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커 컬러링 2 : 디즈니 레이디스 스티커 컬러링 2
일과놀이콘텐츠연구소 지음 / 북센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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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생활하는 현대인들... 대학 졸업하고 직장 가면 좀 편하게 살 수 있으려나 했더니 웬걸.. 그건 공부를 시키려는 선생님들의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중 고등학교 때보다 훨씬 더 힘들고 바쁘게 생활하는 어른들. 스트레스를 풀고 번 아웃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엔 뭐가 있을까? 친구들과 카페 가기, 운동하기, 혹은 쉽고 가벼운 내용의 책 읽기 등등이 있겠지만 손으로 할 수 있는 활동들.. 종이접기나 색칠하기 혹은 이 책처럼 스티커 붙이기도 스트레스 해소에 많은 도움이 된다.

디즈니 레이디스 중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은, 역시 첫 번째 이 책의 표지를 장식한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의 주인공 앨리스였었다. 회중시계를 차고 바쁘다 바빠를 외치는 토끼를 따라 모든 게 뒤틀린 환상적인 세계로 들어간 앨리스. 말하는 토끼 이외에도 미친 모자 장수 거대한 머리를 가진 여왕이 등장하고 앨리스는 그들과 함께 기이한 경험과 모험을 하게 된다.



사실 유치원을 졸업하고 난 이후로 스티커 붙이는 놀이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손으로 잡기에도 불편한 작은 스티커들을 핀셋으로 집어서 공간에 딱 들어맞게 붙이는 그 느낌!!!! 혹시나 실수할까 봐 손이 달달 떨렸지만 하나하나 완성되는 앨리스의 수줍은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기쁨으로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앨리스뿐만 아니라 디즈니 레이디스 중에서 두 번째로 생각난 여주인공이 바로 인어공주였다. 내 마음속에 슬픔의 아이콘으로 저장되어 있던 그녀. 동화 속에선 바닷속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목소리를 잃어버리면서까지 육지로 올라왔지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왕자님 때문에 결국 거품으로 꺼져버리는 그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결말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목소리를 빼앗기고 다리를 얻은 그녀의 끝이 행복하기만을 바랄 뿐...

( 애니메이션 버전은 끝이 해피엔딩이었다 )




인어 공주에게 다리를 주고 굳이 목소리를 빼앗은 마녀의 사연이 궁금하기도 하다.. 다른 것도 많았을 텐데 왜 굳이 목소리를 가져가야만 했을까?

인어 공주의 용기도 놀랍다. 육지를 간다고 해서 왕자를 만난다는 보장도 없고.... 어쨌든 아름다운 여인네들만 보다가 마녀를 완성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바람 부는 날, 왠지 놀고 싶은 날, 책을 펴들기 싫은 날, 핀셋 들고 앉아서 놀기 딱 좋은 책이다. 스트레스도 풀고 예전에 읽었던 동화책 속 주인공들도 다시 만나고...... 아이들만 가지고 놀라는 법이 없는 것 같다. 복잡한 머리를 식히기에 딱 좋은 책 [ 디즈니 레이디스 스티커 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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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아메리카나 1 - 개정판 아메리카나 1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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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영웅 신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촌뜨기 같거나 어설픈 주인공이 거친 세상과 충돌하고 반목하면서 서서히 내면의 힘을 깨달아 힘든 상황을 극복해하기 때문이다. 한계가 있던 영웅은, 친절하지 않은 현실에 절망하고 넘어지고 울다가, 눈물을 닦고 세상에 맞선다. 그리고는 변화시킨다.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삶도. 이 책의 주인공인 이페멜루도 이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이상한 나라 " 같은 미국에서 "앨리스"처럼 혼란스러워하다가 결국 인종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높인다. 블로그라는 첨단 무기를 통해서 " 언어 "라는 칼을 빼들어 미국 속 인종 차별과 혐오에 대해 맞서는 그녀. 영웅이 따로 없다.

