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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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유와 역사적 사실이 빚어낸 매력적인 스토리

악은 실체가 있을까? 만약 그 실체가 있다면 유전을 통해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것일까? 인간 악의 근원을 파헤치는 듯한 소설 [악의 유전학]을 읽었다.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생체 실험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입을 통해 듣는 이야기처럼 생생했다. 인간을 상대로 자행된 생체 실험이 그러하듯 매우 반 인륜적인 내용에 치가 떨리고 소름이 돋았다. 비뚤어진 우생학과 진화 이론이 만나 끔찍한 실험을 탄생시킨다. 우생학에 심취했던 히틀러가 완벽한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직접 쌍둥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니... 과학은 양날의 검.. 과학이 발전할수록 더욱더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각종 범죄와 테러 그리고 살인을 스스럼없이 일삼은 한 냉혹한 사내는 현재 차르 비밀 경찰에게 쫓기고 있는 신세이다. 잡히면 꼼짝없이 투르한스크라는 지역으로 유배를 가야한다. 붙잡히기 전 마지막으로 어머니 얼굴을 보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사내. 이것이 아들과 보내는 마지막 시간이 될 것임을 직감한 어머니는 평생 가슴 속에 깊이 묻어놨던 비밀을 그에게 털어놓는다. 그것은 바로 그의 탄생에 관한 비밀. 그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진짜 악마는 따로 있다. 그 악마가 베소 ( 사내의 아버지 ) 와 나를 완전히 망가뜨렸어 ."

1858년 알렉산드르 2세가 황권을 이어받은 지 4년째, 투르한스크 지역에 있는 두 마을 유쥐나야와 홀로드나야에는 수백 명이 함께 지낼 수 있는 공동 거주지가 지어진다. 이곳이 지어진 이유는 리센코 후작이라는 과학자가 이끄는 프로젝트를 시행하기 위함이었다. 과학자 라마크르가 주장한 획득 형질의 유전, 즉 부모 세대가 노력하여 얻은 특징은 후대에 점진적으로 유전된다는 진화 이론을 신봉했던 과학자 리센코. 그는 러시아의 추운 날씨도 극복해내는 완벽한 인간을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는다. 수백 명의 아이들을 상대로 펼쳐지는 잔혹한 실험. 영하 50도의 얼음물을 깨고 들어가는 입수 기도가 시작되고 어린 아이들은 물에 들어가자마자 심장 마비에 걸려 죽거나 동상에 걸려 발가락을 잘라내게 되는데....

한마디로 무시무시한 소설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열정이 가득하고 아이들에게도 친절했던 과학자 리센코는 실험의 거듭되는 실패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점점 더 미치광이로 변해 간다. 실험 대상이 되었던 아이들은 얼음물에 들어가서 죽거나, 아니면 얼음물에서 너무 빨리 나왔다고 벌을 받아 죽거나 아니면 가혹한 환경을 견디지 못해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여 나중에는 몇 명 남지 않게 된다. 주인공 사내의 어머니인 케케는 얼음물에 들어갔다가 거의 반 죽음 상태로 나왔지만 다시 살아남은 덕분에 " 기적의 케케 " 로 불리면서 주목을 받고 끝까지 살아남지만 반 이성적이고 반 인륜적인 실험의 끝은 황폐함과 절망 뿐이다.

실제로 과거 러시아 제국에서 이런 실험이 벌어진 줄 알았다. 그만큼 이야기는 현장감이 있고 생생하게 펼쳐진다. 과거 여러 나라에서 펼쳐진 잔혹하고 반 인륜적인 생체 실험이 그러했듯, 완벽한 인간을 만들려는 욕심은 완벽한 파괴로 이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소설도 나름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인간의 교만함과 오만함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사악한 결과를 낳았는지를 절실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정말로 끔찍한 것은, 리센코의 실험이 완벽한 실패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혹한기를 이겨내는 유전자를 가진 인간을 만들겠다는 실험은 실패한게 맞다. 그러나 그가 시작하려고 의도하지 않았던,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아예 기대하지도 않았던 " 유전 실험 " 이 성공했다는 사실!! 소설의 끝부분에서 소름돋는 반전이 펼쳐진다. 결론은 ? 의지에 의해 " 악 " 은 창조되었고, 그 창조된 " 악 " 은 유전자에 또렷이 새겨진 채 후대에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한 편의 다큐 영화 같았던 재미있고 충격적이었던 소설 [악의 유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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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슬 수집사, 묘연
루하서 지음 / 델피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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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루', 사람 '인'

