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을 팝니다 - 사회학자의 오롯한 일인 생활법
우에노 지즈코 지음, 나일등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 아마 우에노 치즈코의 싱글 시리즈로 알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우에노 치즈코가 이런 말랑말랑해 '보이는' 에세이를? 싶었지만, 시리즈라고 하니, 뭐, 그럴수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알 수 없지만

무엇을 하고 싶지 않은지는 분명히 알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시간을 

좋아한다. 가능하면 늦은 오후에 



두개의 문장으로 들어간다. 책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우에노 치즈코의 이야기들이라 공감할 때도, 공감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들어가는 문장들에 고개를 깊이 끄덕거린건 내가 '싱글의 오후' 를 느껴서 일까? 


좋아하는 일은 아니잖아,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해보고 싶고,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고 말하는 여행사 하는 동생에게, 일이란게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면 좋겠지만,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좋은거지.라고 대답했다. 


일뿐만 아니라, 이 나이가 되니, 이 나이가 되어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모호하지만, 무엇을 하고 싶지 않은지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것이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면서 점점 분명해지는 걸까? 


나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시간을 좋아한다. 내 사전에 없는 것은 '불면', '심심함', '외로움' 등이다. 

혼자서도 시간 너무 잘 가는걸. 책이 있으면 더욱 더. 책을 읽는 사람이 나이가 들면 어떤 모습이 되어갈 것이라는 것에 대한 구체적 상상이 거의 없었는데, 어제 문득 어떤 분을 보고, 아, 나이 들어 지금처럼 책을 읽는 모습 멋진걸, 싶었다. 여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잘 지내. 늦은 오후, 아직 밝은 시간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차나 홀짝이며 책 읽다가 낮잠 자는 것을 좋아해. 인생의 오후로 다가가는 시간, 나는 고양이들이 있고, 애인이 있는 '싱글'이다. 


'생각나는 것', '좋아하는 것', '나이를 먹는다는 것', '싱글의 현재' 

네가지 챕터로 나누어 여러가지 주제들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저자의 다른 책들처럼 무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막 말랑말랑하고 .. 그런걸 기대하지는 않겠지? 

읽으면서 전혀 그런 기분은 아니었다. 싱글?여자 노년의 또 다른 에세이, 사노 요코와도 다르다. 유머 없고, 생각보다? 친절하다? 


세상은 나를 '공격적인 남성혐오자'로 여기는 듯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나는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관용적이며 성을 내는 일도 드물다. 왜냐하면 남자에 대한 기대수준을 낮게 잡고 있기 때문에 개개인의 남자에게서는 기대 이상의 미덕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마음이 선뜻했다. 관혼상제 중 유일하게 장례식을 챙긴다고 하는데, 이승에서의 이별을 똑바로 하고 나아가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희미하다고. 그렇지. '장례식'은 남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이별의식.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주제이기도 하고, 개인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 개인이 우에노 치즈코이다보니 '여성'의 이야기가 안 나올 수 없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귀중하게 건진 이야기가 두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에이지즘을 고발하는 페미니스트 바버라 맥도널드의 대사를 옮겨 놓은 것이다. 그녀는 칠십대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다른 노인과 달리 건강하고 기운이 넘친다는 말을 늙은 여성에게 하면서 그것을 칭찬이라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 여자가 칭찬으로 받아들였다면 당신은 늙은 여성을 거부하는 일에 일조한 것이 됩니다. 

늙은 여성에게 나이보다 훨씬 젊으시군요, 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당신들의 오만에서 나온 말일 뿐만 아니라 외모에서 나이가 드러나는 것을 나쁘게 보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늙은 여성은 당신들 젊은 여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당신들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늙은 여성이 옛날부터 나이가 많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녀들은 70세, 80세, 90세가 어떤 것인지를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늙은 여성을 부정하는 사회에 사는 우리는, 늙은 여성이 이 경험에 대해서 말하면 말할수록 그것이 얼마나 혁명적인 일인지 알게 됩니다. 


