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

체리에는 다른 어떤 과일에서도 볼 수 없는 발효의 풍미가 있었다. 갓 딴 체리는 햇볕이 가미된 효모의 맛이 났고, 그 맛은 유난히 반짝이는 껍질의 윤기와 서로 보완이 됐다.
체리를 먹으면- 딴 지 한 시간밖에 안 된 것이라 해도 - 그 자체의 썩은 맛이 섞여 있다. 체리의 금색이나 붉은색 속에는 늘 갈색의 기미가 어려 있다. 살이 물러져서 해체되어 들어갈 색.
체리가 청량감을 주는 까닭은 순수함 때문- 사과처럼- 이 아니라, 발효에서 일어나는 기포가 혀를 살짝,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살짝 간질이기 때문이다.
크기가 작고 과육이 가벼우며 껍질이 얇기 때문에 체리의 씨는 늘 어딘가 느닷없는 느낌이었다. 체리를 먹으면서 씨를 예감하기란 어려웠다. 씨를 뱉어 놓고 보면, 그것을 둘러싸고 있던 과육과 그다지 상관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내 몸의 침전물, 체리를 먹음으로써 만들어진 불가사의한 침전물처럼 느껴졌다. 체리 한 알을 먹을 때마다 체리의 이빨을 하나씩 뱉어냈다.
얼굴의 나머지 부분하고 확실히 다른 입술과 체리는 그 윤기와 말랑거리는 것까지 똑같다. 껍질은 둘 다 액상의 피부 같다. 모세관의 표면. 우리의 기억이 옳은지, 아니면 죽은 이들이 과장을 하는 건지 확인을 해 보라. 체리를 입 안에 넣고, 아직 씹지는 말고, 잠깐 동안 그것의 밀도, 그것의 부드러움과 탱글탱글함이, 그걸 물고 있는 입술과 얼마나 완벽하게 일치하는지를 느껴 보라.

존 버거 '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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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3-31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리의 향취가 느껴지는 글이네요.^^ 체리에 관한 글을 보니 먹고 싶어져서 아쉬운대로 투시팝 체리맛이라도 먹어야 겠어요. 바나나처럼 체리도 값이 싸서 마음껏 먹었으면 좋겠어요.

paviana 2006-04-01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체리도 좀 싸졌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요..흑흑흑 배부르게 한번 먹고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