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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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가타카 ]를 보면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신체 때문에 우주로 나갈 수 없는 주인공이 나온다. 아이를 공장식으로 찍어내는 미래에 자연 임신으로 태어난 주인공은 엘리트만 될 수 있는 우주비행사는 꿈도 꾸지 못한다. 청소부로 살아가던 그는, 그러나, 치밀한 계획 끝에 모두를 속이고 날아간다... 광활한 우주 속으로.

 

인간은 언제부터 우주로 나가고 싶어했을까? 아마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생겨난 그때부터가 아닐까? 칠흑같이 검은 하늘 속 반짝이는 별과 달을 바라보며 초월적인 존재를 떠올렸을 그들. 이제 현대인들은 발전한 기술로 인해 실제로 우주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특히나 우주를 동경하는 무리가 있기 마련. 이 책의 주인공인 평범한 샐러리맨 이진우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왜 우주에 나가고 싶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 초등학교 삼학년 때인가, 어린이 잡지 [ 어깨동무 ]를 보다가 [ 화성탐험 ] 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월면차처럼 생긴 탐사 차량이 불그스름한 계곡을 지나는 것을 멀리서 내려다보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제가 꼭 그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자면서도 몇 번 꿈까지 꿨던 기억이 납니다 ”

 

평범한 이유 같지만 어린이의 마음에 불을 지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 이유 뿐일까? 책을 읽고 보니, 우주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지구의 중력을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에 살아가는 이상 우리는 중력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무게를 지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중력, 학업과 직업에서 성공을 이루어야 한다는 책임감이라는 중력 등등.. 우리는 그런 짐들을 이고 걸어가고 있다.

 

주인공 이진우에게 있어서 개인적인 중력은 뇌종양을 앓았던 여동생을 잃은 묵직한 슬픔이고 자신이 일하고 있는 연구소에서 벌어지는 경쟁과 중상모략이다. 그는 이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듯 하다. 아무런 무게를 느낄 수 없는 무중력 속의 우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누이에게 더 가까이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 내 누이는 열 살 때 모닝듀를 머리맡에 두고 눈을 감았다. 소아 뇌종양이었다. 수영이는 살아있을 때는 천연덕스러운 장난꾸러기였다. 모닝듀 앞에서 물을 주고 노래하고 도깨비 감투를 쓰고 춤을 추던, 그 아이는 내 눈동자에 슬픔이 스미는 걸 슬퍼할 것이다 ”

 

우주와 우주인을 다루는 소설이라고 하여 SF 모험 소설을 기대했으나 웬걸,,, 이 소설은 우주 비행사가 되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이자 그 속에서 치열한 심리전을 펼치는 우주비행사 후보들의 변화 무쌍한 심리를 다룬 드라마이다. 환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처절함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우주 비행사가 되기까지 그들이 거쳐야 하는 여러 테스트들과 실험들.... 테스트를 받다가 기절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험난한 여정을 거쳐서 러시아의 가가린 우주센터에 도달하게 된 사람들은 총 4명이다. 평범한 샐러리맨이지만 엄청난 노력파에 리더쉽까지 있는 주인공 이진우, 미국 고더드 센터에 있고 웬지 우주에 대해 빠삭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김태우 (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경쟁 상대로 생각한다 ), 문과를 전공했지만 수재와 천재 사이를 오고가는 정우성 그리고 유일한 여성 참가자이지만 체력이나 정신력 면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 김유진.

 

책의 막판에 다다르면 타향에서 서로 도와가면서 4명은 정이 든다. 그러나 딱 한 사람의 우주비행사만 뽑는 상황에서 미묘한 긴장감과 경쟁심은 어쩔 수 없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의 미묘한 심리를 잘 포착하고 있다. 정이 들었지만, 그래서 친구고 동생이고 형이지만 일생 일대의 꿈인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해서는 밀어낼 수 밖에 없다는 내적 갈등....

 

책은 진우가 우주 비행사가 되는 것을 끝으로 해피엔딩이 되는가 싶었는데.... 아뿔싸.... 그는 또 지역만 달랐지 러시아에서 발생한 세력 다툼에 휘말리고 만다. 시험과 테스트에 앞서 예비 우주 비행사들이 돌려본 자료를 가가린 우주 센터에서 문제 삼은 것. 나라의 기밀 정보를 함부로 이용했다는 죄목이었다. 그러나 진우는 알고 있었다.. 이 다툼은 다름아닌 큰 세력의 줄다리기라는 것....... 어떻게 보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진우는 떳떳하게 우주 비행사가 되는 것을 포기하기로 한다. 일생 일대의 꿈이었지만 옳지 못한 방식으로 갈 바에는 차라리 마음 속으로 그려보던 우주를 그대로 간직하는게 좋을 거라는 결론을 내린 듯 하다. 무중력을 꿈꾸었으나 이제 중력이 끌어당기는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있을 곳은 그곳이 아닌가? 결국 인간의 눈은 하늘을 향해있으나 발은 단단히 땅을 디디고 서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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