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진, 길들여지지 않은 - 무시하기엔 너무 친근하고 함께하기엔 너무 야생적인 동물들의 사생활
사이 몽고메리.엘리자베스 M. 토마스 지음, 김문주 옮김 / 홍익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시하기엔 너무 친근하고 함께 하기엔 너무 야생적인 동물들의 사생활!

이 책은 세계적인 동물학자 사이 몽고메리와 엘리자베스 M. 토마스의 지식과 통찰력을 통하여 알면 알수록 경이로운 동물의 일상을 흥미진진하고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인간은 생각하고 사랑하고 느끼는 지구상의 유일한 생명체인가요?”

이 질문에 대해서 동물학자 엘리자베스는 강한 부정의 의견을 내비친다, 사이 몽고메리 박사 또한 인간 중심적인 우월감에 의문을 품는 그녀의 세계관에 깊은 공감을 하고 있다.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다른 동물의 능력과 비교했을 때 그다지 대수롭지 않음을 보여주고, 개와 고양이뿐만 아니라 야생동물인 사자, 곰, 새, 뱀 등 다양한 동물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과 저자들이 경험한 것을 사례로 들어 알려준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음으로서 미처 알지 못했던 동물의 신기한 습성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개와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많이 키우는데, 누가 누구에게 더 의지하면서 생활을 하는지 생각해 보면 우리와 반려동물과의 관계를 인간 그리고 동물이라는 단순한 관계로만 그릴 수는 없는 것 같다. 인간은 반려동물로부터 위안을 얻고 편안한을 느낀다. 반면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동물들의 생활모습은 우리들 눈에는 신기하고 경이롭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심장마비에 걸릴 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30퍼센트 낮다.

 헤엄치는 물고기를 지켜보는 일은 혈압을 낮춰주고,

개를 쓰다듬는 일은 면역체계를 강화해준다.”

(p. 114)

“어른 벌새는 하루에 평균적으로 1,500송이의 꽃을 방문하는데,

이때 섭취하는 꿀의 양은 인간으로 치면 하루에 57리터에 달한다.

벌새들에게는 이마저도 부족하여

하룻동안 600~700마리의 벌레를 틈틈이 잡아먹는다.”(p. 174)

인류는 8,700만 종의 동물들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일 뿐이다. 이 동물들 가운데 이름을 지어줄 수 있는 종이 얼마나 될까? 또한 우리가 알거나 이해할 수 있는 동물은 얼마나 될까?

이 중에 질문 하나!! 현미경을 통해야만 볼 수 있는 동물이 있을까? 물론 있다. 물곰이다. 물곰이라는 동물은 5억년 이상 지구상에 존재해왔고 (우리 인간은 20만년 동안 존재해왔다.),현존하는 종은 1,000가지 이상이다. 이 동물은 어느 종에 속하는지 따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환경에서 발견된다고 하고,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수준보다 1,000배 이상 강한 방사선도 이겨낼 수 있다고 한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존재가 상당히 작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내가 야생동물을 돕는 이유는 인간들이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자연을 마구 훼손하기 때문이다.”(p. 241)

인간들에 의해서 규정지어지지 않은 관계, 인간과 동물이라는 단순한 관계가 아닌 다른 각도로 동물을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간은 동물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대해 인정을 하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서로 길들이거나 길들여진다는 관점인 " 인간 중심주의적 관점 " 이 아닌 우리 모두가 속해 있는 곳에서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는 " 생태 중심적 관점 " 의 자세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좋은 독서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으로써의 정상적인 삶,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억압당하고 침묵을 강요당했던 한 여인의 이야기이자, 군부독재정권의 군화발에 짓밟혀야했던 나이지리아 국민들의 이야기 [ 보라색 히비스커스 ]. 이 소설은 민족과 지역 그리고 인종을 뛰어넘는 울림과 감동을 가져다준다.

남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했던 아버지 유진. 여러 회사와 공장을 운영하는 그는 이웃들에게 베풀고 종교적으로는 모범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가정에만 돌아오면 폭군으로 변한다. 지나친 사랑은 그를 완벽주의자로 만들어 아이들과 아내에게 완벽해질 것을 강요한다. 딸 캄빌리가 학교에서 마치고 5분만 늦어도 귀싸대기를 올려붙이고 성적은 무조건 1등이 되어야 한다.

" 나는 항상 마지막 수업이 끝나자마자 냅다 뛰었다.