나이지리아의 암울한 정치 상황 때문에 젊은이의 미래가 보이지 않게 되면서 미국 유학 꿈을 꿨던 이페멜루와 이페멜루의 남자 친구 오빈제. 우선 고모가 미국에 와있던 이페멜루가 오빈제보다 먼저 유학을 온다. 부푼 꿈을 안고 미국이라는 이상의 세계로 건너온 이페멜루. 그러나 실상은 너무나 달랐다. 고모의 머리칼은 푸석했고 이페멜루는 일을 구하지 못한다. 1권 뒷부분에는 이페멜루가 처음 미국에 와서 받은 문화적 충격과 미국인들의 다른 인종에 대한 무지와 차별 그리고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이페멜루의 독백 속에서 묻어나온다.

" 갑자기 안개에 싸인 느낌, 자신이 하얀 거미줄을 뚫고

나가려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반 장님의 가을, 어리둥절함의 가을, 자신이 모르는 난해하고

다층적인 의미가 있음을 아는 상태에서

겪게 되는 경험들의 가을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 222p )

" 너무 일찍 어둠이 내리고, 모두들 무거운 코트를 짊어지고 걸어 다니고

빛의 부재로 인해 평평해진 세상 속에서

그녀는 핏기 없이 홀로 괴리된 채 떠다녔다.

하루하루가 서로를 향해 흘러들어 뒤섞였고 상쾌한 공기가 들이마시기

고통스러울 정도로 쌀쌀한 공기로 바뀌었다. " ( 264p )

" 내가 돈이 얼마나 많은지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가 보기에 내 외모는 그 위풍당당한 저택의 주인에게 적합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공적 담론에서 ' 흑인 '이라는 집합 명사는' 가난한 백인 ' 과 곧잘 짝을 이룬다. ' 가난한 흑인과 가난한 백인 ' 이 아니다.

' 흑인과 가난한 백인 ' 인 것이다. 실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 281쪽 )


이 책은 2가지를 말하고 있다. 이페멜루라는 한 여인의 정신적인 성장과 운명적인 사랑. 아프리카에 있는 나이지리아라는 작은 나라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그녀는 미국으로 온 순간, 마치 온 세상이 거즈에 둘러싸인 듯 알 수 없는 벽을 느낀다. 한편, 그녀는 아프리카에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온 상태이다. 오빈제라는, 이페멜루 만큼 책을 좋아하고 친절하고 신사적인 그 남자는 하루빨리 그녀를 만나러 미국으로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들은 만난 순간 첫눈에 반했고 미래를 함께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글쎄 인생은 우리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 네가 정말 예쁘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어.

너는 무얼 하든 네가 하고 싶어서 하지, 남들이 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따라 하지는 않을 사람으로 보였거든 ." ( 107쪽 )

미국이라는 요지경 속에 들어와서 넘어지고 굴렀다가 다시 일어난 이페멜루. 그녀는 한때 내면세계와 바깥 세계의 크나큰 괴리를 이기지 못하고 우울에 빠지기도 했으나 그것을 극복했다. 그녀는 자신의 나이지리안 정신세계에 너무나 큰 혼란을 준 미국 문화에 이제 적응한 후 이제는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 블로그를 통해서 미국 속의 인종 문제를 한껏 비꼬고 꼬집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녀. 포스트의 제목은 [ 인종 단상 혹은 미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비미국인 흑인의 별난 생각 ]이다. 그녀가 올리는 포스트는 진실의 문을 열어버린다. 어떤 사람들은 반기지만 다른 사람들은 거부하고 혐오스러워하기까지 한다. 어쨌든 영향력을 미치려는 그녀의 의도는 성공한 셈!!

" 그녀에게 블로그는 새롭고 낯선 것이었다. (.....) 그녀는 다른 독자들을 원했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침묵을 택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미국에 와서 흑인이 되었을까?

