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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의 지리학 - 기후붕괴를 수출하는 부유한 국가들의 실체
로리 파슨스 지음, 추선영 옮김 / 오월의봄 / 2024년 9월
평점 :
Story of the World 를 읽으면서 고대부터 현대까지 읽다 보니 그간 띄엄띄엄 읽던 것에 비해 많은 것이 연결되어 읽혔다.
식민주의 시대를 읽다보면, 아니, 그렇게 멀지도 않은 과거인데, 어떻게 이렇게 땅을 빼앗고, 집과 물건을 빼앗고, 사람을 죽이고, 노예로 삼는 일이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싶었다. 과거의 이야기로만 생각했는데, 인문지리학자인 저자의 책을 읽으며, 식민주의는 한 번도 멈춘 적 없고, 바로 지금도 그 껍데기만 바꾼 채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은 <기후책>에서 읽었던 '기후불평등'을 주제로 기후문제를 긴밀히 엮여 있는 정치,사회, 경제의 문제로 보여주고 있다. 기후변화는 태풍이나 대화재처럼 급격하게 왔다 가는 것들 뿐 아니라 위의 문제들과 뗄래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는 '느린 재난' 이기도 하다.
인문지리학자인 저가가 '지리'의 눈으로 글로벌 공장의 '공급'에 대해 조명하며 거대 기업과 국가의 '그린 워싱'에 대해 파헤친 점이 돋보였다. 글로벌 공장이 있기까지, 제3세계가 기존의 생업 (농업)을 위협받고, 유지해가기 위해 공장으로 몰리게 되는데, 거기에는 '기후 위기'로 인한 불안정성이 물론 있지만, 기후 위기를 기회로 본 인간의 탐욕이 위기에 취약한 자들을 가장 먼저 착취하고, 공멸의 위기를 자초한다.
우리가 저렴하게 사는 물건들이 세계 곳곳을 거쳐서 오는 동안 제1세계의 탄소발자국을 줄이고, 제3세계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기후 위기에 가속페달을 밟는다. 그에 대한 구체적이고 끔찍한 예시들이 펼쳐진다. 캄보디아의 의류 농장이 불법 벌채를 체계적으로 하는 이유는? 전기세가 비싸기 때문에 나무를 불법 벌채한 것을 태워서 '다림질'을 하려고. 공장에 처음부터 사람들이 몰렸던 것은 아니다. 기후 변화로 농사의 변수가 늘어나고, 화학비료와 종자를 사기 위해, 가족 중에 공장에 가서 돈 벌어와야 하는 사람이 생긴다. 그렇게 농촌의 생계수단에 대한 압력이 높아지면서 공장은 노동력을 확보한다. 이것은 노동 조건의 악화로 이어진다.
이 책은 환경책이라기엔 저자가 답 없음, 개인이 할 수 있는 일 없음을 여러 차례 강조하기에 기후 위기로 보는 사회 문제에 관한 책에 더 가까울 것 같다.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강우 도박'에 뛰어드는 사람들처럼 개개인의 노력이 미신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다. 이 부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회란 개인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라는 일반적인 이야기밖에 할 수 없겠고, 내가 변하면, 내 주변이 영향 받고, 그렇게 변화를 늘려가는 것이 의미 없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고, 동의하기 힘들다.
보통의 사람들의 기후지식은 주관적이어서 지구적으로 기후변화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에는 취약하다고 한다. 장기적 기후변화의 신호가 아직 미약하다보니 보통 사람들은 기후변화로부터 오는 '소음'과 '신호'를 구별하기 어렵지만, 각자의 환경에 따라 더 절실히 느끼게 되는 기후 위기의 징후를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기후위기로 인한 위기감을 느끼게 되는 시점을 나는 2024년으로 기억할 것 같다. 각자의 환경에 따라 기후 위기에 더 큰 타격을 받는다는 점에서 보면, 나는 기후 위기의 최전선에서 직격탄을 맞고 있지는 않지만, 도시에 비해 취약하다면 취약한 시골, 섬 살이 하는터라 영향을 받고 있다. 여기서는 대략 신선식품과 냉동식품을 주문할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다. 배달 3일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5월에서 9월 정도까지 배달 자제했는데, 올해는 4월초부터 배달 대참사를 겪었고, 이제 내일이면 10월인데, 배달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내일이면 10월이지만, 여름 옷, 여름 이불, 에어컨, 선풍기가 아직도 한참 열일중이다. 이런 좋은 잘 분석된 책들 보면서 어떻게 하지, 뭐 하지 마음 속으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올 한 해 목표중 하나가 '기후 문해력 높이기' 였다. 기후책들 많이 찾아 읽었고, 하반기에 오월의 책에서 내준 좋은 기후책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기후 문해력을 높여서 주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아니 모두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