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전 재미만만 우리고전 11
박효미 지음, 이지은 그림, 한국고전소설학회 감수 / 웅진주니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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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 못난 남편 이시백만 이름 있고, 박씨는 왜 계속 박씨냐 


우리나라 옛날 이야기를 읽기로 마음 먹으면서 처음 떠올린건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다. 그리고 '심청전' 

두 작품 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 없는 학대 이야기라 이런 작품이 버젓이 교과서에 나오고, 아이들한테 읽히는게 맞냐는 이야기이다. 내 생각은 고전, 옛이야기들 읽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하고, 재미 있다. 세개 다는 아니라도 이 세개 중에 하나라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어른은 기본적으로 비판적 읽기가 가능하다치고, 아이들과는 비판적 읽기와 이전과 지금의 대비에 대해 이야기하며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나는 재미있어서 읽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줄 생각하면서 좀 더 비판적 사고를 끌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읽고 있다. 


이 시리즈 이제 시작하지만, 어휘도 풍부하고, 이야기도 그림도 재미있다. 그림은 지금 보니 '팥빙수의 전설' 이지은 작가! 그림이다! 너무 좋더라. 그리고, 글자로 말하는데, 이게 너무 재미있다. 살면서 처음 본 건 아니겠지만, 정말 오랜만에 보는, 글자 모양으로 말하기! 너무 재미있다고. 나도 이런거 써보고 싶다. 


박씨전은 "한양 대감집 도령 이시백이 결혼을 했는데 글쎄 새색시 박씨가 너무너무 못생겼더래." 로 시작된다. 


시아버지 이춘득 대감만이 며느리를 아끼고, 아들에게 외모만 보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못 본다며 구박하는데, 이시백은 너무 못생겨서 참을 수가 없다고 아버지 눈치만 보며 방에 들아갔다가도 쌩- 나오고, 시어머니는 못생겨서 밥만 축낸다고 구박한다. 그러다 결국 시아버지에게 청해 피화당이라는 별당을 지어 홀로 계화라는 하녀를 데리고 들어가서 살게 된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외면과 구박 속에서도 비범함을 뽐내다가 이시백이 과거 시험 보러 갈 때는 신묘한 연적을 건네주기 위해 하녀 계화에게 잠시 들리시라 하지만 이시백은 어디 오라가라냐며 계화를 매질해서 돌려보낸다. 결국 다시 계화편에 연적을 건네주고, 이시백은 연적을 들고 과거 시험을 보러가 장원급제를 하게 된다. 


박씨가 허물을 벗듯 탈피하고 천하절색 미녀가 되자 남편은 안절부절 눈치를 보며 그 앞에서 빌빌대며 사과할 기회를 찾는다. 박씨가 용서하고 그렇게 부부가 합치게 된다. 맘에 안들어라~ 


오랑캐가 쳐들어오고 박씨의 활약이 나온다. 박씨전은 '조선 시대 한글소설로 청나라를 혼쭐내는 박씨를 통해 병자호란에서 졌던 치욕을 씻고, 그 상처를 극복하려는 당시 독자층의 소망이 담겨 있다' 고 한다. 


재미만만 한국사도 고조선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가 병자호란 나오면 왜 그 박씨전에서 있잖아, 하면서 얘기할 수 있겠다. 스토리도 글자도 그림도 재미있는 독서였다. 내용도 잔뜩 의심하며 보기 시작했는데, (박씨전이 박색인 여자가 구박 받다가 절색이 되어 받아들여지는 이야기다보니) 이야기거리도 많고 나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많은 부분을 잘 고치고 이야기한 것이 눈에 띄었다. 


오랑캐에게 끌려가는 조선 여인들 울음소리가 천지에 울려. 