(...) 한번은 케빈이 아버지에게 내가 몇 분 늦게 나왔다고 말하자 

 아버지가 내 왼뺨과 오른뺨을 동시에 때려서

며칠 동안 똑같이 생긴 커다란 손자국이 얼굴에 남고 귀가 왕왕 울린 적도 있다."

  ( 69쪽)

 

한편 나이지리아의 정치상황은 암울하다. 군부에 의해서 정권을 강탈당한 이후 국민들에게 돌아가야할 자금은 모두 해외로 빼돌려지고 있다. 주인공 캄빌리의 고모인 이페오마는 한 대학교의 교수로 일하고 있지만 몇 달째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고 주유소에는 기름이 없어서 사람들은 운전을 하지 못한다. 물이 안 나오고 빵이 없어서 굶주려야 하는 시민들.

“ 지난 석달간 은수카에는 기름이 없었어요.

지난주에는 기름을 기다리느나 주유소에서 밤새우기도했죠.

하지만 결국 기름은 오지 않았어요.

어떤 사람들은 집까지 돌아갈 기름이 없어서 주유소에 차를 두고 갔고요 ” (100쪽)

이 소설은 고발하고 있다. 위선과 가식의 삶을 살았던 아버지의 학대와 폭력 그리고 국민의 삶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나이지리아 군부독재정권의 무능함과 뻔뻔함을. 부패한 정권에 직언하는 언론인을 도왔고 독재정권에 저항한 아버지 유진은, 아이러니하게도 집에서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독재자로 군림했다. 뭔가 낯익은 모습이지 않은가? 자신이 그토록 싫어한 독재정권을 닮아가는 한 인간의 모습....

" 유진 형제를 보세요. 

 그는 이 나라의 다른 거물들처럼 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쿠데타 이후에 정부가 그의 사업을 위협하지 않도록 집에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 스탠더드 ] 를 통해 진실을 말했지요. " (13쪽)

" 오빠가 왜 이페디오라랑 사이가 안 좋았는 줄 알아요?

이페디오라가 오빠 면전에 대고 자기 생각을 말했기 때문이에요.

이페디오라는 진실을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죠.

하지만 오빠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진실에 대해서는 꼭 싸우려 들잖아요." (124쪽)

저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으로써 우리가 누릴 수 있고 반드시 누려야하는 권리에 대해서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고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맹목적으로 가톨릭 신앙을 추구하던 아버지 유진이 한번이라도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았을까? 도대체 그는 무엇때문에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고 백인의 종교인 가톨릭 신앙만 추구한걸까? 그것이 자신이 추구한 완벽한 삶이라서? 그렇다면 완벽함에 자신을 맞추느라 스스로 통제하고 억압한 삶의 결과가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해봤을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 아내의 눈동자를 한번이라도 진심으로 들여다본적이 있을런지...

“ 나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만들고 싶었고, 아버지만큼 공부를 잘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내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존재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2등을 했다. 실패로 더럽혀졌다 .” (54쪽)

비정상적인 삶을 살았던 남매들. 학대와 폭력으로 얼룩진 나날들 때문에 웃음을 빼앗겼던 그들의 모습은 엄격하고 억압적인 아버지와 성격이 180도 어른들을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바뀐다. 비록 가난하지만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우고 사랑으로 감싸주는 이페오마 고모와 사촌들 그리고 은수카 지역에서 만난 아마디 신부님은 그들을 웃게 했고 자유롭게 해주었다.

“ 지금 내게 오빠의 반항은 이페오마 고모의 실험적인 보라색 히비스커스처럼 느껴졌다.

희귀하고 향기로우며 자유라는 함의를 품은.

쿠데타 이후에 정부 광장에서 녹색 잎을 흔들던 군중이 외친 것과는 다른 종류의 자유.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할 자유 .” (27쪽)

페미니스트이자 세계적인 인플루엔서인 저자 아디치에. 그녀는 고백하고 고발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 인류가 다른 인류에게 미묘하게 가하는 억압 [ 자신의 뿌리와 민족성을 잊게 하는 특정 종교의 잘못된 선교활동 ], 부패한 독재 정권이 얼마나 무능하고 사악한지 [ 언론 통제, 저항하는 인물에 대한 탄압, 파탄난 경제 ] 그리고 폭군 아버지의 영향 [ 어머니와 자녀들은 삶의 향기를 잊고 살았다 ].... 이 소설 속엔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여성으로써 그리고 한 인간으로써.