얼마나 많은 이가 자신의 세상이 거즈에 싸인 것 같다고 느꼈을까? " (119쪽)

" 그녀가 마지막으로 감사한다고 말했을 때 주위 사람들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 "

" 당신 얘기는 다 헛소리고 당신은 인종주의자야. 우리가 이 나라에 받아 준 걸 감사하기나 해." (132쪽)

한때 영향력있는 블로거에 유명한 강연자였던 이페멜루, 프린스턴 대학의 연구비를 지원받기도 하는 등.. 이제 미국에서 승승장구 한다. 백인인 커트와 흑인이지만 미국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블레인과의 다사다난했던 연애도 끝난 상태이다. 그런데 그녀는 이제 떠나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려한다. 그렇게 떠나오고 싶었던 나이지리아로 다시 돌아가려는 이페멜루... 그녀의 최종 목적은 무엇일까?

아메리칸 드림을 가지고 있었으나 현실의 벽 앞에 좌절하고 또 일어나는 것을 그들만의 사랑과 우정을 통해 재치있게 보여주는 작품 [ 아메리카나 ]. 이페멜루의 사이다같은 인종 단상을 읽고 싶다면 지금 이 책으로 G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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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비치
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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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세 사람의 역동적인 삶의 이야기 `[ 맨해튼 비치 ].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이 몰고 온 거센 돌풍으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미국의 1930년대와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범죄 조직들 간의 패권 다툼과 거친 남성 세계에서 성장하는 한 강한 여성의 모습이 줄곧 묘사되어 있어서 누아르와 페미니즘 소설이 겹쳐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거기에 각 개인이 경험한 삶의 사건을 통해서,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역사의 줄기를 볼 수 있어서 역사 장편 소설이라는 느낌도 드는,,, 그야말로 다채로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 맨해튼 비치 ]의 두 가지 키포인트는 뉴욕의 뒷골목을 접수했던 갱스터들 이야기와 2차 세계대전 때문에 나라를 떠나있던 남자들 대신에 팔을 걷어붙이고 무기와 부품을 제조했던 강인한 여성들이다. [ 그중에서도 주인공 에너 켈리건 이야기가 주이긴 하지만 ] 뉴욕 갱스터 이야기는 영화를 통해서 여러 번 다루어졌던 것으로 기억난다. 1920년대부터 시작된 금주법으로 인해서 술 제조와 판매 자체가 금지되었으나 오히려 나이트클럽 등을 통해서 불법적인 술의 판매가 이루어졌고 조직의 세력 확대도 이루어졌던. 그들의 이야기에는 도박, 술, 여자가 빠질 수 없으니... 한마디로 꿀잼!!



그러나 어쨌든 이 책을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은 남성들만이 독점했던 다이버 세계에 뛰어들어서 당당히 그 자리를 꿰첸 강한 여성 에너 케리건일 것이다. 그녀는 처음에는 해군 공창에서 일하면서 부품의 크기를 재는 역할을 맡지만 곧 그 일이 지루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다이버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드넓고 비밀스러운 해저를 탐험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그 일에 지원하는 그녀. 물론 처음에는 남자들의 여성에 대한 텃세가 있었으나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힘으로 결국 다이버가 되는 케리건.



그녀가 다이버가 된 데는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5년 전 홀연히 사라져버린 아버지 에디 케리건. 아버지는 돈이 가득 든 봉투 하나와 통자를 하나 남기고 에너와 장애를 가진 리디아 그리고 어머니를 떠나버린다. 천사처럼 아름답지만 온몸이 뒤틀린 채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리디아의 존재가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아니면 그의 신변에 어떤 안 좋은 일이 발생한 것일까? 그녀는 친구 넬과 록시라는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사장인 덱스터 스타일스를 만나게 된다. 이탈리아 갱의 수장이었던 그에게 내내 뭔가를 물어보고 싶었던 에너.

