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 - 배 만드는 곳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11인의 일과 삶에 관한 이야기
김그루 외 지음,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기획 / 코난북스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부분 개인은 좁은 생활 반경 안에서 좁은 범위의 사람들을 만난다. 각각의 접점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 한계를 늘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활동가와 운동가들, 그리고 그들의 활동을 알리는 이들이다. 덕분에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짐작할 수 있다. 

'조선소' 는 배 만드는 곳이고, 한 때 우리나라의 조선업이 잘 나갔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으며, 산재로 사람들이 죽기도 하고, 열악한 처우로 농성을 하며 뉴스에 날 때에만 보게 되는 장소였고, 단어였다. 


새로 나온 책들을 둘러보다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 의 대담한 표지와 글꼴,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고, 부제를 보고 바로 구매했다. '배 만드는 곳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11인의 일과 삶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기록에 평소 좋아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는 박희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활동가들의 책을 읽기 시작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성주의 책들 읽다보니 여성 노동자들의 책을 읽게 되고, '희정', '박희정' 과 같은 전혀 몰랐던 세계에 훅 들어가게 해주는 훌륭한 저자들을 만나게 되어 읽어나가게 되었다. 앞에 말했듯 '조선소'는 여전히 생소한 공간이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읽고나서도 여전히 낯설지만, 이제 조선소와 관련된 뉴스를 읽게 되면,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추천해서 독서모임에서 같이 읽었는데, 이런 책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몇가지 이유들이 있었다. 일단 재미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아니 상상할 수 없었던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 일을 해나가면서 느끼는 자부심이 존경스럽고, 유머가 재미있다. 평소 접할 일 없어서 전혀 알지 못했던 배를 만드는데 하는 일들에 대해 새로 알게 되는 사실들도 엄청 흥미롭고, 조선소의 스케일이 압도적으로 크다보니 평소 많이 접했다고 생각하는 청소 노동자, 급식 노동자, 세탁 노동자의 일들의 엄청난 스케일에 놀라게 되고, 그 노동량에 대해 놀라게 된다. 


"웰리브지회는 조선소에서 급식, 세탁, 미화, 수송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다. 2만 명 넘는 노동자들이 쓴 수건, 작업복을 수거해 세탁하고 말리고 다리고 개서 반나절 만에 돌려주는 세탁 파트에서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세탁기 건조기 소리, 침묵 속에서 수건과 작업복이 접히는 소리, 30-40킬로그램 세탁물을 지고 나르는 거친 숨소리가 고스란했다. 수천 명이 한꺼번에 식사하는, 그래서 정해진 시간에서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되는 급식소에서는 식사 전후로 불과 칼과 물과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했다. 세탁이건 급식이건, 전쟁터 같았다." 


책은 도장 노동자 정인숙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배 도장은 사수들이 스프레이를 뿌리고 스프레이가 지나간 곳에 롤러대를 밀어서 색을 칠하는(터치업) 일이다. 선체 도장, 엔진룸 도장, 선행 도장, 블록 쪽 도장 등으로 그 안에서도 다양하게 나뉜다. 도장일을 할 때는 도막 개념이 중요한데 도장할 때 페인트의 두께를 맞춰야 한다고 한다. 각 배에 도막 게이지라고 맞춰야 하는 페인트 두께가 있다. 이 도막이 안 맞으면 배가 부딪혔을 때 용접 부분이 갈라질 수 있다. 도장은 블록과 블록을 잘 이어주는, 딱 부착시켜주는 일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끝도 없이 나오는데, 정말 너무 흥미로웠다. 큰 배로만 알고 있던 큰 배가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싶어서 말이다.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고, 일하는 환경은 열악하고, 건강에도 정말 안 좋지만, 정인숙은 여자들끼리 모여 있으면 재미있다고 한다. 집에 있으면 웃을 일이 별로 없는데, 현장에 가면 오만 소리 다 하면서 실컷 웃는다고. 외에도 아무리 힘들어도 언니들 동생들 만나며 일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집에서의 여자, 사회생활을 하는 여자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진다. 


'네가 만든 배가 지금 파나마운하를 지나가고있다.' 며 배 만드는 모든 공정 담당하는 감독님이 사진을 찍어 보내준 적이 있다고 한다. 고생해서 만든 배가 바다를 다니면서 돈 벌고 있는 사진을 보고 감동했다고 하는 그 마음이 와닿는다. 13여년 동안 50척 넘게 LNG, LPG, 벌크선, 리그선 등등 웬만한 배는 다 만들어봤다고 한다. 다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도장하는 이들은 도장은 조선소의 꽃이라고 한다. 