"기쁜 일이 있으면 슬픈 일이 오고, 괴로운 일 뒤에는 즐거운 일이 따르니 이 또한 하늘의 뜻이오. 너무 서러워 말고 반드시 살아남으시오. 3년이 지나면 이 나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니, 부디 세자마마와 대군마마를 잘 모시고 있으시오." 박씨가 위로했지만 그렇다고 여인들 슬픔이 줄어들 리 있나. 여인들 지나는 길마다 통곡 소리 가득하니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어. (108-109) 


이 부분은 다른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비해 지나가는 이야기지만, 이 부분을 이렇게 써준 것이 나쁘지 않았다. 살아남으시오. 그렇다고 여인들 슬픔이 줄어들 리 없지만. 괴로운 일 뒤에는 즐거운 일이 따르니 살아남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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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Was Leonardo Da Vinci? (Paperback) Who Was (Book) 12
Roberta Edwards 지음, True Kelley 그림 / Grosset & Dunlap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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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워즈 시리즈를 꾸준히 읽고 있으면서 아, 내가 전기를 좋아했었지 새삼 떠올리고 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인물의 전기를 보면서 100페이지 남짓의 짧은 책 (삽화도 많다) 임에도 불구하고 태어나서부터 죽기까지 그에 대해 읽는다는 것은 그 시대와 그 시대에 일어났던 사건들, 그 시대의 인물들, 그 시대의 발명품들 등을 함께 읽는 것이기도 해서 굉장히 흥미롭다. 독서 마중물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하지만, 이 시리즈야말로 인물에 대해 더 더 알고 싶게 만들어주는 최고의 마중물이다. 


여러 책들을 읽으며 전기들을 같이 찾아두었는데, 오늘은 드디어 도서관 서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꺼내기까지 성공했다. 너무 무거워서 그냥 사기로 하고 집으로 왔는데, 검색했더니 6만8천원이야! 월터 아이작슨 원서 찾아봤더니 34,400원이다. 마음의 평화. 


레오나르도 다빈치 후 워즈가 다른 책에 비해서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았고, 그 이야기들이 더 더 궁금하다. 

한 명의 몸에 세 명의 천재가 들어있는 것 같은 천재였죠. 라고 어디서 읽었는지 들었는데, 이 책 읽으니 새로운 부분이 많아서 내 안에 평면적이던 다 빈치가 좀 더 입체적이 되었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도 조금 더. 이렇게 옆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책을 다시 읽게 되면, 이거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서 읽었어! 되게 되는데, 그게 또 재미있거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태생부터 처음 읽는 이야기였다. 엄마와 아빠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레오나르도가 태어났는데, 아빠는 결혼 못한다며 엄마와 아들을 버렸고, 다른 여자랑 결혼해서 아이 낳는다. 엄마도 레오나르도 원하지 않아서 할아버지가 키우게 되는데, 할아버지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빠가 레오나르도의 재능을 보게 되고 열두살 어린 나이에 동네 유명한 미술가, 베로치오의 작업실에 맡기고, 레오나르도는 그 곳에서 수습으로 일하게 되고, 주머니속의 송곳처럼 천재성을 드러내게 된다. 


이 책에서 새로 알게 된 흥미로웠던 부분이 세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레오나르도의 어린 시절이 위와 같았던 것이다. 

그리고, 레오나르도가 실험정신이 강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했으나 끈기 없고, 잘 질려서 끝까지 마무리를 못했고, (레오나르도 책 찾다보니 <미루기의 천재들> 이라는 책에 레오나르도와 찰스 다윈이 무려 부제에 등장하고 있었다! 


레오나르도 전시도 많이 갔던 것 같은데 실제 완성해서 레오나르도의 작품으로 알려진 것이 열 세점에 불과하고! 

그렇다면, 그 동안 봐 온 작은 작품들은 뭐지 싶었는데, 아이디어 노트, 레오나르도의 노트도 유명하지, 그게 13,000페이지였다고 한다! 그 중에 지금까지 남겨진 건 6천페이지 정도고 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보관되고 있다. 빌 게이츠가 가지고 있다느 콜렉션, 물에 대한 것만 모아뒀다는 그 노트 궁금하다. 


그리고, 살라이, 살라이라는 말썽꾸러기 소년이 있었고, 레오나르도가 거뒀다. 보통 아이들의 네 배는 말썽쟁이였다고 하고, 레오나르도는 그가 무슨 사고를 치건 봐주고 아꼈다고. 후에 프랑스 갈 때도 데려가고. 뭐지, 이 살라이는? 레오나르도 책 더 찾아서 읽어봐야지 했는데 <레오나르도의 양아들 사기꾼 살라이> 라는 책도 있었다. 아.. 