한 여성의 내밀한 삶의 고백과 나이지리아 현대사가 동시에 펼쳐지는 이 소설을 통해 큰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알면서도 모른척하거나 잘못된 일에 대해서 침묵하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 보라색 히비스커스 ]. 독재정권에 신음했던 우리 역사가 생각나면서 크게 공감할 수 있는 책이었다.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 고학력자들,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떠나. 약자들을 남겨 두고 가지. 독재자들은 계속 군림해. 약자들이 저항하지 못하니까. 너는 이게 순환 고리란 걸 모르니? 대체 누가 이 고리를 끊겠어?” (29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날의 비밀
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에겐 일본의 식민지였던 뼈아픈 역사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땐, 1930년대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에게 크나큰 비극을 안겨준 불행한 전쟁을 겪은 시기이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을까? 그러나 인류에 대한 책임감과 윤리의식이라곤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던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의 비밀회동은 그런 가능성을 0%로 불식시켜버린다. 그들의 비밀회동은 일어나지 말았어야할 대재앙에 하나의 역할을 더했을 뿐이고...

 

" 커다란 재앙은 살금살금 다가온다 "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1930년대 유럽. 1933년 2월 20일 독일 베를린에서 스물 네명의 인사들이 비밀회동을 한다. 그들은 바로 독일의 산업과 금융을 움직이는 거물들이다. 그들이 모인 이유는? 총리에 지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치당의 아돌프 히틀러와 헤르만 괴링 국회 의장을 만나기 위해서 .... 그리고 회동에 참석한 히틀러와 괴링은 참석자들에게 거침없이 정치헌금을 요구한다.

 

“경제 활동을 위해서는 견고하고 안정된 체제가 요구된다고 했다. 스물네 명의 신사들은 경전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경영자들의 역사적 순간이자 나치스와의 미증유의 타협이라 볼 수 있는 1933년 2월 20일 회동은 크루프 일가, 오펠 일가, 지멘스 일가에게는 사업하다 보면 겪게 되는 매우 일상적 일화, 진부한 모금 활동과 다를 게 없었다.”

 

그들의 반응은? 놀랍게도 그들은 곧장 모금함으로 달려간다. 사실상 정경유착에 익숙했던 사업가들에게 별로 새로울 게 없는 제안이었다. 거액을 헌금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평소에 하던 것과 같은 모금 활동에 불과했던 것. 이렇게 이 책에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큰 배경이 도사리고 있는데도 유명했던 외교적 협상이나 치열한 전투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이 책은 어떤 식으로 그 당시 정경 유착이 이루어졌는지는 상세히 묘사한다. 나치스는 독일 기업들에게 포로수용소의 수감자인 유대인들을 노동력으로 착취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제공해준다. 예를 들어서 1943년 크루프 공장에 도착한 유대인 6백여명 중에서 1년 후 남은 사람은 단 20명. 범죄적 열정과 정치적 가식 뒤에서 그들은 잇속을 마음껏 챙겼다.

 

 

그 이후로도 이 책에는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사소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영국 추밀원 의장인 핼리 팩스가 나치스와 히틀러를 만났지만 그의 귀에는 견제의 목소리가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 영국 귀족이자 외교관인 이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이는 한 광인이 전쟁의 불꽃을 쏘아 올릴 수 있게 하는 빌미를 제공한다.

 

" 민족주의와 인종 차별주의는 강력한 힘이지만 나는 그것이 자연에 위배된다거나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 나는 이 사람들이 진정으로 공산주의자를 혐오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 처지라면 우리도 똑같이 느낄 것이라고 장담한다."

 

1938년 오스트리아 총리인 슈슈니크와 히틀러의 비밀회동이 이루어진다. 이로 인해 ' 오스트리아 병합 ' 이 이루어진 것. 슈슈니크는 히틀러의 내정간섭에 순순히 두 손을 들어버린다. 나치당원인 잉크바르트의 내무부 장관 임명과 나치 당원 사면 등등... 이로 인해 유럽의 운명은 결정되어버리고.. 한편 오스트리아 독립 유지를 묻기 위한 국민 투표를 실시하지만 국민들은 99.75%가 독일과 오스트리아 병합에 찬성표를 던지는데.....