이어지는 글도 맘에 든다. 역시 바버라 맥도널드가 썼던 글 중 


젊은 여자들은 당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들려달라며 늙은 여자의 라이프 히스토리를 인터뷰하러 찾아온다. 내가 매일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물어보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 그녀들은 나의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만 관심이 있다. 나는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이렇게 매일을 살아가는, 그저 나이가 많을 뿐인 여자인데도 말이다. 노인은 과거의 껍질이 아니다. 반대로 누구도 경험한 적이 없는 연령'이라는 새로운 현실을 ..


나이에 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나온다. 나야 '현재'주의자라 늘 지금이 나이가 제일 좋다. 막 최고야, 좋아, 짜릿해, 그런건 아니지만, 만족하고, 불만 없다. 오오, 나이 드니깐 PMS가 생겼어. 막 이러고 살고 있고, 대충 '나이 들어서 그래'가 몸의 모든 증상에 맞아 떨어지기 시작하는 그러면서 '운동 해야 해!'를 끌어내는 뭐 그런 현재. 


'젊음'에 대한 과도한 선망은, 특히 여자의 젊음에 대한 집착에 대해 인지하고, 격파할 필요가 있다. '나'에 관해서도 그렇고, '타인'을 대할 때도 그렇다. 


시간과 경험이 이 사람이 '현재'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사귀어야 하는 것은 이 사람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여야 한다. 


이 이야기가 좋다. 우에노 치즈코의 책에서도 몇번이나 반복되는 이야기이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모여 만들어진 나이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인데, 1장에 여성의 삶을 변화시키는 추동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다양하듯 근본적으로 여성의 삶을 변화시키는 추동력은 어느 한쪽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여성 개개인이 처한 상황이 다양한 만큼 수많은 길을 열어 둔 채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는 일이 필요하다. 20세기 여성들이 여성으로 길들여지기를 거부했다면, 21세기 여성들은 서로의 격려 속에서 저마다 '자기 자신'으로 길들여 가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명한 지도자에 의한 조직의 통합이 아니라 여성 자신의 삶을 변혁하는 것"이라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말은 유효하다. 표면적인 성평등 사회에서 여성의 삶을 여전히 지배하는 전통적 여성성 혹은 남성성에서 벗어나는 첫 관문은 '가면 벗기기'다. 자신의 진짜 얼굴을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일, 즉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삶을 제어해 온 콤플렉스와 마주하는 일 말이다. 


평소 콤플렉스에 대해 나쁜 뉘앙스만을 가지고 있어서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책을 읽고 느끼게 되었다. 콤플렉스에 대해 조금만 더 덧붙이면 


콤플렉스는 무의식적이고 제어하기 어렵다.  콤플렉스는 타고난 기질과 사회경제적 현실 속에서 개인이 체험한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내면화되면서 만들어지는데, 일단 콤플렉스에 빠지면 어떤 것에 강하게 집착하는 성격이 나타난다. 콤플렉스는 세계관과 가치관뿐 아니라 어떤 대상이나 행위에 대한 흥미와 동기 등에도 영향을 주고, 행동을 지시하며 성격 형성에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콤플렉스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만들어지기 때문에 자신에게 어떤 콤플렉스가 있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자신의 삶이 콤플렉스의 통제를 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도 힘들다. 보수적인 사회일수록 새로운 사상, 학설, 유행에 두려워하듯이,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낯선 것, 새로운 것, 이상한 것 등을 두려워해 없애거나 외면하려고 든다. 


콤플렉스는 개인적인 것이자 사회적인 것. 


우에노 치즈코의 에세이를 막 찾아서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미 고민과 경험을 거치고 현재의 모습인 그의 모습은 좋은 롤모델임이 분명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제트50 2017-01-27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이든 여자에 관심이 많아요^^
요즘 사노 요코를 재밌게 읽고 있어요. 우에노 치즈코도 찾아볼께요~

하이드 2017-01-31 11:15   좋아요 0 | URL
네, 사노 요코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여성노년 롤모델 이야기가 나오죠. 우에노 치즈코의 책들도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