레오나르도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기에 대한 이야기들도 재미있고, 레오나르도의 발명품이나 노트 이야기들, 일 이야기들 다 너무 재미있었다. 언제 읽을지 모르겠지만, 레오나르도 전기도 꼭 읽고 싶다. 이 이야기가 이 이야기였구나! 하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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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랫동안 여성주의 책들 원서 읽기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원서만 기회 될 때마다 사고 있었다. 아마존에 중고 많기도 하지만, 드워킨 책은 사이트에 피뎁으로 다 올라와 있어서 정말 당장 시작할 수 있는건데 계속 바라만 보고.. 



그러다가 2018년에 포르노그라피를 다 프린트 아웃 하고 이사 다니는 와중에도 챙겨 와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2020년, 2021년, 그리고 2024년까지 


올해는 리타 펠스키의 책을 시작만 했다. 










여튼 이렇게 늘 생각만 하고 있었고, 모임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던 차에 그제 시작한 캐서린 맥키넌 모임을 알게 되었고, 바로 신청. 






내가 사둔 캐서린 맥키넌 책들 드워킨 사이트에도 같이 쓴 책들 몇 권 있다. 


지금 영어책 읽기 모임 여러개 하고 있다. 


매주 월,목 한시간씩 

매주 일요일 삼십분씩 2개 

원서 읽기 밴드 

토요일 1시간반씩 


이렇게. 영어책 읽기 모임이 강력한 동기부여 없이 꾸준히 진행되기가 정말 쉽지가 않다. 

우리말 읽기 모임도 

카톡 인증 모임 하나, 격주 2시간씩 읽고 발표 모임 하나 하고 있고, 얼마전에 매주 한시간 카라마조프 읽기 모임 2년만에 끝났다. 이것도 쉽지 않다. 꾸준히 시간내서 모여서 책 읽는 것이 어려움. 영어는 더 하지. 


이번 모임 부디 오래 가주길 바라고 있다. 나는 뭐 열심 멤버라기보다는 개근 멤버고, 개근 멤버가 최고다라고 속으로는 생각하고 있다. 


캐서린 맥키넌 'Only Words' 어제부터 바로 읽기 시작. 매일 6페이지씩 읽어서 한 달 안에 독파하는 모임이다. 이 책 읽고 또 다른 책 읽자고 하네. 황홀. 


외국 계신 한국분이 리드하는데, 이 책은 해외 랟펨북클럽에서 읽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영어원서다보니 같이 공부하며 읽자고 시작한 모임. 


처음 몇 페이지 읽다가 관련 내용 좀 찾아보고, 같이 이야기하고, 해석이나 배경 서로 알려주고. 아, 너무 좋다. 


오늘은 해외 랟펨북클럽 리더가 '1982 김지영' 읽은 한국 페미니스트 이야기 듣고 싶다고 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야기하고, 4B 이야기하다가 '탈코일기'까지 알려주게 되었다. 구매하고 싶다고 해서 알라딘 US 사이트까지 알려줌. 


1982 김지영과 이 책이 4B운동에 영감 줬다고 알고 있길래 거기에 대한 맨션 달아둔거 옮겨둔다. 


I read the English translation. The events described in the book are so familiar, but the strangeness and discomfort were amplified by the language barrier. It's a deeply resonant story, but I don't see it as directly aligned with the 4B movement.


The book realistically portrays the experiences of women in Korea across generations, from birth to marriage. Many women, myself included, have lived through. Kim Jiyoung simply reflects the reality and stautus of Korean women, which is also meaningful.


The book delves into the discrimination and misogyny faced by women throughout their lives - in childhood, in school, at work, and in marriage. It shows how these experiences shape both those who are discriminated against and those who benefit from it, divided along gender lines.


In Kim Jiyoung, Born 1982, the protagonist's passiveness eventually leads to a mental breakdown. At the time of release, people said a lot the book was a "milder" version of reality. If anything inspired the '4B movement', I'd say it was the book, 'Talco Diary.'


