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켈리튼 키
미치오 슈스케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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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리 위험한 짓을 해도 이 심장 박동은 빨라지지 않았다 ”

“ 너 같은 사람을 뭐라고 하는지 알아? 사이코패스라고 해 ”

“ 무섭다는 감정을 나는 느껴본 적이 없다 ”

근래 들어서 흉악한 범죄가 많이 발생하면서 사이코패스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반사회적 인물이거나 중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그 사람들을 사이코패스로 분류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이 사이코패스에 속하는지, 이 책의 작가는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인 히카리의 입을 빌어서 그들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 땀을 자주 흘리지 않는다. 심박수가 낮고, 긴장하거나 흥분했을 때에도 심박수의 증가가 거의 없다. 이 심박수와 반사회적인 행동의 관계성은 의학적으로, 이를테면 흡연과 폐암의 상관성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인간은 저마다 최적의 각성도가 있는데 심박수가 낮으면 그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본인의 최적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 자극을 찾아 반사회적 행동을 취한다 ”

 

사이코패스 성향을 잠재우기 위해 죽어라 심박수를 올리고자하는 남자 “ 사카키 조야 ” 이야기. 그는 우울증 약을 섭취하면서까지 심박수를 올려서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가끔씩 찾아오는 악령과도 같은 공격성은 어쩔 수 없다. 마치 피가 끓어오르는 것처럼, 혈관 속을 파고드는 벌레처럼 마음 속에 스며드는 싸늘한 공격성.

 

" 한편으로는 혈관에 무수한 장구벌레가 들끊는 것 같았다. 그 장구벌레는 아까의 싸늘함보다 더 빠르게 내 내면을 침공해 들어와 냉동된 가슴 중심에 무리 지었다. "

" 장구벌레들이 한시라도 빨리 풀어달라고 날뛰는 소리가 들린다. "

 

술집에서 일하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주인공 사카키 조야.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 어머니는 술집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고 그는 고아원에 맡겨진다. 아버지를 모르는 채로 아스팔트 위의 잡초처럼 거칠게 살아가는 조야. 위의 대화나 독백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사이코패스이다. 남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부류.

 

고아원에서 그가 일으킨 여러 사건들은 타고난 그의 이러한 성향을 잘 보여준다. 고아원 아이들을 괴롭히던 기리카와 선생님의 차 안에 폭죽을 숨겨두어 그가 반쯤 화재에 휩싸이게 한 일, 자신보다 인기가 있는 준페이의 얼굴에 벌겋게 달아오른 고구마를 바싹 들이댄 일 그리고 입양을 갔던 히카리 누나가 그 집에서 몹쓸 짓을 당하고 돌아오자 그 집에 불을 질렀던 일 등등...... 그러고도 죄책감을 느끼기 보다는 아이들이 자신에게서 점점 멀어져가는 것을 이상하게 느꼈던 조야.

 

그러던 어느날, 조야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남자를 알아낸다. 알고보니 그는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준페이의 아버지인 다고 요헤이였다. 보통은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고 하지만 조야의 경우 그렇지 않다. 존재할 수도 있었을 그의 다른 일생을 망쳐버린 남자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그를 죽이기로 마음 먹은 것.

 

그런데,, 여기에서부터 엄청난 반전이 발생한다. 어... 하는 순간 밀어닥친 반전. 물론 추리력과 관찰력이 뛰어난 독자라면 이미 알아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는 중간중간 뭔가... 어긋나버린 퍼즐처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하나하나씩 나타나기 때문이다. 책을 끝까지 읽고나서 되돌아보니 단서는 곳곳에 숨어있었다..... 이러한 반전을 미리 알아채지 못한 나 같은 독자는 안타까울 뿐.

