일 수도 있겠지만 루드비히 베멀먼즈의 그림에는 들뜬 관광객이 그리는 듯한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는 어릴 때부터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거기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오스트리아 출생이지만 프랑스 출신 가정 교사에게 교육을 받았고 부모의 이혼 이후 독일에 살다가 열여섯이 되던 해에는 아버지가 있던 미국으로 가게 된다.

루드비히 베멀먼즈가 그린 그림의 특징은 여유롭고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하다는 것이다. 여행하면서 사진 찍듯이 풍경을 기억해 놨다가 스케치북에 빠르고 생생하게 그린 스케치들이 많다. 그림들이 격식을 차리거나 무게를 잡지 않고 주로 호텔과 거리 풍경을 그려서인지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하면서도 매우 자연스럽다.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곳에서 관찰하다가 영감이 번뜩이는 순간 잡히는 데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다소 낙서 같은 느낌이 없지 않지만, 단순함이 오히려 매력적이고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1939년에 드디어 [씩씩한 마들린느] 가 출간되면서 마들린느 시리즈가 시작된다. 루드비히 베멀먼즈는 " 마들린느가 태어나겠다고 했어요." 하면서 마들린느라는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스스로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아마도 어릴 적 프랑스인 가정 교사의 손에 길러졌던 것과 아내인 마들린느 프로인드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고 본다. 여하튼 이 책은 전 세계 어린이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아마도 단순한 문장을 사용했고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거나 감상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책에서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출간 즉시 1940년 칼데콧 명예상을 받기도 했다.

루드비히 베멀먼즈는 평생 동화책을 만들고 그림을 그렸지만, 스스로를 삽화가라는 테두리에만 가두고 싶어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였다. 그는 삽화 외에도 만화, 잡지 표지, 광고 그림 등도 그렸고 훗날에는 영화 각본과 에세이를 썼고 유화에 도전하기도 했다. 유화를 그릴 때 비록 힘들어하긴 했으나 화가로써의 입지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본다. 우스개 소리 같긴 하지만, 나중에 " 내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건 얼마 남지 않은 은행 잔고랍니다."라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상업적인 부분도 이 화가의 입지를 넓히는데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의 마음을 잊지 않았던 루드비히 베멀먼즈. 아이들의 동화책을 고민하는 모든 엄마들에게 그가 펴낸 동화책 [마들린느] 시리즈를 추천해 주고 싶다. 아이들의 마음으로 걸어들어가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면에 끌리는지를 정말 잘 아는 사람의 작품으로 보인다. 작가 스스로도 자신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6살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고 한다. 너무나 따뜻하고 친근하여 마치 내 이웃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루드비히 베멀먼즈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나니 세상이 조금 달라 보이는 건 내 착각일까?

*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을 읽고 최대한 솔직하게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허구의 전시관
설혜원 지음 / 델피노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설혜원 작가의 [허구의 전시관]에는 기발하고 독특한 상상력으로 빚어낸 7가지 단편 소설들이 실려 있다. 뭐라고 할까? 알록 달록 화려한 표지라는 문을 열고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도저히 전개와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신비롭고 환상적인 허구들이 독자들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당긴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은 환상 동화가 현대물로 재해석되어, 풍자와 해학을 더한 채 현대인들의 부조리를 꼬집고 비튼다. 모든 이야기들이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빈한승빈전] 이라는 단편은 인간에겐 자유 의지가 있으나 선택의 책임은 피할 수 없다라는 걸 보여주는 듯한 이야기다. 주인공 빈한은 조선 시대를 살았던 나무꾼이고 승빈은 현대의 한국에서 경찰 공무원을 지망하고 있지만 사실 둘은 같은 사람이고 그들의 삶은 동시에 발생하고 있고 끊임없이 누군가에 의해 관찰당한다. 마치 RPG 게임 속 주인공 같은 빈한과 승빈을 엿보는 고차원적인 존재가 그들의 삶을 꼼꼼히 데이터화하고 정리하여 상벌을 내린다는 독특한 내용의 이야기.

" 그러나 저들이 불규칙적이라 느끼는 삶도 나를 비롯한 수많은 이의 노동으로 적확하게 짜여 집행된 결과이다. 인생의 상벌은 중요한 문제이기에 몇 번에 걸친 심의가 있은 뒤 결재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다."

[초인종이 울렸다] 에서 주인공 "그녀"는 꼭 따라잡고 이기고 싶은 세련된 "미영"으로부터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소개받게 된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남루한 옷을 걸친, 얼굴빛도 좋지 않은 도배사 남녀가 "그녀" 앞에 등장하게 되고. 그들의 꼬락서니에 기가 막혔던 "그녀" 가 가정부에게 일을 맡기고 그 자리를 떠나려던 순간, 예상치 못했던, 그리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거만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 "그녀" 가 한낮에 들이닥친 불청객들에 의해 참교육을 당하는 이야기. 웃기기도 하지만 잔인한 농담의 향연이 펼쳐진다.

"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소리 질렀다. 연분홍이 아니라 코랄핑크라구. 붓을 든 남자가 벽에 콜알핑크, 라고 썼다. 여자도 붓을 들어 콜알핑크 옆에 짧은 평행선을 두 줄 그리곤 연분홍이라고 썼다. 남자도 여자도 썼다기보다 그렸다."

[디저트 식당]이라는 단편 속, 주인공은 창작 요리를 전공하는 학생이고 요리 창작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흔히 가던 건물의 지하에 디저트 식당이 새로 생긴 것을 발견하게 되는 주인공. 그 식당에 들어간 그는 황홀한 맛과 향기를 풍기는 디저트들 사이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마치 흡입하듯 그것들을 집어 삼킨다. 현실에서는 가능할 것 같지 않던, 50도 각도로 기울어진 피사의 케이크탑을 입으로 가져가던 순간, 디저트 식당의 여주인이 주인공에게 경고의 말을 날리는데... 내용은 비슷하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통해 느껴지는 색감이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연상시킨 작품.