The 4B movement is much more radical than 'Kim Jiyoung, Born 1982.' Still Korean radical feminists didn't just fall from the sky-they were born and raised in the toxic patriarchal culture described in Kim Jiyoung and are fighting to escape it.


우리말 글쓰기를 잘 하는 것도 아니지만 (글 잘 쓰고 싶다! 요즘 더 많이 생각하고 있어.) 

영어 읽기,듣기와 쓰기/말하기의 갭이 크고, 점점 더 커지면서 영어 글쓰기도 말하기도 뭔가 해야겠다는 마음 잘 안 들었다. 원래 못하면 더 하기 싫음. 그래도 해야지 늘고 재미도 있고 더 잘하게 되는데, 못함- 하기 싫음- 안 함- 더 못함의 못난이 사이클로 들어서게 되는거다. 


요즘들어 '글쓰기' 자체에 대해 생각하면서 영어도 영어지만, 그동안 어떤 목표나 목적성을 가지고 쓰는 글이 아니라 서재에 트위터에 그냥 생각나는대로 쓰는 글들이 다였다고 느껴져서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일단 쓰면서 생각하려고 투비 30원어치 동기부여에 매달려 하루에 두 세개씩 매일 글 쓰고 있다. 


https://tobe.aladin.co.kr/t/misshide


다들 와서 포스트당 10초 이상 보고 조회수 늘려줘..


영어도 글쓰기 시작해야겠다 싶어서 초등 보카 문제집에 나오는 라이팅 문제들 진지하게 쓰고 있다. 애초에 이거 싫고 귀찮고 못하겠어서 글쓰기 고민하고 쓰기 시작한 것. 저 이전에 얘기했던 미국 초등 보카문제집 지금 다섯권째! 풀고 있어요! 장하다! 


이번주부터 The Prince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이전에 윤리학 읽을 때 그랬던 것처럼 읽는 내용이 머리로 안 들어오고 겉돌기만 하는 것 같아서 요약본과 플롯 분석 같이 읽고 영역본 읽어나가고 있다. 몇백년전 책이 현재에도 수없이 적용되는 내용이라 고전인가보다. 하긴, 마키아벨리도 수천년전 책(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가져온거잖아. 대단하다. 책, 대단해, 고전, 대단해. 


가볍게 읽어나가는 책들도 있지만 (앤드류 클레멘츠 스쿨 시리즈와 후 워즈를 매 주 한 권씩 읽는 모임들) 

프린스는 만만치 않은데, 케이트 맥키넌까지 읽으려니 머리 팽팽 돌지만, 신난다. 


리딩하면서 의식적으로 영어 말하기도 늘리고 있고, 쓰기도 의식적으로 늘리고 있다. 

영어 공부 평생할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진짜 이렇게 지금까지도 열공하고 있을지는 몰랐네. 돌아보면, 이전에는 공부 안 했고, 이제야 하는 것 같긴하다. 이전에는 왜 안했을까. 무슨 깡으로 

이제라도 시작해서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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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 - 배 만드는 곳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11인의 일과 삶에 관한 이야기
김그루 외 지음,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기획 / 코난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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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개인은 좁은 생활 반경 안에서 좁은 범위의 사람들을 만난다. 각각의 접점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 한계를 늘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활동가와 운동가들, 그리고 그들의 활동을 알리는 이들이다. 덕분에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짐작할 수 있다. 

'조선소' 는 배 만드는 곳이고, 한 때 우리나라의 조선업이 잘 나갔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으며, 산재로 사람들이 죽기도 하고, 열악한 처우로 농성을 하며 뉴스에 날 때에만 보게 되는 장소였고, 단어였다. 


