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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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써의 정상적인 삶,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억압당하고 침묵을 강요당했던 한 여인의 이야기이자, 군부독재정권의 군화발에 짓밟혀야했던 나이지리아 국민들의 이야기 [ 보라색 히비스커스 ]. 이 소설은 민족과 지역 그리고 인종을 뛰어넘는 울림과 감동을 가져다준다.

남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했던 아버지 유진. 여러 회사와 공장을 운영하는 그는 이웃들에게 베풀고 종교적으로는 모범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가정에만 돌아오면 폭군으로 변한다. 지나친 사랑은 그를 완벽주의자로 만들어 아이들과 아내에게 완벽해질 것을 강요한다. 딸 캄빌리가 학교에서 마치고 5분만 늦어도 귀싸대기를 올려붙이고 성적은 무조건 1등이 되어야 한다.

" 나는 항상 마지막 수업이 끝나자마자 냅다 뛰었다.

(...) 한번은 케빈이 아버지에게 내가 몇 분 늦게 나왔다고 말하자 

 아버지가 내 왼뺨과 오른뺨을 동시에 때려서

며칠 동안 똑같이 생긴 커다란 손자국이 얼굴에 남고 귀가 왕왕 울린 적도 있다."

  ( 69쪽)

 

한편 나이지리아의 정치상황은 암울하다. 군부에 의해서 정권을 강탈당한 이후 국민들에게 돌아가야할 자금은 모두 해외로 빼돌려지고 있다. 주인공 캄빌리의 고모인 이페오마는 한 대학교의 교수로 일하고 있지만 몇 달째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고 주유소에는 기름이 없어서 사람들은 운전을 하지 못한다. 물이 안 나오고 빵이 없어서 굶주려야 하는 시민들.

“ 지난 석달간 은수카에는 기름이 없었어요.

지난주에는 기름을 기다리느나 주유소에서 밤새우기도했죠.

하지만 결국 기름은 오지 않았어요.

어떤 사람들은 집까지 돌아갈 기름이 없어서 주유소에 차를 두고 갔고요 ” (100쪽)

이 소설은 고발하고 있다. 위선과 가식의 삶을 살았던 아버지의 학대와 폭력 그리고 국민의 삶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나이지리아 군부독재정권의 무능함과 뻔뻔함을. 부패한 정권에 직언하는 언론인을 도왔고 독재정권에 저항한 아버지 유진은, 아이러니하게도 집에서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독재자로 군림했다. 뭔가 낯익은 모습이지 않은가? 자신이 그토록 싫어한 독재정권을 닮아가는 한 인간의 모습....

" 유진 형제를 보세요. 

 그는 이 나라의 다른 거물들처럼 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쿠데타 이후에 정부가 그의 사업을 위협하지 않도록 집에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 스탠더드 ] 를 통해 진실을 말했지요. " (13쪽)

" 오빠가 왜 이페디오라랑 사이가 안 좋았는 줄 알아요?

이페디오라가 오빠 면전에 대고 자기 생각을 말했기 때문이에요.

이페디오라는 진실을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죠.

하지만 오빠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진실에 대해서는 꼭 싸우려 들잖아요." (124쪽)

저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으로써 우리가 누릴 수 있고 반드시 누려야하는 권리에 대해서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고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맹목적으로 가톨릭 신앙을 추구하던 아버지 유진이 한번이라도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았을까? 도대체 그는 무엇때문에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고 백인의 종교인 가톨릭 신앙만 추구한걸까? 그것이 자신이 추구한 완벽한 삶이라서? 그렇다면 완벽함에 자신을 맞추느라 스스로 통제하고 억압한 삶의 결과가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해봤을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 아내의 눈동자를 한번이라도 진심으로 들여다본적이 있을런지...

“ 나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만들고 싶었고, 아버지만큼 공부를 잘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내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존재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2등을 했다. 실패로 더럽혀졌다 .” (54쪽)

비정상적인 삶을 살았던 남매들. 학대와 폭력으로 얼룩진 나날들 때문에 웃음을 빼앗겼던 그들의 모습은 엄격하고 억압적인 아버지와 성격이 180도 어른들을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바뀐다. 비록 가난하지만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우고 사랑으로 감싸주는 이페오마 고모와 사촌들 그리고 은수카 지역에서 만난 아마디 신부님은 그들을 웃게 했고 자유롭게 해주었다.

“ 지금 내게 오빠의 반항은 이페오마 고모의 실험적인 보라색 히비스커스처럼 느껴졌다.

희귀하고 향기로우며 자유라는 함의를 품은.

쿠데타 이후에 정부 광장에서 녹색 잎을 흔들던 군중이 외친 것과는 다른 종류의 자유.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할 자유 .” (27쪽)

페미니스트이자 세계적인 인플루엔서인 저자 아디치에. 그녀는 고백하고 고발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 인류가 다른 인류에게 미묘하게 가하는 억압 [ 자신의 뿌리와 민족성을 잊게 하는 특정 종교의 잘못된 선교활동 ], 부패한 독재 정권이 얼마나 무능하고 사악한지 [ 언론 통제, 저항하는 인물에 대한 탄압, 파탄난 경제 ] 그리고 폭군 아버지의 영향 [ 어머니와 자녀들은 삶의 향기를 잊고 살았다 ].... 이 소설 속엔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여성으로써 그리고 한 인간으로써.

한 여성의 내밀한 삶의 고백과 나이지리아 현대사가 동시에 펼쳐지는 이 소설을 통해 큰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알면서도 모른척하거나 잘못된 일에 대해서 침묵하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 보라색 히비스커스 ]. 독재정권에 신음했던 우리 역사가 생각나면서 크게 공감할 수 있는 책이었다.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 고학력자들,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떠나. 약자들을 남겨 두고 가지. 독재자들은 계속 군림해. 약자들이 저항하지 못하니까. 너는 이게 순환 고리란 걸 모르니? 대체 누가 이 고리를 끊겠어?”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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