 

사이코패스는 태어나는가? 혹은 만들어지는가? 라는 흥미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 스켈레튼 키 ]. 사이코패스에 대한 작가의 풍부한 지식이 바탕이 된 이 픽션은, 가독성은 물론이고 어마어마한 반전을 숨겨놓아 독자들을 몇 번이고 놀라게 만든다.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히카리 누나에 의해서 자신이 남과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된 조야는 평범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운명의 장난, 그것도 잔인한 운명의 장난에 빠진다.   조야 주위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조야의 목숨을 쥐고 흔들만큼 위협적이고 아슬아슬한 것이라, 마치 액션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 마냥 생동감있고 스릴 넘치게 펼쳐진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인 [ 스켈레튼 키 ] 가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 스켈레튼 키 ] 의 의미는  아주 옛날에 만들어진 워드 자물쇠라는, 지극히 단순한 구조의 자물쇠는 스켈리튼 키로 대부분 열수 있었다. 그래서 스켈리튼 키에는 ' 여벌 열쇠 ' 라는 뜻이 있었다.

조야를 고아원에 맡길 때 함께 맡겼다는 청동색의 열쇠.  도대체 이 소설에서 열쇠의 역할은 무엇일까?  스스로를 사이코패스라고 규정하고 냉정한 태도로 삶을 살아온 조야.    스켈리튼이 무엇이든 열 수 있는 " 여벌 열쇠 " 라면 조야의 냉정하고 폐쇄된 마음이라는 " 자물쇠 " 를 열 수 있을까?     소설의 결말 쯤에 다시 등장하는 스켈레튼 키...   예상치 못했던 결말로 이끌어가는 그 열쇠...    여러 장르를 섭렵하고 있다는 작가 미치오 슈스케.   다음엔 어떤 장르로 독자들을 놀래킬지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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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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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콩달콩, 재미있게 살아가는 모녀의 이야기. <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을 읽었다. 이 글을 쓴 저자는 놀랍게도 올해 15살이 되는 중학생인 스즈키 루리카 라는 소녀 이다. 그녀는 타고난 재능으로 초등학교 4,5,6학년에 걸쳐서 일본 대표 출판사 쇼가쿠칸에서 주최하는 ‘ 12세 문학상 ’ 대상을 3년 연속 수상했다고 한다.

 

 

이 소설의 중심 화자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하나미라는 소녀이다. 초등학생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어른스럽고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을 먹여살리기 위해서 남자들과 함께 막노동을 하는 어머니를 안쓰러워하기도 하지만 또 밥을 2그릇이나 먹는 대식가인 어머니를 골려먹기도 한다.

 

 

이 소설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유카라는 친구의 아버지를 함께 만나준 이야기, 주인 아주머니의 백수 아들을 만난 이야기, 재혼을 부추기는 주인 아줌마의 등쌀에 떠밀려 어머니의 맞선 자리에 함께 나간 이야기 등등.. 흥미로운 일상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러한 에피소드들은 하나미의 필터를 거치면서 때로는 감동적으로, 때로는 웃기게, 때로는 정감있게 다가온다. 특히 유카의 아버지를 함께 만나준 에피소드에서는 아버지가 없는 하나미의 마음 속 슬픔이 드러나서 조금 안타깝기도 했다. 유카의 부모님은 이혼을 한 상태, 어머니는 재혼을 하셨다. 유카가 보고 싶었던 아버지는 초등학교까지 찾아오고 유카는 하나미에게 함께 만나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들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아라카와유유랜드라는 유원지에 가서 좋은 시간을 보낸다. 놀고 온 그날, 하나미는 누워서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 언젠가 네 아빠도 부자가 되어서 우리 곁에 돌아와줄까? 그런 이야기를 예전에 읽은 것 같다. [ 소공녀 ] 였나? 인생이 갑자기 대역전되는 거다. 그러면 셋이서 레스토랑에 가서 음료 무료 쿠폰이 없어도 좋아하는 것을 먹고 싶은 만큼 먹고 드리밍랜드에 가야지. 그래. 그날을 위해서 드리밍랜드는 아껴둬야겠다. ”