새로 나온 책들을 둘러보다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 의 대담한 표지와 글꼴,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고, 부제를 보고 바로 구매했다. '배 만드는 곳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11인의 일과 삶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기록에 평소 좋아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는 박희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활동가들의 책을 읽기 시작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성주의 책들 읽다보니 여성 노동자들의 책을 읽게 되고, '희정', '박희정' 과 같은 전혀 몰랐던 세계에 훅 들어가게 해주는 훌륭한 저자들을 만나게 되어 읽어나가게 되었다. 앞에 말했듯 '조선소'는 여전히 생소한 공간이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읽고나서도 여전히 낯설지만, 이제 조선소와 관련된 뉴스를 읽게 되면,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추천해서 독서모임에서 같이 읽었는데, 이런 책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몇가지 이유들이 있었다. 일단 재미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아니 상상할 수 없었던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 일을 해나가면서 느끼는 자부심이 존경스럽고, 유머가 재미있다. 평소 접할 일 없어서 전혀 알지 못했던 배를 만드는데 하는 일들에 대해 새로 알게 되는 사실들도 엄청 흥미롭고, 조선소의 스케일이 압도적으로 크다보니 평소 많이 접했다고 생각하는 청소 노동자, 급식 노동자, 세탁 노동자의 일들의 엄청난 스케일에 놀라게 되고, 그 노동량에 대해 놀라게 된다. 


"웰리브지회는 조선소에서 급식, 세탁, 미화, 수송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다. 2만 명 넘는 노동자들이 쓴 수건, 작업복을 수거해 세탁하고 말리고 다리고 개서 반나절 만에 돌려주는 세탁 파트에서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세탁기 건조기 소리, 침묵 속에서 수건과 작업복이 접히는 소리, 30-40킬로그램 세탁물을 지고 나르는 거친 숨소리가 고스란했다. 수천 명이 한꺼번에 식사하는, 그래서 정해진 시간에서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되는 급식소에서는 식사 전후로 불과 칼과 물과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했다. 세탁이건 급식이건, 전쟁터 같았다." 


책은 도장 노동자 정인숙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배 도장은 사수들이 스프레이를 뿌리고 스프레이가 지나간 곳에 롤러대를 밀어서 색을 칠하는(터치업) 일이다. 선체 도장, 엔진룸 도장, 선행 도장, 블록 쪽 도장 등으로 그 안에서도 다양하게 나뉜다. 도장일을 할 때는 도막 개념이 중요한데 도장할 때 페인트의 두께를 맞춰야 한다고 한다. 각 배에 도막 게이지라고 맞춰야 하는 페인트 두께가 있다. 이 도막이 안 맞으면 배가 부딪혔을 때 용접 부분이 갈라질 수 있다. 도장은 블록과 블록을 잘 이어주는, 딱 부착시켜주는 일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나오는데, 정말 너무 흥미로웠다. 큰 배로만 알고 있던 큰 배가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싶어서 말이다.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고, 일하는 환경은 열악하고, 건강에도 정말 안 좋지만, 정인숙은 여자들끼리 모여 있으면 재미있다고 한다. 집에 있으면 웃을 일이 별로 없는데, 현장에 가면 오만 소리 다 하면서 실컷 웃는다고. 외에도 아무리 힘들어도 언니들 동생들 만나며 일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집에서의 여자, 사회생활을 하는 여자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진다. 


'네가 만든 배가 지금 파나마운하를 지나가고있다.' 며 배 만드는 모든 공정 담당하는 감독님이 사진을 찍어 보내준 적이 있다고 한다. 고생해서 만든 배가 바다를 다니면서 돈 벌고 있는 사진을 보고 감동했다고 하는 그 마음이 와닿는다. 13여년 동안 50척 넘게 LNG, LPG, 벌크선, 리그선 등등 웬만한 배는 다 만들어봤다고 한다. 다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도장하는 이들은 도장은 조선소의 꽃이라고 한다. 


남편이 죽고, 혹은 남편과 이혼하고 조선소에서 일하기 시작한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청소 노동자인 김순태 또한 남편이 죽고 사십여섯에 처음 조선소에 들어왔다. 그가 한 일은 사상(시야기, 마무리) 였다. 철판의 거친 부위나 각진 모서리를 그라인더로 매끄럽게 갈아주는 일이라고 한다. 사상을 15년 하고 체력이 떨어진 후로는 용접과 취부(임시 용접) 하면 나오는 슬러그와 찌꺼기를 청소하는 일을 하고 있다. 빗자루, 통, 쓰레받이가 기본 도구다. 