 

책 마지막 장에 거대 군수 기업이자 유대인 수용소에서 노동력을 빌려썼던 구스타프 크루프의 이야기가 잠시 나온다. 전쟁이 끝나고 히틀러는 죽었지만 크루프라는 기업은 살아남았다. 그러나 크루프는 치매가 있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재판을 받지 않았고 그의 아들은 경영권마저 승계받는다. 친일파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가 기억나는 대목이다. 크루프사와 같은 전범 기업의 문제.. 우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역사의 각 장면들을 짤막하게 다룬 작품이 프랑스의 큰 문학상을 받고 독자에게 호소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말한다.

 

 

‘한순간이라도 이 모든 것이 먼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일본에게 지배되었던 쓰라리고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고 현재도 일본과의 갈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저 말은 아주 생생한 울림이 되어 다가오는 것 같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고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는 말을 절실하게 보내오는 책 [ 그날의 비밀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밀어줄까? - JM북스
유키 슌 지음, 손지상 옮김 / 제우미디어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세일러 교복을 입고 있는 여학생이 누구를 미는 듯한 동작을 하고 있다. 제목과 표지까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여러 생각이 들지만 혹시나 드는 좋지 않은 생각들...

왕따나 따돌림 현상은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한국의 경우도 왕따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왕따와 따돌림을 소재로 한 소설 [ 밀어줄까? ]. 그런데 더 공포스럽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이 소설은 " 살의가 없이도 사람은 죽을 수 있다 " 라는 사실을 증명해보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최근 묻지마 살인 사건이 많아지는 추세라서 그럴까? 보통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경우는, 사회나 공동체에 불만이 쌓이거나 아니면 아예 정신병을 가진 경우, 혹은 가까운 사람과 갈등을 빚은 경우인데... 살의가 없는데 사람이 죽을 수 있다니..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달리기를 좋아하여 육상부에서 활동하는 잇페이. 나름 원만한 학교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던 중 동급생들의 왕따 때문에 등교거부를 하던 마유코가 오랜만에 다시 학교에 나오게 되고, 그녀가 학교에 나오고 부터 심상치 않은 의문의 사건들이 일어난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반 친구인 류 카즈히코가 등교 중 차에 치이고, 끝내 사망한다. 이를 목격한 잇페이의 친구인 토모야는 큰 충격을 받고 등교를 거부한다. 그리고 사소한 이유로 시작되는 주인공에 대한 지독한 따돌림과 괴롭힘....

 

“나는 매일매일 마음의 전압이 낮아지는 것을 느꼈다. 공부를 해도, 부활동을 해도, 토모야에 대해서도, 전부. 육체적인 고통은 근육을 단련하면 어떻게든 버티는 게 가능하겠지만, 정신적인 고통은 어지간해선 지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잉지잉 열을 내면서 곪아터져 근질근질해진다.”(p. 176)

 

사실 어른들도 직장 내 따돌림 등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는 경우가 최근에 많이 생겼다. 그런데 중1학생인 주인공의 정신적 고통은 오죽 하랴??? 주인공에게 있어서 동급생들의 따가운 시선과 행동들은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주인공이 서서히 무너져나가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아이들이 고통받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학교 교사들의 미온적인 태도가 이상하다고 느껴지고 분노도 느껴졌다.

 

 

“네가 맘대로 죽으면 곤란하거든.”(중략)

“그게 무슨 말이야?”

“아직, 게임은 안 끝났거든.”(p183~184)

 

 

자신에 대한 괴롭힘과 동급생들의 갑작스러운 사고와 사망. 그리고 마유코의 뜻을 알 수 없는 질문들. 주인공에 대한 심한 따돌림과 괴롭힘 그리고 아이들의 잇따른 사망사건 사이에 관련이 있는 걸까? 이유 없는 악의에서 시작된 행동들은 호숫가에 던져진 돌맹이처럼 파급효과를 불러오고

학급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면서도 미온적인 태도만 보이는 담임교사의 모습,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의 내용을, 어쩌면 모두 거짓일 수 있는 내용을,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진실로만 받아들이고 ‘나만 아니면 된다.’식의 왕따 게임을 즐기는 학생들. 이런 내용들을 읽어나가다보면 잔인한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전부 너 때문이니까”

 

