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디 얀다르크 - 제5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염기원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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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 구디 얀다르크 ]는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1세기 노동을 반영하는 노동소설이라는 [ 구디 얀다르크 ] 속으로 들어가 보자. 주인공의 이름은 사이안. 그녀가 고등학생일 때 아버지는 IMF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그러나 그녀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후 절망을 딛고 사업을 시작했던 어머니는 다단계에 빠진 후 극단적 선택을 해버린다. 그 이후 마흔인 지금까지 쭉 혼자 살아오고 있는 그녀. 대기업에서 서비스 기획을 맡고 IT 회사들을 여러 곳 거치는데 대출이 많아서 퇴사하고 싶어도 퇴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소설은 그녀가 버스 안의 승객들을 관찰하면서 시작된다. 그녀의 시점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데, 그녀가 기억하는 그때 그 시절 ( 그녀는 99학번이다 / 월드컵 이야기 등등 나옴 ) 의 특정 사건이나 장면 묘사가 아주 생생하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내가 주인공과 동시대를 살아서 그런가 보다.


소설 초반부에 그녀는 대학생이었던 시절의 멋졌던 남자와 현재 12살 연하 2군 야구선수와의 연애 이야기까지 추가로 풀어놓는다. 그러한 가족과 연인에 대한 이야기 덕분에, 노동자의 고단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노동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느낌보다는 연애사와 가족사를 다루고 있어서 별 부담 없이 가벼운 느낌도 들었다.

“나는 IT의 ABC도 모르고 대기업이니 좋으리라 생각하며 회사에 들어갔다.

처음 배치된 조직은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사업본부였다.

내가 속한 기획팀은 고객사의 요구 사항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한 후

개발팀, 디자인팀과 함께 제작하여 배포하는 제 주된 임무였다.”(P. 111)


회사에서 그녀의 역할과 책임은 납품한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녀의 주된 업무는 화가 난 고객사의 불만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어쩌면 조직은 충실한 기계 부품만을 원하는 곳인지도 모른다. 그곳은 내가 원하는 업무만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 미생 "이라는 드라마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부서에 배정을 받지 못하던 사원이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장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능력을 차별받는 장면도 등장했었다. 아직은 갑을 관계에 익숙한 우리나라의 수직적 조직 문화가 잘 드러나는 장면들이라고 볼 수 있다.

세상은 거머리 천지이다. 갑이 을에게, 을이 병에게 흡혈한 피로 산업이 돌아간다.

사람의 불안감을 빨아먹고 사는 보험, 상조, 종교, 음모론자, 언론인,

유사과학자는 또 얼마나 많은가.

정부 지원금에 빨대를 꽂아서 빨아먹고 사는 거머리 스타트업도 수없이 많다.

멀리 볼 것도 없이 가족이나 연인의 사랑을 빨아먹고 사는 거머리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p. 134)


구디의 의미가 뭔가 했더니 " 구로 디지털 단지 " 를 줄인 말이었다. 사이안은 구디 산업 단지에서 이직과 퇴직 그리고 창업과 실패 등등을 오가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노조를 설립하게 된다. 꿈 속에서 " 잔다르크 " 가 속삭이는 말을 듣고 노조를 설립했던 그녀는 어느새 구디의 잔다르크 즉, 구구디 얀다르크가 되어 있다. 노조의 선두에서 한 몸 바쳐보려했지만 그녀는 결국 노동조합도 하나의 조직 사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정의와 진보를 외치는 노조 안에 불의와 정치가 판치고 있었던 것.


“이제야 잔다르크가 전쟁에서 연승했던 이유를 알았다.

그녀가 지었던 승리자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은 자신 있게 전진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런 표정을 지어본 적이 있는가?

전투에 승리했을 때에도 다음 전투를 준비하느라, 닥쳐올 위기를 걱정하다가 전쟁에서 패배했고 이렇게 늙어버렸다.”(p. 238)


아직도 전태일 시대의 노동 운동이 되풀이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기만 하다. 산업이 바뀌었을 뿐 노동자들의 노동 현실은 여전하다는 사실을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와 자본가는 교묘한 방식으로 노조를 탄압하고 노조 안에서는 정치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안에서 자신들만의 권력 놀이를 하고 있다. 이 소설은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현대 노동자들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동시에 노동자들인 우리에게 고민을 안겨주기도 한다. 인간의 몸에 맞지 않는 비뚤어진 노동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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