 

 

소설 속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은 하나미의 예리한 관찰력에 의해 잘 묘사되어있다. 우선 하나미의 엄마, 무한 긍정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밥을 엄청 먹는데 삐쩍 말랐고 남자들도 어려워하는 공사현장에서 일하면서도 항상 밝은 모습을 잃지 않는다. 자신은 다 떨어지는 옷을 입고 살면서도 하나미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려고 애쓴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약간 주책바가지에 좀 간섭이 심하긴 하지만 두 모녀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깊은 사람이다. 어머니의 맞선을 앞장서서 주선해 주는 것을 보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주인집 아들은 20대 백수인데 항상 지저분하지만 아버지와 함께 지내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동심을 아직도 지니고있다.

 

 

하나미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성숙한 아이이다. 무엇보다도 엄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있다.

 

 

“ 벌레든 동물이든 괜찮으니까 다시 태어나도 엄마의 딸이었으면 좋겠다 ” ( 23쪽 )

 

 

“ 내가 있으면 엄마가 행복해지지 못한다. 고생만 하는 생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엄마한테 미안하다 ”. ( 138쪽 )

 

 

“ 그래도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돈을 벌 수 있는 어른이. 그러면 엄마를 드리밍랜드에 데리고 가야지. 그때는 오늘을 떠올리고 또 웃어줄 테다 ” ( 182쪽 )

 

 

중학생이지만 필력이 대단해서 놀랐다. 소소한 생활 속에서 찾아낸 즐거움들과 여러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한층 성숙해져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비록 많은 것을 줄 수 없는 어머니이지만 소설 속 표현을 통해 어머니를 엄청 사랑하는 모습이 잘 나타난다. 그래서 제목이 [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 이 아닐까? 드림랜드에 가고 싶어하거나 수퍼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갖고 싶어하는 모습에서 어린아이의 동심이 드러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어른스런 모습을 보였던 주인공 하나미. 엄마와의 미래가 꽃길이길 바라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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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카 할머니에게 맡겨 줘 시즈카 할머니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강영혜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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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된장국을 맛있게 끓어주고 물김치를 맛있게 만들어주시는 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를 바라보면 항상 푸근하다는 느낌? 뭐든지 다 들어줄 것 같은 그런 할머니셨는데 .... 그런데 할머니가 추리를 하여 사건을 해결한다? 이 책 [ 시즈카 할머니에게 맡겨 줘 ] 에 나오는 시즈카 할머니는 보통 할머니와는 결이 다른 사람이다. 그녀는 수십년간 재판관으로 재직한 경험을 가진 날카로운 지성을 바탕으로 까다로운 여러가지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을 주는데....

 

 

반전의 제왕, 나카야마 시치리 작가의 신작 [ 나즈카 할머니에게 물어봐 ] 를 읽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제목에 있는 할머니라는 단어 때문에 전혀 다른 종류의 사건들이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를 들자면, 할머니네 고양이 분실 사건 이나 누가 할머니가 만들어놓은 음식을 훔쳐갔다던지 하는... 그러나 그것은 나의 큰 착각이었다. 살인과 같은 중한 사건들이 등장하고, 경시청 형사도 해결 못해서 끙끙거리는 사건들에 대해서 단서를 추적하며 시원하게 답변을 내어놓는 천재 할머니 [ 시즈카 ].

 

이 단편 소설의 주요 화자는 경시청 소속 형사인 가쓰라기와 맑은 눈동자와 영민함이 특징인 여대생 마도카이다. 마도카는 시즈카 할머니의 손녀이고 법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새로운 사건이 난관에 부딪힐 떄마다 가쓰라기는 여대생 마도카의 도움으로 어려운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그런데 마도카의 뒤에서 그녀의 브레인이 되어준 사람은 누구? 바로 안락의자 탐정인 전직 여성 재판관 시즈카 할머니!!!!

