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이 시대를 만드는 것인지, 시대가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 그것은 아직 인간과 역사를 통찰할 수 있는 눈을 얻지 못한 나에게는 시원하게 대답할 수 없는 난제이다. 어쩌면 시대가 사람을 부르고 사람은 기꺼이 그 부름에 응답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나무야 나무야>의 저자 신영복 선생님을 생각하면 더욱이 그런 생각이 든다. 천길 낭떨어지 한 발 디딜 곳도 없는 곳에 굳게 뿌리를 내리고 온갖 풍상을 온몸으로 견디는 소나무, 나에게 그는 그런 이미지로 떠오른다. 답답한 80년대 서글픈 군대시절 내무반에서 읽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비록 군대와 감옥이란 차이는 있지만 갖혀있는 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동질감과 그의 사람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낙관주의에 참으로 오랫만에 감동적인 독서를 했던 기억이 새롭다. 타락한 시대, 부패한 세상에서 홀로 올곧게 신념을 지키며 산다는 것.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비겁한 핑계 속에 사람들이 제 한 몸을 숨길 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그건 옳지 못한 일이라고 나직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하는 이. 그는 어쩌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선비가 아닐까 싶다. 쥐뿔도 가진 것 없고 뭐 하나 내세울 것 없건마는 누구보다 많이 가진 자와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자 앞에서 전혀 꿇리지 않고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하는 선비. 광야에서 외치는 자말이다. 

 

<나무야 나무야>는 90년대 중반에 출간되었다. 80년대의 독재와 보수반동의 어두움이 제대로 극복되기도 전에 사회주의의 몰락의 여파로 채 여물지도 못한 진보진영이 와해되던 시절이었다. 천박한 자본의 물질주의 신화가 맹위를 떨치며 성급하게 선진국 진입을 축하하는 샴페인을 터뜨리던 시기.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 간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시류의 변화에 재빨리 적응하여 편승하기보다 평소 자신의 소신과 가치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역사의 흐름 속에 저변에 있는 결코 변해서는 안 되는 것들의 소중함과 가치를 자분자분 예의 그 담담한 어투로 이야기한다. 그의 고향인 밀양 얼음골을 비롯해서 압구정, 모악산, 백담사, 북한산, 어느 폐교와 섬진강 나루, 강릉 단오제, 부여의 백마강 등등 우리 국토 곳곳에 남아 있는 오늘과 옛 흔적을 돌아보며 떠오른 여행의 단상들을 수많은 '당신'들에게 엽서로 보내고 있다. 늘 승자의 기록인 역사에서 평가절하되고 왜곡된 사람들과 사건들을 오늘날의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재평가함으로써 우리에게 과거가 단순한 과거지사가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되풀이되는 당장의 문제임을 인식하게 한다. 있는 자보다는 없는 자, 힘있고 똑똑한 자보다는 힘없고 어리석은 자, 효율과 발전보다는 사랑과 연대를 가치있게 여기는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따뜻한 지성'이랄까 '가슴을 가진 이성(理性)'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10여 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도 그의 글이 가슴에 와닿은 것을 보면 역시 세월이 가도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은 그른 것임이 분명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류시화 지음 / 푸른숲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은 시인이자 구도자, 그리고 여러 명상서적의 번역가로 유명한 류시화의 첫 산문집이다. 팍팍했던 80년대, 낮이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아픔을 넘어>와 같이 비명을 지르고 어금니를 깨무는 언어를 읽다가도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는 <삶의 길 흰 구름의 길>처럼 먼 허공에 시선을 둔 글들을 읽었었다. 라즈니쉬, 크리슈나무르티와 같은 인도의 영적 지도자들의 이름을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때 내가 읽었던 많은 명상서적들은 석지현이나 홍신자, 그리고 류시화와 같은 우리나라 명상 1세대에 속하는 사람들의 번역본이었다. 특히나 류시화의 번역으로 된 라즈니쉬의 책들을 많이 읽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그가 시인이었기에 다른 번역가들보다 시를 읊조리는 듯한 라즈니쉬만의 어투를 잘 전달한 것 같다.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은 자전적 성격이 강한 글들이 많이 실려 있어서 이 아름다운 지구별 여행자의 내면풍경을 잘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스스로 북극성에서 왔다는 저자는 끊임없이 삶을 통해서 무엇을 배웠으며 무엇을 배우지 못했는가를 묻는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도대체 삶이란 무엇인가, 출생과 사망 사이의 유한한 시간대를 여행하는 '나'에게 이 여행의 목적과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리하여 마침내 그러한 '나'는 누구인가? 삶을 채 살아보기도 전에 삶을 체념해 버린듯한 그는 이미 이러한 질문에 대한 어떠한 답도 주어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만약 답이 주어질 수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침묵의 소리를 통해서일 뿐. 눈이 내리는 소리, 꽃이 벙그는 소리, 거미줄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소리, 이른 새벽 떠오르는 태양의 노래 소리, 그 소리 없는 소리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맥주 창해ABC북 1
장 루이 스파르몽 외 지음, 김주경 옮김 / 창해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맥주>는 그 제목 그대로 가히 맥주에 관한 한 모든 백과사전적 지식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전에 읽었던 <맥주의 세계>(살림)가 지나치게 텍스트 위주에 내용이 너무 간소하고 항목이 비체계적이었다면 <맥주>는 항목별 사전식 구성으로 전체를 통독하지 않고 필요한 항목을 발췌하여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풍부한 사진자료를 포함하고 있어 시각적 즐거움까지 준다. 다만 아쉬운 것은 원서가 프랑스어로 씌여진 것이라 사용된 맥주관련 외래어 용어 가운데 영어나 독일어가 보편적인 경우에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양조장을 뜻하는 단어는 프랑스어 '브라스리brasserie'보다 영어 '브루어리brewery'나 독일어 '브로이braeu'가 더 친숙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밀턴의 비밀 - 어린이 마음에 평화와 행복을 주는 이야기
로버트 S. 프리드먼 외 지음, 프랭크 리치오 그림, 이세진 옮김 / 끌레마주니어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밀턴은 하루하루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평범한 8살짜리 소년이다. 하루는 학교에서 덩치 큰 상급생이 밀턴의 이름이 웃기다면서 괴롭힌다. 이 일로 밀턴은 그 형이 자신을 또 괴롭힐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잘 먹지도 자지도 못한다.