당신은 아주 특별한 '루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주어진 마지막 기회,

오늘 밤, 이슬 집사를 만나게 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삶과 죽음의 문제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영역이기에 더욱 더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죽고 나서 과연 심판을 받는 게 맞는지, 천국이나 지옥이 실제로 있는지, 등등 사람들은 죽음 이후에 대해 관심이 많지만 누구도 완벽한 답을 얻을 순 없다. 그래서인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서서 두 영역을 동시에 다루는 판타지물이 사람들의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

이 책 [밤이슬 수집가, 묘연]은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 특히 " 루인 "이라고 지정된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이 흘린 눈물을 받아내는 이야기이다.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을 " 집사 "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 루인 " 들의 죽음에 직접 관여할 수는 없다. 다만, 저승의 문턱을 넘어가기 직전에 그들이 흘리는 눈물을 받아내야만 한다. 시간에 쫓기는 일인데다가 당사자로부터 직접 눈물을 이끌어내야 하는 일이기에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그만큼 소중한 눈물은 호리병에 담긴 후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에 쓰일 수 있다.

주인공 문이안은 아버지의 실종과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후 현재 삶에 미련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특히 아버지가 떠난 후 혼자 남겨진 어머니가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그 빚은 고스란히 이안의 몫이 되었다. 더럽고 음산한 좁은 골목에서 생을 마감하려고 하던 그 순간, 갑자기 어딘가에서 나타난 한 할아버지. 그는 자신이 이안의 할아버지라고 소개한 뒤 엄청난 돈을 제시하며 이안에게 할 일이 있다고 한다. 긴가 민가 했던 이안은 할아버지가 준 명함을 보고 연락을 하게 되고 " 미다스 " 라 불리는 대저택에 입성하게 된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놓인 신비롭고 몽환적인 그곳에서 이안은 낮에는 고양이의 모습, 밤에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한 수집사 묘연을 만나게 되는데....

세상을 등지려다 얼떨결에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놓인 " 미다스 저택 "으로 들어가게 된 이안. 그는 까칠하게 그지없는 수집사 " 묘연 " 과 짝을 이루어 " 루인 " 들이 흘리는 눈물을 받아낸다. 이 소설의 진가는 아마도 각각의 루인들의 사연이 소개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병간호하다 지친 딸,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를 무참히 폭행한 삼촌을 막아내려 폭력을 썼던 청년 등등 이들의 사연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가끔 마주치는 사연이기에 더욱더 공감이 가고 안타까웠다. 그랬기에 그들이 흘리는 눈물이 값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TV 드라마나 영화로 변신한다면 참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이미지가 나올 것 같은 소설 [밤이슬 수집가, 묘연] 특히 낮에는 고양이였다가 밤에만 인간으로 변하는 까칠하기 그지없고 도도한 묘연이라는 캐릭터가 주는 재미가 있었다. 겉으로는 냉정하고 차가운 척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그런 츤데레의 전형? 어쨌든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임에는 틀림없다. 책을 읽다 보면 묘연과 집사 활동을 하는 가운데 조금씩 성장하는 문이안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들을 돌보는 집사들의 이야기 [밤이슬 수집사, 묘연] 삶을 초월하는 이야기, 신비로운 이야기에 끌리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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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실시 기담괴설 사건집 허실시 사건집
범유진 외 지음 / 고블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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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에서는 종종 괴이한 사건이 일어난다 "

이 책 [허실시 기담괴설 사건집]은 허실시라는 가상의 소도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여러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다루는 일종의 연작 소설이다. 총 5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각 이야기에 소위 괴담 전문가인 진설주 선생이라는 사람이 매번 등장하면서 단편들을 이어주는 중심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런데 허실시에 저주가 걸린 걸까? 이곳에서 귀신이 출몰하고 사람들이 실종되거나 죽음을 당하는 등 굉장히 불길하고 으스스한 일들이 발생한다. 빵집에 귀신이 출몰하는 이유는? 거대한 호랑이 귀신에 의해 기물이 파손되는 일을 겪는 학교가 있다고? 상가 건물에서 사람들이 실종되는 이유는?

