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 - 피해자 없는 범죄, 성폭력 수사 관행 고발 보고서
T. 크리스천 밀러.켄 암스트롱 지음, 노지양 옮김 / 반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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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 피해 여성은 어떻게 침묵을 강요당하나 "

소설인 줄 알았더니 일종의 르포 형식의 글인 <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 >. 기자인 두 저자가 직접 발로 뛰어서 취재한 글이다. 실제 피해자인 ' 마리 ' 와 지인들의 인터뷰 그리고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다양한 언론 상을 수상했는데 2016년 공동 집필한 이 책 <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 >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성폭력은 강력 범죄 중 하나다. 그러나 강력 범죄 중 가장 신고율이 낮다고 한다. 왜?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아마 강간을 당한 여성 중 경찰에 신고하는 케이스는 10명 중 1명도 채 안 될 것이라고 본다. 성폭력 피해자를 대하는 경찰과 사회의 무지몽매한 태도 때문이다. 이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에서는 사건을 경험하고도 수차례 번복하여 거짓말쟁이로 몰리게 된 마리라는 여성의 케이스가 등장한다.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신고했다가 무고로 몰려서 고통받는 여성들. 그러나 사람들은 아는지... 육체적 살인이 있다면 영혼의 살인도 있다고 그것이 바로 강간이라는 것. 강간 사건으로 인한 고통과 트라우마는 평생 지속될 수 있다는 것.

녹갈색 눈동자에 곱슬머리 그리고 치아 교정기를 낀 18세 소녀 마리는 경찰에 강간 신고를 한다. 아파트에 침입한 낯선 남자가 그녀의 눈에 눈가리개를 하고 팔다리를 묶고 재갈을 물린 후 강간한 것. 이후 일주일간 마리는 경찰에게 이 이야기를 최소 다섯 번 반복한다. 마른 체형의 백인 남성, 키는 170센티가 안됨. 청바지 입었음. 후드 티셔츠 착용.. 하지만 마리가 진술할 때마다 말이 조금씩 바뀌고 그 와중에 경찰은 마리를 의심하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에 주목하고는 그녀를 불러 주변 사람들의 의심을 전달한다. 마리는 무너져내리고 모두 지어낸 이야기라고 자백한다.

과연 마리가 거짓말쟁이였을까? 결론은... 그녀는 경찰의 강간 피해자 보고서에 나와 있는 유형에 맞지 않았을 뿐 강간 피해자가 맞았다. 범인은 실제로 존재했고 마리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피해자들과도 관계가 있었다. 2011년 대학원생엔 엠버가 콜로라도 주 골든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2010년에는 콜로라도 주 웨스트민스터에서 세라라는 여인이 그리고 그전 2009년에는 도리스라는 여인이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피해자들을 수차례에 걸쳐 강간하고 그들의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만약 신고를 하면 인터넷에 올린다면서 협박을 가했다. 이 책에서 사건을 담당한 여형사 갤브레이스는 같은 경찰인 남편과의 대화에서 각 사건의 연관성을 파악하고는 조사에 돌입한다.

사실 강간 사건을 당한 피해자 입장에서는 너무 내밀하고 사적인 부분이라 이야기하기도 힘들고 충격 때문에 정확하게 떠올리기도 힘들다. 그런데 남자들이 대부분인 경찰들은 그러한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 책 속 핸더샷이라는 여형사는 100여건이 넘는 강간 사건을 담당하면서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그 당시를 떠올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지를 알고 있다. 경찰들이 강간 피해자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에 대해 어이없어하면서 " 저 사람 범인 잡고 싶은 것 맞아요? " 할 때마다 그녀는 그들에게 말한다. " 아내랑 최근에 한 잠자리에 대해 자세히 말해볼래? "

그리고 강간 피해자의 태도와 반응이 천편 일률적으로 다 같지 않을 수 있다. 피해자의 평소 성향 나이대 등등에 따라 그들의 반응이 다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간 피해자에 대한 의심이 경찰 사회 그리고 공동체에 얼마나 퍼져있는지는 1999년 출간된 국제경찰 서장 연합 문건을 봐도 알 수 있다.

" 강간이란 상황에서 피해자는 극심한 불안감을 보이며 감정적으로 극도로 흥분해있다.

보통은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며 대체로 부상, 베인 상처, 멍, 찰과상 등이 남아 있다. (...)

열거한 징후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거나 거의 없다면 강간 기소의 타당성과 관련하여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할 수 있다 "

갤브레이스, 핸더샷 그리고 버지스 이 세 형사는 각자의 수사 파일을 합치는데 다들 다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다소 내성적이고 똑똑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것처럼 보임. 피해 여성들의 일상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범죄를 매우 기계적으로 철저하게 효율적으로 저지름. 3명의 형사들은 공조 수사를 통해서 지역 여성들을 공포에 빠뜨리고 피해자들을 고통과 트라우마에 빠지게 만들었던 범죄자를 체포한다. 그를 체포하는 와중에 발견된 사진 속에 마리의 사진도 있어서 그녀의 무고죄는 풀리게 되지만 그 와중에 마리가 받은 상처는 누가 보상해줄까?

이 책을 읽는 게 너무 힘들었다. 마치 범죄현장에 가 있는 듯 생생하게 묘사된 장면 때문에 피해자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고나 할까? 한 피해자는 범죄자가 욕실로 들어가서 욕조에 물을 채우라고 했을 때 자신을 익사시키려는 줄 알았다고 했다. 담담하게 내뱉는 그 말이 더 가슴을 찢어놓았다. 강간은 일어나서도 안되는 범죄이지만 결코 가볍게 다루어져서도 안되는 문제이다. 이런 책이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좀 더 환기시켰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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