 

첫번째 이야기는 가나가와 현경 소속 조직범죄 대책과 과장 구제 다쓰야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다. 그는 지정 폭력단 ( 폭력단 대책법이 정한 규정에 따라 다른 폭력단에 비해 범죄 발생 비율이 높은 조직이라고 각 지방 경찰청 공안 위원회가 지정한 폭력단 ) 고류회가 상시로 마약을 판매하는 곳인 컨테이너 터미널 주변에서 발견된다. 가슴에 피가 흥건한 채 엎드려서 죽음을 맞이한 구제 과장. 그런데 총탄이 경시청 소속이었다가 가나가와 현경으로 소속을 옮긴 쓰바키야마 경부의 총탄이었다. 동료에게 살해를 당했다는 말인가? 그리고 서 있는 상태로 비스듬히 위에서 총을 맞은 것으로 밝혀진 구제 과장이 엎드린 채로 발견된다. 총탄의 힘에 의해서 뒤로 쓰러질 것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엎드린 채 발견된 구제 과장..... 그런데 이 모든 단서들이 한 명의 살인범을 가리키고 있다면? 물론 이 모든 것은 시즈카 할머니의 추리에 의한 것이다.

 

나카야마 시치리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의 입을 빌어서 작가 본인의 철학이 많이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면이 흥미롭다.

 

" 정의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일, 굶고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빵을 나눠주는 일이지. 정의는 그걸로 충분해 " ( 27쪽 )

" 어떤 고매한 사상과 신념을 덧씌워도 그것만으로 자신의 동족을 냉철하게 해칠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아. 물론 예외도 있지만 지금까지 법정에서 여러 죄인을 보고 느낀 거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을 죽이려 할 때 사람은 개인으로 돌아간단다. " ( 58쪽 )

" 철이 들 무렵부터 그 사람 나름대로 자연히 행동 규범이 생기지, 성장이란 그런 자신의 규범과 세상의 상식을 맞춰 가는 작업이란다 ." (93쪽 )

 

시즈카 할머니의 도움으로 구제 다쓰야의 살인범을 지목하여 경시청의 스타가 된 가쓰라기. 이번엔 동네 수퍼 스타인 아사쿠라 할머니의 죽음에 관해 조사를 펼쳐야 한다. 그녀는 화려한 옷차림으로 ' 마치다의 레이디 가가 ' 라고 불리는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죽은 채로 발견된다. 사인은 두개골 파열. 무기는 도자기 꽃병이다. 집에 있던 물건으로 공격을 당했고 실내에 어질러진 흔적이나 없어진 금품도 없다. 따라서 도둑이나 강도의 소행은 아니라고 짐작된다. 과연 누구의 소행일까? 단서가 있다면 두가지, 그녀가 읽던 패션 잡지의 페이지가 2~3장 찢겨져나갔다는 것과 할머니의 머리가 비교적 컸고 평소에 눈에 띄는 옷과 모자를 쓰고 다녔다는 것.

 

이번에도 시즈카 할머니의 활약이 돋보인다. 할머니의 손녀딸 미오, 할머니의 장녀 쓰루미 히로에, 큰 아들 겐로 등등은 모두 용의자 혐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평소에 강박적일 정도로 자식을 억압하고 간섭했던 가쓰라기 할머니에 대한 원한 비슷한 감정이 모두에게서 묻어나왔기 때문에.

