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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평점 :
과학적 사유와 역사적 사실이 빚어낸 매력적인 스토리
악은 실체가 있을까? 만약 그 실체가 있다면 유전을 통해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것일까? 인간 악의 근원을 파헤치는 듯한 소설 [악의 유전학]을 읽었다.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생체 실험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입을 통해 듣는 이야기처럼 생생했다. 인간을 상대로 자행된 생체 실험이 그러하듯 매우 반 인륜적인 내용에 치가 떨리고 소름이 돋았다. 비뚤어진 우생학과 진화 이론이 만나 끔찍한 실험을 탄생시킨다. 우생학에 심취했던 히틀러가 완벽한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직접 쌍둥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니... 과학은 양날의 검.. 과학이 발전할수록 더욱더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각종 범죄와 테러 그리고 살인을 스스럼없이 일삼은 한 냉혹한 사내는 현재 차르 비밀 경찰에게 쫓기고 있는 신세이다. 잡히면 꼼짝없이 투르한스크라는 지역으로 유배를 가야한다. 붙잡히기 전 마지막으로 어머니 얼굴을 보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사내. 이것이 아들과 보내는 마지막 시간이 될 것임을 직감한 어머니는 평생 가슴 속에 깊이 묻어놨던 비밀을 그에게 털어놓는다. 그것은 바로 그의 탄생에 관한 비밀. 그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진짜 악마는 따로 있다. 그 악마가 베소 ( 사내의 아버지 ) 와 나를 완전히 망가뜨렸어 ."
1858년 알렉산드르 2세가 황권을 이어받은 지 4년째, 투르한스크 지역에 있는 두 마을 유쥐나야와 홀로드나야에는 수백 명이 함께 지낼 수 있는 공동 거주지가 지어진다. 이곳이 지어진 이유는 리센코 후작이라는 과학자가 이끄는 프로젝트를 시행하기 위함이었다. 과학자 라마크르가 주장한 획득 형질의 유전, 즉 부모 세대가 노력하여 얻은 특징은 후대에 점진적으로 유전된다는 진화 이론을 신봉했던 과학자 리센코. 그는 러시아의 추운 날씨도 극복해내는 완벽한 인간을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는다. 수백 명의 아이들을 상대로 펼쳐지는 잔혹한 실험. 영하 50도의 얼음물을 깨고 들어가는 입수 기도가 시작되고 어린 아이들은 물에 들어가자마자 심장 마비에 걸려 죽거나 동상에 걸려 발가락을 잘라내게 되는데....
한마디로 무시무시한 소설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열정이 가득하고 아이들에게도 친절했던 과학자 리센코는 실험의 거듭되는 실패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점점 더 미치광이로 변해 간다. 실험 대상이 되었던 아이들은 얼음물에 들어가서 죽거나, 아니면 얼음물에서 너무 빨리 나왔다고 벌을 받아 죽거나 아니면 가혹한 환경을 견디지 못해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여 나중에는 몇 명 남지 않게 된다. 주인공 사내의 어머니인 케케는 얼음물에 들어갔다가 거의 반 죽음 상태로 나왔지만 다시 살아남은 덕분에 " 기적의 케케 " 로 불리면서 주목을 받고 끝까지 살아남지만 반 이성적이고 반 인륜적인 실험의 끝은 황폐함과 절망 뿐이다.
실제로 과거 러시아 제국에서 이런 실험이 벌어진 줄 알았다. 그만큼 이야기는 현장감이 있고 생생하게 펼쳐진다. 과거 여러 나라에서 펼쳐진 잔혹하고 반 인륜적인 생체 실험이 그러했듯, 완벽한 인간을 만들려는 욕심은 완벽한 파괴로 이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소설도 나름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인간의 교만함과 오만함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사악한 결과를 낳았는지를 절실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정말로 끔찍한 것은, 리센코의 실험이 완벽한 실패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혹한기를 이겨내는 유전자를 가진 인간을 만들겠다는 실험은 실패한게 맞다. 그러나 그가 시작하려고 의도하지 않았던,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아예 기대하지도 않았던 " 유전 실험 " 이 성공했다는 사실!! 소설의 끝부분에서 소름돋는 반전이 펼쳐진다. 결론은 ? 의지에 의해 " 악 " 은 창조되었고, 그 창조된 " 악 " 은 유전자에 또렷이 새겨진 채 후대에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한 편의 다큐 영화 같았던 재미있고 충격적이었던 소설 [악의 유전학]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