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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검사생활
뚝검 지음 / 처음북스 / 2022년 2월
평점 :
단순히 사건이라 치부하기는 무척 어렵다
그 안에는 저마다의 우주가 알알이 담겨 있으니까.
누구 하나 억울함이 없으면 좋겠다고
오늘도 간절히 바란다
매스컴에 등장하는 검사들은 주로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 강력 범죄를 짓고도 뉘우치지 않는 악인들과 기싸움을 하면서 자백을 얻어내고 결국 정당한 판결을 받게 하는 검사들이 일종의 영웅으로 보였다. 매스컴을 통해서는 현실 검사가 겪는 실생활은 일반인이 알기 힘들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 책 [슬기로운 검사 생활]의 저자 뚝검 검사는 현실 검사가 겪는 여러 에피소드들과 생활 속 애환들을 아주 진솔하게 풀어놓고 있다. 검사도 직장인이고 술 권하는 회식 때문에 괴롭다는 사실을 토로한다.
혹시나 책이 어렵지 않을까? 하고 초반에 걱정을 좀 했었는데, 확실히 그것은 기우였던 것 같다. 마치 가벼운 추리와 스릴러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책은 주로 저자 뚝검 검사가 해결해야 했던 여러 범죄 사건에 대한 에피소드 위주로 내용이 흘러간다. 범죄라 해서 살인이나 강도 마약 등등의 강력 사건만 있는 건 아니었다. 무면허 운전이나 양귀비 재배와 같은 겉으로 보기에 가벼운 범죄 사건들도 등장하는데, 법으로 단죄하기에는 안타까운 사연들도 많아서 검사 생활이 마냥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 속엔 과연 이걸 범죄로 치부할 수 있을까? 싶은 사건들과 숨은 사연들이 기가 막힌 사건들이 많았고 그만큼 인간적이고 진솔한 뚝검 검사의 고뇌도 깊어 보였다. 예를 들자면 " 영감님, 우리 영감님"이라는 제목의 에피소드에는 한마을 전체가 양귀비를 재배하는 내용이 나온다. 양귀비 대량 재배라니? 마약을 대량 취급하는 카르텔 (?) 이 우리나라에도 있나? 하며 깜짝 놀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병원과 약국이 너무 멀어서 어쩔 수 없이 치료제를 대체할 수 있는 모르핀의 원재료인 양귀비를 재배한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였다. 직접 마을까지 찾아가서 벌벌 떠는 할머니의 손을 잡아주고 온 뚝검 검사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래브라도 레트리버"라는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사건도 안타까웠다. 떠돌이 유기견을 잡아다 개소주를 만들어파는 배용남씨는, 어느 날 자신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검은 레트리버를 잡아다 개소주를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레트리버는 수봉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었다. 이까지만 읽으면 배용남씨를 강력 처벌해야 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알고 보니 그는 예닐곱 살의 지능을 가진 지적 장애인이었다. 나도 반려동물과 함께 하고 있기에 그의 행동이 괘씸하긴 하나,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내느라 그랬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했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이 사건을 두고 저자인 뚝검 검사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다른 판결문을 샅샅이 뒤진 끝에 결국 징역형을 구형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판단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저자는 뚝심있는 검사가 되자고 스스로에게 "뚝심 검사"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그만큼 모든 사건에 대해서 진실한 마음으로 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절도 사건의 피의자가 과거 왕따 사건에 시달려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하고 불법 체류자 신분 때문에 친구가 죽어가는데도 불구하고 119를 부르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 사건에 대해서 고민하는 저자 "뚝검 검사 ". 이 책은 검사가 되었다고 권력을 뽐내고 남들 위에 군림하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정 범죄 발생 시에 다각도로 범죄를 분석하고 집요하게 범죄자를 추궁하여 형을 구형하는 동시에, 범죄 사건 이면에 숨어있는 다양한 사연을 이야기하고 검사들도 따뜻한 심장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읽은 그 어떤 범죄 관련 서적보다 더 감동적이었고 따뜻했던 책이었다.
*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