시치리 작가님의 장편 소설만 읽어왔는데 이번에 단편 소설을 읽게 되어서 새롭고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서가 있긴 하지만 이어붙이기에는 좀 동떨어지는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단서를 연결시켜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시즈카 할머니의 천재성에 감탄했다. 그리고 은근하게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가쓰라기와 마도카의 애정전선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사회에 대해, 법에 대해 고민하는 시치리 작가님 작품 답게 이번에도 조직과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저격하는 작품들이 단편으로 실려있다. 짧지만 여느 장편 못지 않게 탄탄한 구성력을 보이는 단편들... 꼭 읽어볼 추리 단편 소설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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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서스
제시 볼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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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밝혀져 있듯이, 이 소설의 저자는 다운 증후군을 앓던 형이 먼저 세상을 떠난 후 형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서 쓴 글이다. 다운증후군이라는 장애가 어떤 것인지, 그런 장애를 앓고 있더라도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른 가족들 못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소설의 내용을 살짝 들여다보면, 주인공은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다. 그런 후 자신도 몹쓸 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다. 그러나 주인공은 맘 편하게 아내를 따라갈 수 없는 사정이 있다. 그에게는 성인이지만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들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온전치 못한 상태로 세상에 홀로 남는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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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항상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했다. 우리 그냥 훌쩍 떠나지 않을래? 아내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아들이야말로 어디론가 떠날 가장 합당한 이유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도 떠나는 걸 꺼려했다.


아무튼 아내 생전에 우리는 떠나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하지만 아내의 죽음과 동시에 이제 떠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이 덮쳐왔다.“(p. 25)


주인공 아버지는 아들과의 여행을 위해 인구조사원이 되어 알파벳으로 된 지역들을 하나씩 방문해 인구조사도 진행하고, 아들과의 추억도 만들어 나가며 북방의 끝인 Z를 향해 나아간다. 그는 아들은 데리고 A~ Z로 이동을 하면서 각 알파벳 마을마다 인구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삶 속에서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집들을 방문하게 된다. 그가 그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 우리에게도 저마다 각자의 삶이 있고,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Z까지 쉬지 않고 가야 할 것만 같았다. Z까지 죽 달리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었다. 동시에 병세가 악화되면서 도저히 Z까지 못 갈 거라는 예감이 짙어졌다. 그러면 어떡하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면 되는 만큼, 아무리 하찮아도 되는 만큼 하는 거다.”(p. 224)

 

이 혼잣말에는 주인공 스스로가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음을 나타나고, 사랑하는 아들에 대한 막중한 보호자로서 책임감이 느껴져서 애잔함이 묻어난다.

 

아들은 떠났다. 기차는 가고 기차와 함께 아들도 가고 없다.”(P. 300)

 

장애를 가진 아들과의 마지막 여행.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여행. 이들에게 있어 이별 여행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보다는 서로를 더 알아가고 그동안의 추억들을 되새기며 서로가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렇게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도 알고 독자도 알기에 뒤로 갈수록 더 마음이 애틋했던 것 같다.

책 뒤쪽에 저자의 가족사진이 여러 장 실려져 있다. 앞에 언급하였던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었던 형과 저자의 다정한 모습이 담겨진 사진들이다. 사진을 보면 저자가 얼마나 형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지가 나타난다. 오랜만에 따뜻하고 감동적인 책을 읽었다. 가족애의 소중함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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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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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가타카 ]를 보면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신체 때문에 우주로 나갈 수 없는 주인공이 나온다. 아이를 공장식으로 찍어내는 미래에 자연 임신으로 태어난 주인공은 엘리트만 될 수 있는 우주비행사는 꿈도 꾸지 못한다. 청소부로 살아가던 그는, 그러나, 치밀한 계획 끝에 모두를 속이고 날아간다... 광활한 우주 속으로.

 

인간은 언제부터 우주로 나가고 싶어했을까? 아마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생겨난 그때부터가 아닐까? 칠흑같이 검은 하늘 속 반짝이는 별과 달을 바라보며 초월적인 존재를 떠올렸을 그들. 이제 현대인들은 발전한 기술로 인해 실제로 우주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특히나 우주를 동경하는 무리가 있기 마련. 이 책의 주인공인 평범한 샐러리맨 이진우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왜 우주에 나가고 싶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 초등학교 삼학년 때인가, 어린이 잡지 [ 어깨동무 ]를 보다가 [ 화성탐험 ] 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월면차처럼 생긴 탐사 차량이 불그스름한 계곡을 지나는 것을 멀리서 내려다보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제가 꼭 그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자면서도 몇 번 꿈까지 꿨던 기억이 납니다 ”

 

평범한 이유 같지만 어린이의 마음에 불을 지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 이유 뿐일까? 책을 읽고 보니, 우주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지구의 중력을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에 살아가는 이상 우리는 중력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무게를 지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중력, 학업과 직업에서 성공을 이루어야 한다는 책임감이라는 중력 등등.. 우리는 그런 짐들을 이고 걸어가고 있다.

