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희망 유재현 온더로드 6
유재현 지음 / 그린비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소를 으를 때 우리 농부들은 이렇게 으른다. "워이, 워이."
쿠바의 농부들은 소를 으를 때 이렇게 을렀다.
" 아레겁, 아레겁"

우리 농부들에 비하면 확실히 날카롭고 높은 소리였다. 쿠바 황소가 우리 황소보다 훨씬 사납기 때문일 것이다. 비냘레스 벌판에서 만난 소는 코뚜레에 끈까지 매달려 있었지만 제 놈이 마치 투우인 양 착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중략)  소 뒤를 분주하게 따르는 것들이 있으니, 닭들이다. 수탉, 암탉, 큰닭, 중닭, 작은닭 가릴 것 없이 모여든다. 땅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뒤집어진 흙 속에서는 온갖 벌레들이 꿈틀거리고 기회를 놓칠새라 모여든 닭들에게 밭은 훌륭한 모이터인 것이다.

아하, 유기농이란 간단한 것이다. 논을 갈고 밭을 갈면 새와 닭들이 모이는 농사가 유기농이다.


느린 희망은 '쿠바' 에 관한 책이다. 글.사진 유재현. 으로 되어 있다.
유재현씨의 앙코르와트, 캄보디아, 인도차이나 반도에 대한 책들을 살까말까 고민하고 있던터라
낯익은 이름이었다.
책장을 다 덮고 나니, 이 책의 특이한 점이 있다. 저자의 서문이 없다. 또 하나, 읽으면서도 오래간만에 보는 참 멋진 사진들이구나. 글들과 어쩜 이렇게나 잘 어우러질까. 감탄하면서 읽었는데, 저자의 사진솜씨가 그 어떤 사진가들보다 훌륭하다.

그 동안 읽었던 쿠바 관련 여행기들이 신변잡기적인 내용이어서 더욱 그렇겠지만, 이 책에서 나는 이제야 '쿠바'를 조금 엿 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는 여행기.라는 제목 보다는 '포토 에세이'란 제목이 붙어 있나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보면서 쿠바를 가까이 느낄 수 있었던건, 여백많은 글과 그림의 미덕. 중간중간 '리포트' 란 이름의 딱딱하고 재미없는 차트 안에, 그러나 그 내용만은 울렁울렁 거리는 쿠바에 대한 글들이 있어서였을게다. 위에도 유기농에 대한 글을 인용해 놓았지만,( 그 글 옆의 황소 궁뎅이 쫓아다니는 닭들 사진이 기가막히다. ) 리포트에 나온 '생태환경'을 조금 옮겨보자면 다음과 같다. 쿠바가 세계 제1의 유기농국가라는건 다른 책에서도 보았긴 했지만, 그 배경이 정리되어 있다. 그 중 조금 발췌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생태와 환경에 대한 인식과 실천도 큰 변호를 겪었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에서 열린 1차 지구환경회의에서 한 카스트로의 발언은 그 신호탄이었다. " 불평등한 무역, 보호주의, 외채가 생태를 공격하고 환경의 파괴를 조장하고 있다. 우리가 인류를 이 같은 자기파괴에서 구해내려 한다면 세계의 부와 기술을 더 많이 나누어야 한다. (중략) 제 3세계는 더 이상 환경을 파괴하는 생활양식과 소비관습을 이전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인간의 삶을 보다 합리적으로 만들자. 정의로운 국제경제질서를 만들자. 모든 과학지식을 환경오염이 아닌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사용하자. 외채가 생태에 진 빚을 갚자. 인류가 아니라 굶주림을 사라지게 하자."

그 외에도 쿠바의 배급상황, 의료와 교육에 대한 열성적인 투자등에 관한 숫자와 도표가 함께하는 리포트들은 쿠바라는 나라를 알게 되는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사실 쿠바.란 나라 하면 '시가' 혹은 '하바나' 혹은 '살사' 혹은 '체게바라(이름이랑 그 잘팔리는 얼굴만) ' 정도나 떠올리는 정도였다. 아주 간만에 얻게 된 이 책에 내 모든 쿠바에 대한 선입관을 조정하지는 않을테지만, '쿠바'의 어느 부분을 보아야할지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여행기를 읽으면, 그 작가의 됨됨이가 드러난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내가 느낀 유재현의 됨됨이는 과묵하나, 자신의 신념이 뚜렷하고, 조용한 가운데 한마디 하면 주변 사람들 다 뒤집어지는 그럼 사람인듯하다.

믿음가는 작가이다. 여백이 있는 글과 사진으로 마음을 울리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안다. 이제는 그 동안 미뤄두었던 '체게바라 평전'이나 읽어볼까보다. " 승 리 할   때 까 지  Hasta la victoria Siempre "

* 아, 다시 보니 서문격의 글이 있다. (서문 같지 않은;;) '푸른 유니콘을 찾아서' 란 실비오 로드리게스의 시로 시작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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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06-08-07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아니, 이렇게 자꾸만 질러주시면 -_-;;;;;; 읽고 싶어지네요. 예전엔 이런 책 읽으면 아아. 이 나라에 한 번 가보고 싶어. 라고 생각했더랬는데 요즘은 옹. 하이드님 얼른 안 다녀오시나. 이렇게 대리만족. ^^;

하이드 2006-08-07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래 읽었던 여행기중 최고에요. 제가 이런 글, 사진 쓰고 찍으려면 한 삼십년은 더 수양해야할듯.합니다. ^^

Mephistopheles 2006-08-07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배기가 이정도면 앙코르와트 다녀와서 올리는 페이퍼는 어떻게
참고 견뎌야 한단 말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