첫 번째 단편 [ 최애 빵 구출 레시피 ]는 허실시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 허실당에 나타나는 귀신 때문에 위기에 처하게 되는 주인공 이야기이다. 주인공 노지연은 허실당 빵 중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김말자 빵이 앞으로 없어질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망연자실한다. 그 이유는 바로 허실당에 출몰하는 귀신이 유독 김말자 빵 앞에서 배회하기 때문이었다. 소위 ' 귀신 부르는 빵 '이 되어버린 김말자 빵. 이 빵을 너무나 사랑해서 쌓아두고 먹는 노지연은 어릴 때 화재를 예견하여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전력 덕분에 허실동의 아이로 불린다. 빵도 구하고 마을도 구하는 심정으로 귀신 흉내를 내는 범인을 색출하기로 마음먹은 노지연... 과연 그녀는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을까?

세 번째 단편 [사굴기담]이 개인적으로 제일 짜임새 있고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한때는 무당으로 살아갔지만 조카 동희를 더 잘 돌보고자 하는 마음에 이제는 일반인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미령. 그런데 언젠가부터 허실시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한 아파트 상가에서 사람들이 연속적으로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 CCTV에 찍힌 장면을 보면 상가에 들어간 사람들은 있는데 그 사람들이 나오는 장면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미령과 사이가 매우 어색한 동네 언니가 의논할 게 있다면서 미령을 찾아온다. 동네 언니는 자신의 아버지가 뱀을 많이 죽이는 바람에 뱀 귀신의 복수로 상가에서 사람들이 실종되는 것인 것 같다고 걱정한다. 실제로 상가의 지하에는 커다란 뱀이 지나간 듯한 물자국도 있다. 정말 사람들의 실종은 상가 주인에 대한 뱀의 복수가 맞을까? 만약 그렇다면 뱀 귀신은 상가 주인을 놔두고 다른 사람들을 건드리는 걸까?

네 번째 단편 [서울에듀아랑 학원 전설] 은 괴담이라기보다는 정통 추리물 쪽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과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 딱히 그런 일은 없었지만 ) 대구에 있는 학원에서 권고사직을 당하게 되는 주인공 성덕. 원장의 소개로 강사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허실시에 있는 서울에듀아랑 학원에 가게 된다. 그런데 한 가지 뭔가 께름칙한 면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성덕이 맡게 될 P반을 맡았던 전 강사들이 모두 실종되었거나 사고를 당하는 등 안 좋은 일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집까지 계약을 해버렸고 다른 곳으로 옮기기에는 허실시에 연고가 너무 없는 상황. 그냥 버텨보기로 마음먹는 주인공. 그러나 첫날부터 두통과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하더니 P반의 유일한 학생인 서정은 매우 버릇이 없다. 그러던 중 학원에서 가장 수업을 잘한다는 시욱 선생님이 옥상에서 투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이게 과연 다 무슨 일인가?

내가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도 괴담은 늘 있었던 것 같다. 학교에 있던 이순신 동상이 새벽 12시만 되면 갑자기 살아나서 교정을 걸어다닌다던가 책을 읽는 두 꼬마의 동상도 그 시간만 되면 책장을 넘긴다던가 하는 그런 소문이었던 것 같다. 그냥 아이들의 지나친 상상이 만들어낸 괴담,, 학업에 짓눌리고 삶이 지루한 학생들이 창조해낸 또 다른 세계였던 것 같다. 빵을 좋아하는 귀신의 출몰, 설화에 등장하는 억울한 여자 호랑이 귀신의 난도질, 거대한 뱀신이 나타나 사람들을 물고 가버리는 상황이 발생하는 등 이 허실시는 과거와 현재, 현실과 상상, 그리고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고 어우러지며 존재하는 특이한 도시이다. 그러나 괴이하고 기이한 이야기 이면에는 허실시가 가진 현실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었으니... 상상력 풍부하고 용감한 주인공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 전통 설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해서 특히 재미있었던 소설 [허실시 기담괴설 사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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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 1~2 - 전2권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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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은 이전에 만나보지 못했던 독특한 소설이다.