" 소실점의 법칙은 이 공간이나 그림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에요. 사람과 사물도 관계도, 세상의 모든 것이 그 나름의 소실점을 벗어나면 전혀 다른 모습이 되기도 하죠. 예컨대 사물의 앞모습만이 전부가 아니란 말이에요. 옆모습 뒷모습, 심지어 그 안의 속 모습도 겉모습과는 다르죠."

이 책에는 저 세상에서 바로 건져올린 듯한, 기괴하고도 신기한 이야기들이 독자들을 기다린다. 각 단편들은 럭비공 처럼 앞으로 어디로 튈 지 전혀 알 수 없다. 눈 앞에 펼쳐진 여러 문들 중 하나에 노크하고 입장하면 다시 복잡한 미로가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특히 [잉어와 잉여]라는 작품을 읽다보면, 내가 나비인가? 아니면 나비가 나인가? 를 외쳤던 고대의 사상가 장자가 떠오른다. 모든 사물을 차별하지 않았던 정신적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른 장자가 [잉어와 잉여] 의 주인공이 되어 세상을 헤엄치는 느낌이다.

환상과 판타지 그리고 풍자와 해학이 어우러져 기묘함과 통쾌함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소설 [허구의 전시관]. 장르 소설을, 특히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을 읽고 최대한 솔직하게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리 크리스하우스 안전가옥 오리지널 14
김효인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서울에서 온 전직 호텔리어 구이준과

추리 마니아이자 대박 소설가 지망생 이제인은

어쩌다 제주 삼해리 연쇄 살마마 사건을 쫓게 되었을까?

크리스마스에 발생한 연쇄 살마마 사건을 해결한다는, 다소 어리둥절한 내용의 소설인 [메리 크리스하우스] 말이 누군가의 손에 죽는 이야기인 만큼 뭔가 어둡고 음습할 거라 생각했지만, 천만의 말씀!! 이 책은 제목만큼이나 발랄하고 유쾌했다. 방금 코믹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소설가 지망생 제인의 어처구니없는 말씨와 행동에 킥킥댔지만 그 어떤 탐정 못지않은 날카로운 그녀의 추리력에 놀라고 말았다. 또한 제인의 등장에 골치 아파하지만 왠지 설레는 (왜일까요?) 구이준을 보며 한편으로는 로맨스가 기대되기도 했다.

이 책의 경우, 주인공뿐 아니라 이 작품의 배경인 제주도 삼해리 사람들의 활약도 대단하다. 까다롭고 차가운 겉모습의 도시 남자 구이준을 막걸리 한 병으로 무장해제시킨 마력을 가진 너구리를 닮은 이장과 송당당근이라는 귀여운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호피 쫄티를 입은 우락부락한 사장님도 개성 만점이었다. 이들 외에도 조연의 개성이 빛나는 소설인 [메리 크리스하우스]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훨씬 긴장감 넘쳤고,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한때는 잘나가던 호텔리어였던 구이준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서울에서의 모든 생활을 접고 부모님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제주도, 그것도 산기슭에 자리한 조그만 마을 삼해리에 있는 민박집에 관리자로 취업을 하게 된다. 구이준이 오기 전에 함량 미달인 취업 지망생들과 대 환장 파티 ( 그들 표현대로라면 )를 해야 했던 민박집 부부는 허우대 멀쩡한 구이준이 시골까지 내려온 진위를 의심하기도 하지만, 그전 면접생들과의 지옥 같았던 면접을 떠올리며 그의 손을 덥석 잡아버린다.

한편,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사람과의 접촉도 별로 없고 일도 별로 없어서 한가롭게 평화를 즐기고 있던 있던 구이준의 삶에 파문을 일으킬만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구이준이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10년 전, 그에게 흑역사를 안긴 채 홀연히 떠나버렸던 그녀, 누나 구이현의 친구 이제인이 다시 그의 삶에 불쑥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민박집에 손님으로 등장한 제인은 자신이 한 미스터리 프로그램의 작가였고,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제주도에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제인이 추적하고 있던 사건은 바로 연쇄 살마마 사건!! 그것은 3년마다 크리스마스에 말이 죽어나간 끔찍한 사건이었다. 희한하게도 말들이 죽을 때마다 근처에서 빨간 산타복을 입은 남자가 목격되었는데 마지막 사건에서는 그도 말과 함께 죽은 채로 발견된다.

뉴스에서는 그를 살마자로 보고 있으나 제인은 그 남자가 범인이 아님을 확신하고 있다. 왜냐하면 제인이 오기 하루 전에 또 한 마리의 말이 죽어 나갔기 때문. 도대체 범인은 누구일까? 만약 진짜 범인이 있다면 그는 왜 말 못 하는 말들을 죽여야만 했을까? 모두가 행복해야 할 크리스마스에 죽어나간 말들의 복수를 하기 위에 명탐정 제인과 조수 구이준이 나선다!!

요즘은 장르를 파괴하는? 혹은 여러 장르가 섞인 그런 소설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이 [메리 크리스하우스]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죽음이 있고 긴장 넘치는 전개가 있는 만큼 스릴러로 규정할 수도 있겠지만, 제인과 이준의 꽁냥꽁냥 로맨스가 한 숟갈 보태어졌고 풀로 위장한 채 잠복 수사를 하며 안경 쓴 구이준을 구난이라 부르는 엉뚱 발랄한 제인의 코미디도 한 숟갈 보태어진 소설이다. 그냥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완성도는 꽤 높은 소설 [메리 크리스하우스]를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