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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틴
이스안 지음 / 토이필북스 / 2019년 7월
평점 :
삶에 발을 담그고 있긴 하나 우리는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영원한 여행을 떠난다. " 죽음 " 과 그와 관련된 여러 현상에 관심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 죽음은 어두움, 피해야 할 것, 불길한 것,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바닥이 보이지 않는 진공 상태 등등을 연상시키고 공포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여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미스터리한 죽음이 가진 비밀을 속삭이는 작가가 있다. 그녀의 글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죽음이라는 오묘한 세계에 이끌리거나 반쯤 아니 그 이상 발을 담그고 있다. 도플갱어, 지박령, 생령, 망상, 빙의, 귀접, 악마 ... 평소에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 독특하고 신비로운 소재를 다룬 이스안 작가가 이끄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 환생 : 주인공 지훈에게 다가온 낯선 여자. 자신과 아는 언니의 죽은 남편과 닮았다며 연락처를 부탁한다. 찝찝했지만 연락처를 건네준 지훈.
죽은 남편 민우를 잊지 못해 하루하루 말라가는 연희와 가끔 만나기로 약속한다. 가냘픈 어깨를 떨면서 우는 그녀에게 점점 마음이 끌리는데
" 그날 밤, 꿈을 꾸었다.
나는 깊고 새파란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
분명 아까는 깊은 바다였는데 어느새 내 몸은 따뜻한 모래사장에 떠밀려져 있었다.
햇빛이 강렬하게 나를 비추고 있었다 " (50쪽)
[ 전생과 환생의 개념을 약간 비틀어 재미를 주는 작품. 어쨌든 모두가 행복하면 그만 아닌가? ]
◆ 머무르다 : 왕따를 당하던 학생 승욱. 어느 날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고 죽기로 결심한다. 엄마, 아빠, 형의 얼굴이 아른거렸지만 살면서 행복했던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생각에 그만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마는데...
" 나는 그 교실 안에서 바퀴벌레만도 못한 존재였다.
차라리 인간이 아닌, 강력한 독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바퀴벌레가 되어 반에 있는 모두를 물어 죽이고 싶었다.
아니, 세상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맞는 것 같았다 " (70쪽)
[ 자살이 드문 현상이 아닌 지금...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모든 것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듯 ]
◆ 기요틴 : 미술학도인 주인공은 ' 죽음 '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다. 토막 난 시체와 그 옆에 있는 머리 등등... 그러나 대학 동기나 교수들 그에게 ' 무섭다' ' 더럽다 ' ' 토할 것 같아 '라는 말로 혐오감을 표시한다. 그러던 어느 날 거대한 캔버스를 삶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느끼는 죽음을 온갖 물감을 동원하여 마구 바른다. 그런데 그 속에서 어떤 존재들이 꿈틀대기 시작하는데....
" 그 원형의 저편에는 커다란 캔버스에 그린 그림에서 보았던 존재들이 저들끼리 웅얼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왠지 모르게 그들은 매우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들 뒤로 다양한 크기의 수많은 캔버스들이 놓여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손짓하며 말하였습니다. "
"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렴 " (149쪽)
[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 기요틴. " 죽음 "이라는 소재를 그림으로 표현하려는 주인공의 열정에 공감을 느꼈다 ]
일반적으로는 터부시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 .. 그러나 우리의 DNA에는 감추어져있는 " 죽음 "이라는 베일을 벗겨보고 싶은 심리가 숨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스안 작가는 자칫하면 어둡고 공포스럽기만 할 수 있는 " 죽음 "에 관한 소재들을 가지고 매우 매혹적이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다. 삶과 죽음은 앞뒤로 붙어있는 샴쌍둥이 같다. 결코 보고 싶지는 않지만 밝은 모습의 " 삶 "이라는 형제 뒤에 숨어있는 다소 흉측한 모습의 " 죽음 ". 아이러니한 것은 그런 흉측한 모습에 열광하고 더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 인간의 심리라는 것. 이 시안 작가의 기담 집 [ 기요틴 ] 은 그러한 독자들의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키는 것 같다. 여름날에 꼭 읽어봐야 하는 공포문학집 1순위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