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보르헤스 > 내 오디오속 롤리타

 

그대, 내 어린 소녀여

어떤 노래보다 더 나은 그대여

영원히 노래로 불려지거나 말해질 그대여

그대는 살아있는 시요,

그리고 나머지 모든 것들은 죽은 것이리라.


Written by Dante Alighieri


누군가에게 읽혀질 글을 쓸 땐, 마치 발가벗겨진 채, 무수한 사람이 오가는 번화가 한복판에 우두커니 세워진 듯 한 느낌이 종종 들곤 한다. 게다가 자신의 변변치 못한 취향을 고백하게 될 때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싸대기라도 한 대 맞은 듯 얼얼하고 부끄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수줍은 내 취향을 공감해주고 자신도 좋아한다고 말해줄 때면, ‘사랑하는 사람은 고독한 법이다.’라는 말이 여름 햇살아래의 안개처럼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정말 어린아이처럼 마냥 들떠서 몇 시간이고 떠들어 대곤 한다.


내 마음을 한순간에 사로잡아 버린 두 어린 소녀(지금은 두 사람 모두 어리다곤 볼 수 없게 되었지만)에 대해 지금 말하고자 한다.


Lisa Ekdahl

 



 


19세의 나이로 Peter Nordahl Trio의 재즈 보컬로 처음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사실상 재즈보컬로 보긴 힘든 면이 많다. 으레 Jazz Vocal이라면 떠올리기 쉬운 다소 Husky하고 중성적이며, 하드한 목소리를 지닌 것이 아닌 가냘프고, 여리디 여린 다소 불안정한 음색을 그녀는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Jazz Standards를 부른다? 어쩌면 무모한 모험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그녀는 당당히 성공을 거두었고, 23살의 어린나이에 스칸디나비아 최고의 가수로 평가받게 된다. 그녀의 약점일 수도 있는 가냘프고 소녀적인 다소 미성숙한 음색은 재즈를 통해 정감있고, 편안하며, 호소력있는 아주 매력적인 목소리로 변화했다. 그녀의 I don't miss you anymore를 한번 들어보라!


I don't miss you anymore

Unless the moonlight's grey

Or on a stogy night

I just might miss you

A little bit


그녀의 간절한 호소를 당당히 거부할 만한 강심장을 소유하고 있는 남성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확신하는 바이다.



Carol Sloane

 



 


캐롤 슬론? 그게 누구야? 하는 분들이 많을 듯 싶다. 사실상 그녀는 무명에 가까웠으니까. 모든 것이 너무나도 쉽게 잊혀져 버리는 오늘날 30년 가까이 그녀를 기억해 주리라곤 그녀 자신도 몰랐을테니까. 그녀는 14살의 아주 어린나이에서부터 전문적으로 노래를 시작했고, 1961년 Newport Jazz Festival에서 강인한 인상과 함께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이를 계기로 Columbia에서 2장의 음반을 내기도 했으나, 그녀의 이런 시도는 불행히도 성공하지 못했고, 1977년에 이르기까지 단 한 장의 음반도 녹음할 수 없었다. 아리따웠던 24살의 Carol Sloane은 어느새 40세의 넉넉하고 푸근한 인상의 주부가 되어있었지만, 그래도 아직도 여전히 그녀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건 그녀의 고향도 아닌 머나먼 타국, 바로 일본에서의 부름이었다. (이런 부분에선 정말 일본의 문화저변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Art Blakey, Eddie Higgins, Sir Rolland Hanna... 잊혀진 수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일본에서 부활의 날개짓을 했던가!)


개인적으론 Jazz를 들을 땐 맥주가 제격이란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지만, 가끔씩 여성 재즈 보컬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와인 생각이 절로 난다.


굳이 두 사람을 와인으로 비유하자면 리사 엑달은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 캐롤 슬론은 샤토 라투르(Chateau Latour)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보졸레가 가볍고, 어리며 친근하면서, 자유롭고 화려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와인이라면, 샤토 라투르는 처음엔 시고 떫지만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자연히 숙성되어 강렬하면서도 우아한, 황홀한 맛을 가지게 되는 장기숙성와인이라 하겠다.


얼마 전 1961년산 샤토 라투르가 경매에서 1병에 560만원에 팔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캐롤 슬론은 1961년에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 서는 영광을 잠시 누렸지만 30년 가까운 세월을 무명으로 보내야 했다. 하지만 30년의 오랜 인내를 거쳐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와인으로 성숙되는 샤토 라투르처럼 캐롤 슬론의 발걸음도 이제 시작이다.

 

PS> 음악이 연달아 나오니까 밑에껀 꺼두시고 하나씩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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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0-13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Paul Desmond를 듣던중이었는데 한꺼번에 세 노래가 나와서 막 헷갈리던 중이었습니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