“ 덱스터 스타일스. 그 나이트클럽 사장과 우연히 마주친 이후로 이주 동안

그녀의 상상은 살금살금 발끝으로 움직여 모골이 송연해지도록

무서운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아버지가 집을 떠난 게 아니라면, 암흑가의 총알 세계를 받고 제거된 거라면,

그래서 죽어가는 입술로 < 시민 케인 >의 로즈버드처럼 애너의 이름을 읊조렸다면 ”

이 `맨해튼 비치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려면, 혼란과 격변의 시대였던 1930년대와 1940년대 미국 역사적 배경을 좀 알아야 할 것 같다. 대공황으로 인해 사람들의 삶은 팍팍했지만 항구와 부두를 중심으로 결집되어 있었던 범죄 조직들은 ( 아일랜드 파와 이탈리아 파 ) 나이트클럽 운영 등을 통해 나름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고 풍족한 삶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충돌하고 꿈틀대면서 호시탐탐 서로를 없애버릴 계획을 세우는데 ... 조직 내에서는 배신이 판을 치고 언제 사람들이 한순간에 사라질지 몰랐다.

그리고 여성들은 더 이상 집에서 바느질이나 하는 주부가 아니었다. 전쟁 시 사용할 무기를 제조하고 폭탄을 만들고 배나 비행기에 쓸 부품을 점검했던 그녀들. 그런 그녀들의 강한 이미지는 위의 포스터에서도 드러난다. 전쟁 이후 남자들이 돌아도면서 결국 그녀들은 가정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이때 이후로 아마 미국 사회 속에서 여성의 발언권과 인권의 지각 변동이 이루어졌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어쨌든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영민하고 강한 의지를 가진 여성 에너 케리건이다. 운명이라는 밧줄은 5년전 갑자기 실종된 아버지를 찾아보려는 그녀의 행방을 다이버라는 직업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나이트 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덱스터 스타일스는 에너의 아버지인 에디 케리건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를 구심점으로 모인 이 세 사람의 드라마틱하고도 운명적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독자들은 크나큰 감동과 재미를 느낄 것이라고 본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짜임새로 인해서 책의 끝부분까지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하게 만든 소설. [ 맨해튼 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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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디 얀다르크 - 제5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염기원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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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 구디 얀다르크 ]는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1세기 노동을 반영하는 노동소설이라는 [ 구디 얀다르크 ] 속으로 들어가 보자. 주인공의 이름은 사이안. 그녀가 고등학생일 때 아버지는 IMF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그러나 그녀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후 절망을 딛고 사업을 시작했던 어머니는 다단계에 빠진 후 극단적 선택을 해버린다. 그 이후 마흔인 지금까지 쭉 혼자 살아오고 있는 그녀. 대기업에서 서비스 기획을 맡고 IT 회사들을 여러 곳 거치는데 대출이 많아서 퇴사하고 싶어도 퇴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소설은 그녀가 버스 안의 승객들을 관찰하면서 시작된다. 그녀의 시점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데, 그녀가 기억하는 그때 그 시절 ( 그녀는 99학번이다 / 월드컵 이야기 등등 나옴 ) 의 특정 사건이나 장면 묘사가 아주 생생하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내가 주인공과 동시대를 살아서 그런가 보다.


소설 초반부에 그녀는 대학생이었던 시절의 멋졌던 남자와 현재 12살 연하 2군 야구선수와의 연애 이야기까지 추가로 풀어놓는다. 그러한 가족과 연인에 대한 이야기 덕분에, 노동자의 고단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노동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느낌보다는 연애사와 가족사를 다루고 있어서 별 부담 없이 가벼운 느낌도 들었다.

“나는 IT의 ABC도 모르고 대기업이니 좋으리라 생각하며 회사에 들어갔다.

처음 배치된 조직은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사업본부였다.

내가 속한 기획팀은 고객사의 요구 사항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한 후

개발팀, 디자인팀과 함께 제작하여 배포하는 제 주된 임무였다.”(P. 111)


회사에서 그녀의 역할과 책임은 납품한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녀의 주된 업무는 화가 난 고객사의 불만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어쩌면 조직은 충실한 기계 부품만을 원하는 곳인지도 모른다. 그곳은 내가 원하는 업무만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 미생 "이라는 드라마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부서에 배정을 받지 못하던 사원이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장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능력을 차별받는 장면도 등장했었다. 아직은 갑을 관계에 익숙한 우리나라의 수직적 조직 문화가 잘 드러나는 장면들이라고 볼 수 있다.