남편이 죽고, 혹은 남편과 이혼하고 조선소에서 일하기 시작한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청소 노동자인 김순태 또한 남편이 죽고 사십여섯에 처음 조선소에 들어왔다. 그가 한 일은 사상(시야기, 마무리) 였다. 철판의 거친 부위나 각진 모서리를 그라인더로 매끄럽게 갈아주는 일이라고 한다. 사상을 15년 하고 체력이 떨어진 후로는 용접과 취부(임시 용접) 하면 나오는 슬러그와 찌꺼기를 청소하는 일을 하고 있다. 빗자루, 통, 쓰레받이가 기본 도구다. 


용접 노동자인 전은하가 말하는 사정은 조선소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조선소가 다시 호황으로 돌아서도 하청업체에서 숙련공 임금은 오르지 않고 최저임금을 겨우 넘긴다. 일로만 보더라도 생산성 자체와 드는 비용이 신입과 숙련공의 차이가 몇 배는 날텐데 사측은 숙련공을 대우해줘 일의 생산성과 정확성을 높이고 위험을 낮추기보다 낮은 임금이 유지되는것에만 더 힘을 쓰고 있다. 뒤에 오는 사람들이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노조를 시작하지만, 회사에서는 사람을 일회용품처럼 쓰다 버리고, 대체 인력으로 이주노동자를 넣고 있다. "세상 만물 다 노동자들이 일궈가고 있는데" 회사 뿐만 아니라 사회 자체가 일하는 사람을 천하게 보고 있다고 하는 그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외에 쇠를 깎는 밀링 노동자 김지현, 비계 발판 노동자 나윤옥, 세탁 노동자 김영미, 급식 노동자 공정희, 미화 노동자 김행복, 도장 노동자 정수빈, 화기, 밀폐감시 노동자 박선경, 밀폐감시 노동자 박선경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조선소 곳곳을 돌아보고 그 곳에서의 일과 일하는 사람들과 도대체가 말도 안 되는 부당함과 그 부당함과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가장 답답했던 것은 회사 이름갈이, 하청 회사들이 임금 밀리고 퇴직금 안 주고 파산 신청하고, 그러면 나라에서 세금으로 보장해주고, 새로운 이름으로 똑같이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라니 진짜 나쁜놈들이다. 


미화노동자들이 일년도 아니고 11개월도 아닌 한 달짜리 계약을 매달 한다는 이야기도 어이없다. 


"배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그 나머지를 다 하잖아요. 새벽부터 와가지고 출근시켜줘, 밥 줘, 옷 빨아줘, 청소해줘. 직접 배를 안 만든다뿐이지 배를 만들 수 있게끔 우리가 다 케어해주잖아요. 근데 그거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는 거예요." 


미화노동자 김행복의 말을 읽으면서는 가정내 많은 여성들의 위치와 겹쳐 보이는 기시감을 느꼈다. 


이 책 안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새로운 이야기를 읽으며 알게 되는 것 외에 독자들 또한 다양한 관점에서 느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힘든 일들을 해 내는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힘듦만이 아니라 자부심과 뿌듯함, 재미와 유머가 담겨져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듣고, 읽고, 그만큼의 세계를 확장하고, 연결점 없었던 이들과의 연결점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호명에는 관점이 담긴다. 호명에 담긴 시선들이 교차할 때 우리의 인식은 확장되고 단단해진다. 11인의 목소리가 조선소 노동자라는 사회적 호명에 서로 다른 구조적 상황, 경험, 고통과 요구의 다양한 시선과 관점이 담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전에는 도장도 직영이 있었거든요. 직영 여성들이 터치업을 하고 다녔단 말이에요. 여자들이 일하는 걸 보니 잘하니까 여성을 점점 더 뽑은거죠. 백번 양보해서 예전에는 남자들이 높은 곳 도장을 하고 무거운 걸 들었으니까 임금을 더 줬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높은 곳 도장할 때는 로프맨들이 다 해요. 남자들이 많이 없어서 무거운 것도 여자들이 다 들어요. 그럼 임금에 남녀차별을 두면 안 되지. 근데 이상한 일이죠. 남자가 일당 오천 원을 더 받아요. 여자가 많고 남자는 적어서 할 일은 다 하는데 왜 임금은 다르게 줘요? - P38

힘쓰고 기술이 필요한 일은 자기들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조선소에 들어오기 전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막상 와서 일해보니까 남자들 하는 일이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경우가 있더라고요. 남자라도 저보다 용접을 못하는 사람도 있죠. 저래도 월급 받아가나 싶을 정도로 일하는 사람도 보이고. 여자도 다 할 수 있는 일이네 싶기도 하고. 여자들이 다 할 수 있어도 남자들이 자기 직업을 뺏길까 싶어 안 시키는 일도 세상에는 많이 있겠다 싶어요. - P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