1999년과 2010년이라는 10년도 더 넘은 두 시점이 교차되면서 꽤 복잡하게 꼬여있는 이야기가 소개된다. 처음에는 과연 시간 격차가 꽤 있는 이 두 지점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을까? 했는데 역시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작가의 역량이 대단한 것 같다. 1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한 호기심 많은 소설가에 의해서 파헤쳐지는데, 이 일이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1999년 4월 3일, 마운트 플레젼트 마을 호수 주변에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곰에게 한 여성의 시신이 뜯어먹히고 있었고, 아침에 조깅을 하던 한 여학생이 그것을 목격하고는 경찰에 신고했다. 시신은 20대 여성인 알래스카 샌더스. 그녀는 곤봉으로 후두부를 강타당한 흔적이 있지만 목이 졸려서 사망한 것으로 밝혀진다. 그렇다면 과연 그녀를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 여러 단서들과 정황으로 미루어봤을 때 살인범은 남자 친구 월터 캐리였고, 그의 자백에 따라서 에릭 도노반도 살인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진다. 그러나 이후 10년이 지난, 2010년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페리 게할로우드의 아내에게 이상한 편지가 도착하는 등 여러 기이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결국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 안에 묻혀있던 추악한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문학적 감성을 가진 소설가이지만 남다른 추리와 촉을 가진 주인공 마커스 골드만. 전작인 해리 쿼버트 사건에서도 그랬지만 우정을 나눈 사람들의 신변에 이상이 발생하면서 본격적으로 사건 해결에 나서게 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게, 정작 경찰들은 이 수상한 사건을 파헤치기를 거부하는 반면 ( 그냥 골치아픈 일이 발생했구나 정도로 반응 ) 소설가인 주인공이 오히려 더 끈질기게 사건 재조사를 주장하고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탐문 조사를 하고 사건을 역추적해나간다.

작가가 어떻게 보면 독자들과 밀당을 한다고 느낄만큼 이 소설은 읽는 사람을 감질나게 만든다. 살인 사건은 1999년에 알래스카 샌더스라는 여대생에게 발생한 일이긴 하지만, 2010년에도 그에 못지 않은 중한 사건이 발생한 상황이다. 그런데 두 사건에 대한 결정적인 힌트나 단서가 나올라치면 갑자기 시간이 바뀌고 이야기 흐름이 달라지는 통에 진짜 애가 타는 심정이었다. 작가님.. 언제쯤 진실을 알려줄려구요.. 라고 속으로 한숨도 몇 번 쉬었다. 그러나 사건의 비밀이 조금씩 밝혀지고 묻혀있던 진실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이야기에 속도가 붙는다. 숨겨져 있던 엄청난 반전에 그야말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야기 흐름이 좀 중구난방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웬걸 작가가 뿌린 떡밥이 나중에 고스란히 회수가 된다.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은 소설 앞부분에 여러 다양한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펼쳐지기 때문에 이야기 흐름을 파악하기가 조금 힘들다고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조금 필요하다. 하지만 매우 치밀하게 잘 짜여진 스토리이기 때문에 나중에 그 인내심에 대한 보상을 다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고구마 한 5개 먹은 기분이 들겠지만 이후에 사이다 10병으로 보답받는다고 할까? 불투명한 막에 가려져있던 진실을 밝혀내는 순간 장님이 눈뜬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실제 범죄 사건들 중에서 이런 일이 많을 것 같아서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했다. 소설가가 특유의 촉과 날카로움으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흥미진진한 소설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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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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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적인 판단력과 합리적인 사고로 인지되는 세계만이 현실이라면,

비합리적인 관념으로만 감지되는 세계는 없는 것인가?"