 

잠을 설친 다음날 아침 밀턴은 자기집 고양이가 옆집의 사나운 개에게 물려 다친 것을 발견하고는 치료해준다. 그리고 조금전까지 상처받아 피흘리던 고양이가 밀턴의 품안에서 금새 행복해하는 것을 보자 궁금증이 일어났다. 밀턴의 할아버지는 사람들은 어제 일어난 일이나 내일 일어날 일을 걱정하며 살지만 고양이는 '지금' 일어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알려준다. 지금 바로 이 순간 말이다. 

 

하지만 밀턴은 그날 학교에 가서 줄곧 그 형이 자기를 괴롭히지 않을까 주위를 살피며 불안하게 지냈다. 저녁에 할아버지에게 그간의 사정을 말씀드리자 할아버지는 밀턴의 걱정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것일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충고한다.

 

그날 밤 꿈속에서 밀턴은 그 형과 이웃집의 사나운 개에게 쫓기다가 자기가 자주 들리던 아이스크림가게로 들어가게 된다.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 아주머니는 밀턴에게 눈부시게 하얀 빛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빛이 고양이에게도, 꽃에게도, 자신에게도, 밀턴에게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머물 때 그 빛을 더 잘 느낄 수 있다는 것도.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밀턴은 꿈속에서 아주머니가 해 준 말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어 학교에 갔다. 그날 오후 화장실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형을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그는 자신의 기분이 나쁘기에 다른 사람의 기분까지 망칠 뿐이란 사실을 알고는 더이상 이유없이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밀턴의 비밀>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Power of Now(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와 <New Earth>의 저자이자 영적 지도자인 에크하르트 톨레가 쓴 동화이다. 나이가 적든 많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불안, 걱정, 두려움의 문제에 대해 어린아이들도 쉽게 이해하고 그러한 감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근본적으로 그러한 심리적 문제들은 '사실'이라기보다 단지 '생각'일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과거에 일어난 일'이거나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걱정하느라 정작 '지금 이 순간'을 놓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아이스크림 가게 아주머니가 알려준 각자 마음 속에 있는 빛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머물 때 발견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은 과거나 미래, 또는 현재와 같은 시간개념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지금 이 순간'이라 이름 붙이지만 그것은 규정할 수 없는 '무엇'이다. 왜냐하면 이름 붙이는 순간 그것은 '과거'의 것이 되어버리기에 진정한 '지금 이 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마음 속의 '빛'도 '빛'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이렇게 밝게 빛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그것이다. 뭐가? 오른 손으로 자기 뺨을 때려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 <파우스트>에서 <당신들의 천국>까지, 철학, 세기의 문학을 읽다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전에 대한 인상적인 정의 가운데 하나는 '고전은 모두가 읽어야 하는 책이지만 그 누구도 읽지 않은 책'이란 것이다. 오랜 세월 여러 세대를 전해 내려오는 필독서 목록에 늘 있지만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읽은 것 같지는 않은 책. 특히나 활자매체가 누리던 무소불위의 권력이 해체되는 이 시대에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때로는 시대착오적인 느낌까지 준다. 특히나 '고전'이라는 정말 고전스런 단어가 주는 위압감과 고루함이 그나마 있던 독서의욕마저 떨어뜨리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의 저자 김용규는 흡사 원두가 가진 최상의 맛과 향기를 붙잡아 손님 앞에 내놓는 솜씨좋은 바리스타처럼 고전에 속하는 문학작품 13편을 일반 대중이 접근하기 쉽게 재구성하여 제공한다. 고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과 난해함으로 인해 일반 대중이 중도포기하거나 길을 잃게 하지 않기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해석의 틀(테마)을 따라 가다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원작을 읽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느끼게 된다. 그만큼 저자의 독법이 세련되고 유려할 뿐만 아니라 고전의 핵심주제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 가장 성실한 '독자'야말로 가장 훌륭한 '저자'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꼼꼼히 읽고 내면화한 고전의 향기를 편안한 커피 한 잔을 마주하고 나누는 이야기처럼 부담없이 전달할 수 있는 저자의 능력을 통해 저자가 쌓아왔을 인문학적 내공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문학과 철학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펼쳐지는 담론의 공간에서 고전은 초시공간적 보편성을 얻고 새롭게 대중에게 다가선다. 정말이지 풍성하고 부드러운 카푸치노처럼 맛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