 

주인공 이진우에게 있어서 개인적인 중력은 뇌종양을 앓았던 여동생을 잃은 묵직한 슬픔이고 자신이 일하고 있는 연구소에서 벌어지는 경쟁과 중상모략이다. 그는 이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듯 하다. 아무런 무게를 느낄 수 없는 무중력 속의 우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누이에게 더 가까이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 내 누이는 열 살 때 모닝듀를 머리맡에 두고 눈을 감았다. 소아 뇌종양이었다. 수영이는 살아있을 때는 천연덕스러운 장난꾸러기였다. 모닝듀 앞에서 물을 주고 노래하고 도깨비 감투를 쓰고 춤을 추던, 그 아이는 내 눈동자에 슬픔이 스미는 걸 슬퍼할 것이다 ”

 

우주와 우주인을 다루는 소설이라고 하여 SF 모험 소설을 기대했으나 웬걸,,, 이 소설은 우주 비행사가 되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이자 그 속에서 치열한 심리전을 펼치는 우주비행사 후보들의 변화 무쌍한 심리를 다룬 드라마이다. 환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처절함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우주 비행사가 되기까지 그들이 거쳐야 하는 여러 테스트들과 실험들.... 테스트를 받다가 기절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험난한 여정을 거쳐서 러시아의 가가린 우주센터에 도달하게 된 사람들은 총 4명이다. 평범한 샐러리맨이지만 엄청난 노력파에 리더쉽까지 있는 주인공 이진우, 미국 고더드 센터에 있고 웬지 우주에 대해 빠삭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김태우 (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경쟁 상대로 생각한다 ), 문과를 전공했지만 수재와 천재 사이를 오고가는 정우성 그리고 유일한 여성 참가자이지만 체력이나 정신력 면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 김유진.

 

책의 막판에 다다르면 타향에서 서로 도와가면서 4명은 정이 든다. 그러나 딱 한 사람의 우주비행사만 뽑는 상황에서 미묘한 긴장감과 경쟁심은 어쩔 수 없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의 미묘한 심리를 잘 포착하고 있다. 정이 들었지만, 그래서 친구고 동생이고 형이지만 일생 일대의 꿈인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해서는 밀어낼 수 밖에 없다는 내적 갈등....

 

책은 진우가 우주 비행사가 되는 것을 끝으로 해피엔딩이 되는가 싶었는데.... 아뿔싸.... 그는 또 지역만 달랐지 러시아에서 발생한 세력 다툼에 휘말리고 만다. 시험과 테스트에 앞서 예비 우주 비행사들이 돌려본 자료를 가가린 우주 센터에서 문제 삼은 것. 나라의 기밀 정보를 함부로 이용했다는 죄목이었다. 그러나 진우는 알고 있었다.. 이 다툼은 다름아닌 큰 세력의 줄다리기라는 것....... 어떻게 보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진우는 떳떳하게 우주 비행사가 되는 것을 포기하기로 한다. 일생 일대의 꿈이었지만 옳지 못한 방식으로 갈 바에는 차라리 마음 속으로 그려보던 우주를 그대로 간직하는게 좋을 거라는 결론을 내린 듯 하다. 무중력을 꿈꾸었으나 이제 중력이 끌어당기는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있을 곳은 그곳이 아닌가? 결국 인간의 눈은 하늘을 향해있으나 발은 단단히 땅을 디디고 서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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