나는 유령, 초능력, UFO 등등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정작 누군가 나에게 ' 영적 존재 '를 실제로 믿냐고 묻는다면, 쉽사리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는다고 말하면 웬지 현실 부적응자? 혹은 너무 어리숙한 사람? 으로 찍힐까봐 조금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 사회파 추리의 거장 다카노 가즈아키 작가의 작품인 이 책 [건널목의 유령] 은 확실하게 그런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열차 정지 사고가 거듭나는 한 대도시의 건널목에서 포착된 희미한 존재,,, 그것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1994년 일본 도쿄. 일간 신문사 사회부 기자로 하루하루 숨돌릴 틈없이 살았던 마쓰다. 그는 이제 [월간 여성의 친구]라는 작은 잡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몇 년 전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혼자서 쓸쓸하게 살아가고 있는 마쓰다는 그녀를 그리워하며 영혼이라도 곁에 있기를 바란다. 그러던 어느날 잡지사에서 여름을 맞아 흥미로운 소재를 제안한다. 그것은 바로 독자들이 투고한 편지들 중 심령 사건들을 중심으로 취재하는 것이었다. 전혀 다른 독자들의 사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유령같은 실루엣.... 장난같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마쓰다는 취재를 맡게 된다.

그런데 장난스러운 다른 심령 사건에 비해서, 시모키타자와역 건널목에서 목격된 유령은 그 느낌이 달랐다. 한 대학생과 주부가 보여준 사진에는 실제로 긴 검은 머리의 여자인 듯한 피사체가 희미하게나마 찍혀있다. 심령 현상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던 마쓰다는 혹시 누군가의 초능력에 의한 '염사' 현상은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된다. 그도 현대인인지라 심령 현상을 쉽게 믿길 힘들어한다. 그러던 중 새벽 1시 3분에 뭔가 이상한 전화를 받게 되는 마쓰다. 수화기를 든 그는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만 온 몸이 얼어붙고 만다. 전화기 반대편에서는 죽음에 임박한 여성이 내는 듯한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려왔다. 마쓰다의 머리 속엔 시모키타자와역 건널목에서 찍힌 검은 머리의 여성의 피사체가 떠오르게 되는데....

예전에 다카노 가즈아키 작가의 13계단을 읽어봤었다. 한 사형수의 결백을 밝혀내기 위해서 집요하게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의 추적기가 정말 감명깊었던 소설이다. 너무나 명백한 증거 앞에서 고스란히 죄를 뒤집어쓸 수 밖에 없었던 사형수. 그런데 가히 천재적이고 집요한 추리로 속시원한 결말을 이끌어냈던 13계단의 주인공. 그런데 [건널목의 유령]의 마쓰다도 그에 못지 않은 초인적인 활약을 펼친다. 유령은 믿기 힘들지만 새벽 1시 3분이면 어김없이 걸려오는 전화. 이상한 현상과 맞닥뜨린 마쓰다는 뭔가에 홀린 듯 사건 추적에 나선다. 그러던 중 마쓰다는 경찰을 통해서 약 1년전 건널목에서 살인사건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과연 피해자는 누구였고, 이 추적을 통해서 마쓰다가 발견하게 될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주로 사회파 추리를 쓰는 다카노 가즈아키 작가의 소설이 유령에 관한 것이라니? 약간 알쏭달쏭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이 책은 " 유령 " 이라는 다소 믿기 어려운 소재를 통해서 부패하고 추악한 사회의 민낯을 고발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죽었지만 살아있을 때에도 거의 존재감이 희미했기에 " 유령 " 에 가까웠던 한 여성. 투명인간이었던 그녀의 정체를, 아주 미미한 단서를 바탕으로 한 추적을 통해 결국 밝혀내는 마쓰다. 모든 것이 드러났을 때 나는 뭔가 서글픈 감정을 느꼈다. 포식자가 넘쳐나는 사회. 그 누구의 보호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한 소녀의 얼굴이 문득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듯 했다. 어떤 사회든 힘있고 돈있는 자들의 부패가 넘쳐나고 언론이 제 역할을 잘 못할 수도 있다는 걸 또 깨달은 순간이었다. 초자연적 현상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 [건널목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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