용접 노동자인 전은하가 말하는 사정은 조선소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조선소가 다시 호황으로 돌아서도 하청업체에서 숙련공 임금은 오르지 않고 최저임금을 겨우 넘긴다. 일로만 보더라도 생산성 자체와 드는 비용이 신입과 숙련공의 차이가 몇 배는 날텐데 사측은 숙련공을 대우해줘 일의 생산성과 정확성을 높이고 위험을 낮추기보다 낮은 임금이 유지되는것에만 더 힘을 쓰고 있다. 뒤에 오는 사람들이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노조를 시작하지만, 회사에서는 사람을 일회용품처럼 쓰다 버리고, 대체 인력으로 이주노동자를 넣고 있다. "세상 만물 다 노동자들이 일궈가고 있는데" 회사 뿐만 아니라 사회 자체가 일하는 사람을 천하게 보고 있다고 하는 그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외에 쇠를 깎는 밀링 노동자 김지현, 비계 발판 노동자 나윤옥, 세탁 노동자 김영미, 급식 노동자 공정희, 미화 노동자 김행복, 도장 노동자 정수빈, 화기, 밀폐감시 노동자 박선경, 밀폐감시 노동자 박선경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조선소 곳곳을 돌아보고 그 곳에서의 일과 일하는 사람들과 도대체가 말도 안 되는 부당함과 그 부당함과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가장 답답했던 것은 회사 이름갈이, 하청 회사들이 임금 밀리고 퇴직금 안 주고 파산 신청하고, 그러면 나라에서 세금으로 보장해주고, 새로운 이름으로 똑같이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라니 진짜 나쁜놈들이다. 


미화노동자들이 일년도 아니고 11개월도 아닌 한 달짜리 계약을 매달 한다는 이야기도 어이없다. 


"배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그 나머지를 다 하잖아요. 새벽부터 와가지고 출근시켜줘, 밥 줘, 옷 빨아줘, 청소해줘. 직접 배를 안 만든다뿐이지 배를 만들 수 있게끔 우리가 다 케어해주잖아요. 근데 그거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는 거예요." 


미화노동자 김행복의 말을 읽으면서는 가정내 많은 여성들의 위치와 겹쳐 보이는 기시감을 느꼈다. 


이 책 안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새로운 이야기를 읽으며 알게 되는 것 외에 독자들 또한 다양한 관점에서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힘든 일들을 해 내는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힘듦만이 아니라 자부심과 뿌듯함, 재미와 유머가 담겨져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듣고, 읽고, 그만큼의 세계를 확장하고, 연결점 없었던 이들과의 연결점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호명에는 관점이 담긴다. 호명에 담긴 시선들이 교차할 때 우리의 인식은 확장되고 단단해진다. 11인의 목소리가 조선소 노동자라는 사회적 호명에 서로 다른 구조적 상황, 경험, 고통과 요구의 다양한 시선과 관점이 담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전에는 도장도 직영이 있었거든요. 직영 여성들이 터치업을 하고 다녔단 말이에요. 여자들이 일하는 걸 보니 잘하니까 여성을 점점 더 뽑은거죠. 백번 양보해서 예전에는 남자들이 높은 곳 도장을 하고 무거운 걸 들었으니까 임금을 더 줬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높은 곳 도장할 때는 로프맨들이 다 해요. 남자들이 많이 없어서 무거운 것도 여자들이 다 들어요. 그럼 임금에 남녀차별을 두면 안 되지. 근데 이상한 일이죠. 남자가 일당 오천 원을 더 받아요. 여자가 많고 남자는 적어서 할 일은 다 하는데 왜 임금은 다르게 줘요? - P38

힘쓰고 기술이 필요한 일은 자기들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조선소에 들어오기 전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막상 와서 일해보니까 남자들 하는 일이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경우가 있더라고요. 남자라도 저보다 용접을 못하는 사람도 있죠. 저래도 월급 받아가나 싶을 정도로 일하는 사람도 보이고. 여자도 다 할 수 있는 일이네 싶기도 하고. 여자들이 다 할 수 있어도 남자들이 자기 직업을 뺏길까 싶어 안 시키는 일도 세상에는 많이 있겠다 싶어요.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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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하 <호러,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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