세상은 거머리 천지이다. 갑이 을에게, 을이 병에게 흡혈한 피로 산업이 돌아간다.

사람의 불안감을 빨아먹고 사는 보험, 상조, 종교, 음모론자, 언론인,

유사과학자는 또 얼마나 많은가.

정부 지원금에 빨대를 꽂아서 빨아먹고 사는 거머리 스타트업도 수없이 많다.

멀리 볼 것도 없이 가족이나 연인의 사랑을 빨아먹고 사는 거머리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p. 134)


구디의 의미가 뭔가 했더니 " 구로 디지털 단지 " 를 줄인 말이었다. 사이안은 구디 산업 단지에서 이직과 퇴직 그리고 창업과 실패 등등을 오가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노조를 설립하게 된다. 꿈 속에서 " 잔다르크 " 가 속삭이는 말을 듣고 노조를 설립했던 그녀는 어느새 구디의 잔다르크 즉, 구구디 얀다르크가 되어 있다. 노조의 선두에서 한 몸 바쳐보려했지만 그녀는 결국 노동조합도 하나의 조직 사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정의와 진보를 외치는 노조 안에 불의와 정치가 판치고 있었던 것.


“이제야 잔다르크가 전쟁에서 연승했던 이유를 알았다.

그녀가 지었던 승리자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은 자신 있게 전진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런 표정을 지어본 적이 있는가?

전투에 승리했을 때에도 다음 전투를 준비하느라, 닥쳐올 위기를 걱정하다가 전쟁에서 패배했고 이렇게 늙어버렸다.”(p. 238)


아직도 전태일 시대의 노동 운동이 되풀이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기만 하다. 산업이 바뀌었을 뿐 노동자들의 노동 현실은 여전하다는 사실을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와 자본가는 교묘한 방식으로 노조를 탄압하고 노조 안에서는 정치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안에서 자신들만의 권력 놀이를 하고 있다. 이 소설은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현대 노동자들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동시에 노동자들인 우리에게 고민을 안겨주기도 한다. 인간의 몸에 맞지 않는 비뚤어진 노동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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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 - 피해자 없는 범죄, 성폭력 수사 관행 고발 보고서
T. 크리스천 밀러.켄 암스트롱 지음, 노지양 옮김 / 반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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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 피해 여성은 어떻게 침묵을 강요당하나 "

소설인 줄 알았더니 일종의 르포 형식의 글인 <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 >. 기자인 두 저자가 직접 발로 뛰어서 취재한 글이다. 실제 피해자인 ' 마리 ' 와 지인들의 인터뷰 그리고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다양한 언론 상을 수상했는데 2016년 공동 집필한 이 책 <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 >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성폭력은 강력 범죄 중 하나다. 그러나 강력 범죄 중 가장 신고율이 낮다고 한다. 왜?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아마 강간을 당한 여성 중 경찰에 신고하는 케이스는 10명 중 1명도 채 안 될 것이라고 본다. 성폭력 피해자를 대하는 경찰과 사회의 무지몽매한 태도 때문이다. 이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에서는 사건을 경험하고도 수차례 번복하여 거짓말쟁이로 몰리게 된 마리라는 여성의 케이스가 등장한다.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신고했다가 무고로 몰려서 고통받는 여성들. 그러나 사람들은 아는지... 육체적 살인이 있다면 영혼의 살인도 있다고 그것이 바로 강간이라는 것. 강간 사건으로 인한 고통과 트라우마는 평생 지속될 수 있다는 것.