살의가 없어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니!!! 경악할 만한 이야기이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그러나 우리는 주위에서 심심찮게 그러한 예를 볼 수 있다. 단지 자신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마치 파리 목숨처럼 쉽게 남의 목숨을 빼앗는 일부 사람들.... 이 책에서도 사소한 계기로 사건들은 발생한다. 아주 평범한 학생이 큰 죄의식 없이도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몸이 떨려온다. 그 무지몽매한 사악함에....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 밀어줄까? ]..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그렇다면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개인인가 사회인가...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요틴
이스안 지음 / 토이필북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에 발을 담그고 있긴 하나 우리는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영원한 여행을 떠난다. " 죽음 " 과 그와 관련된 여러 현상에 관심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 죽음은 어두움, 피해야 할 것, 불길한 것,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바닥이 보이지 않는 진공 상태 등등을 연상시키고 공포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여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미스터리한 죽음이 가진 비밀을 속삭이는 작가가 있다. 그녀의 글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죽음이라는 오묘한 세계에 이끌리거나 반쯤 아니 그 이상 발을 담그고 있다. 도플갱어, 지박령, 생령, 망상, 빙의, 귀접, 악마 ... 평소에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 독특하고 신비로운 소재를 다룬 이스안 작가가 이끄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 환생 : 주인공 지훈에게 다가온 낯선 여자. 자신과 아는 언니의 죽은 남편과 닮았다며 연락처를 부탁한다. 찝찝했지만 연락처를 건네준 지훈.

죽은 남편 민우를 잊지 못해 하루하루 말라가는 연희와 가끔 만나기로 약속한다. 가냘픈 어깨를 떨면서 우는 그녀에게 점점 마음이 끌리는데

                   " 그날 밤, 꿈을 꾸었다.

나는 깊고 새파란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

분명 아까는 깊은 바다였는데 어느새 내 몸은 따뜻한 모래사장에 떠밀려져 있었다.

햇빛이 강렬하게 나를 비추고 있었다 " (50쪽)

[ 전생과 환생의 개념을 약간 비틀어 재미를 주는 작품. 어쨌든 모두가 행복하면 그만 아닌가? ]

◆ 머무르다 : 왕따를 당하던 학생 승욱. 어느 날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고 죽기로 결심한다. 엄마, 아빠, 형의 얼굴이 아른거렸지만 살면서 행복했던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생각에 그만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마는데...

" 나는 그 교실 안에서 바퀴벌레만도 못한 존재였다.

차라리 인간이 아닌, 강력한 독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바퀴벌레가 되어 반에 있는 모두를 물어 죽이고 싶었다.

아니, 세상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맞는 것 같았다 " (70쪽)

[ 자살이 드문 현상이 아닌 지금...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모든 것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듯 ]

◆ 기요틴 : 미술학도인 주인공은 ' 죽음 '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다. 토막 난 시체와 그 옆에 있는 머리 등등... 그러나 대학 동기나 교수들 그에게 ' 무섭다' ' 더럽다 ' ' 토할 것 같아 '라는 말로 혐오감을 표시한다. 그러던 어느 날 거대한 캔버스를 삶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느끼는 죽음을 온갖 물감을 동원하여 마구 바른다. 그런데 그 속에서 어떤 존재들이 꿈틀대기 시작하는데....

" 그 원형의 저편에는 커다란 캔버스에 그린 그림에서 보았던 존재들이 저들끼리 웅얼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왠지 모르게 그들은 매우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들 뒤로 다양한 크기의 수많은 캔버스들이 놓여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손짓하며 말하였습니다. "

"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렴 " (149쪽)

[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 기요틴. " 죽음 "이라는 소재를 그림으로 표현하려는 주인공의 열정에 공감을 느꼈다 ]

 

일반적으로는 터부시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 .. 그러나 우리의 DNA에는 감추어져있는 " 죽음 "이라는 베일을 벗겨보고 싶은 심리가 숨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스안 작가는 자칫하면 어둡고 공포스럽기만 할 수 있는 " 죽음 "에 관한 소재들을 가지고 매우 매혹적이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다. 삶과 죽음은 앞뒤로 붙어있는 샴쌍둥이 같다. 결코 보고 싶지는 않지만 밝은 모습의 " 삶 "이라는 형제 뒤에 숨어있는 다소 흉측한 모습의 " 죽음 ". 아이러니한 것은 그런 흉측한 모습에 열광하고 더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 인간의 심리라는 것. 이 시안 작가의 기담 집 [ 기요틴 ] 은 그러한 독자들의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키는 것 같다. 여름날에 꼭 읽어봐야 하는 공포문학집 1순위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