녹갈색 눈동자에 곱슬머리 그리고 치아 교정기를 낀 18세 소녀 마리는 경찰에 강간 신고를 한다. 아파트에 침입한 낯선 남자가 그녀의 눈에 눈가리개를 하고 팔다리를 묶고 재갈을 물린 후 강간한 것. 이후 일주일간 마리는 경찰에게 이 이야기를 최소 다섯 번 반복한다. 마른 체형의 백인 남성, 키는 170센티가 안됨. 청바지 입었음. 후드 티셔츠 착용.. 하지만 마리가 진술할 때마다 말이 조금씩 바뀌고 그 와중에 경찰은 마리를 의심하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에 주목하고는 그녀를 불러 주변 사람들의 의심을 전달한다. 마리는 무너져내리고 모두 지어낸 이야기라고 자백한다.

과연 마리가 거짓말쟁이였을까? 결론은... 그녀는 경찰의 강간 피해자 보고서에 나와 있는 유형에 맞지 않았을 뿐 강간 피해자가 맞았다. 범인은 실제로 존재했고 마리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피해자들과도 관계가 있었다. 2011년 대학원생엔 엠버가 콜로라도 주 골든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2010년에는 콜로라도 주 웨스트민스터에서 세라라는 여인이 그리고 그전 2009년에는 도리스라는 여인이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피해자들을 수차례에 걸쳐 강간하고 그들의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만약 신고를 하면 인터넷에 올린다면서 협박을 가했다. 이 책에서 사건을 담당한 여형사 갤브레이스는 같은 경찰인 남편과의 대화에서 각 사건의 연관성을 파악하고는 조사에 돌입한다.

사실 강간 사건을 당한 피해자 입장에서는 너무 내밀하고 사적인 부분이라 이야기하기도 힘들고 충격 때문에 정확하게 떠올리기도 힘들다. 그런데 남자들이 대부분인 경찰들은 그러한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 책 속 핸더샷이라는 여형사는 100여건이 넘는 강간 사건을 담당하면서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그 당시를 떠올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지를 알고 있다. 경찰들이 강간 피해자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에 대해 어이없어하면서 " 저 사람 범인 잡고 싶은 것 맞아요? " 할 때마다 그녀는 그들에게 말한다. " 아내랑 최근에 한 잠자리에 대해 자세히 말해볼래? "

그리고 강간 피해자의 태도와 반응이 천편 일률적으로 다 같지 않을 수 있다. 피해자의 평소 성향 나이대 등등에 따라 그들의 반응이 다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간 피해자에 대한 의심이 경찰 사회 그리고 공동체에 얼마나 퍼져있는지는 1999년 출간된 국제경찰 서장 연합 문건을 봐도 알 수 있다.

" 강간이란 상황에서 피해자는 극심한 불안감을 보이며 감정적으로 극도로 흥분해있다.

보통은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며 대체로 부상, 베인 상처, 멍, 찰과상 등이 남아 있다. (...)

열거한 징후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거나 거의 없다면 강간 기소의 타당성과 관련하여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할 수 있다 "

갤브레이스, 핸더샷 그리고 버지스 이 세 형사는 각자의 수사 파일을 합치는데 다들 다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다소 내성적이고 똑똑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것처럼 보임. 피해 여성들의 일상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범죄를 매우 기계적으로 철저하게 효율적으로 저지름. 3명의 형사들은 공조 수사를 통해서 지역 여성들을 공포에 빠뜨리고 피해자들을 고통과 트라우마에 빠지게 만들었던 범죄자를 체포한다. 그를 체포하는 와중에 발견된 사진 속에 마리의 사진도 있어서 그녀의 무고죄는 풀리게 되지만 그 와중에 마리가 받은 상처는 누가 보상해줄까?

이 책을 읽는 게 너무 힘들었다. 마치 범죄현장에 가 있는 듯 생생하게 묘사된 장면 때문에 피해자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고나 할까? 한 피해자는 범죄자가 욕실로 들어가서 욕조에 물을 채우라고 했을 때 자신을 익사시키려는 줄 알았다고 했다. 담담하게 내뱉는 그 말이 더 가슴을 찢어놓았다. 강간은 일어나서도 안되는 범죄이지만 결코 가볍게 다루어져서도 안되는 문제이다. 이런 책이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좀 더 환기시켰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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