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슬렁어슬렁이라는 말의 어감이 좋다. 

리처는 오늘 새벽 추워서 이불을 뒤집어쓴 나를 보고 장난기가 돌아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더니 이불 아래의 나를 어택, 

잠결에 방어하던 나는 리처의 장난기를 더욱 북돋어 입술을 깨물리고 말았다. 

잠결에 아, 피난다. 이렇게 또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군, 리처년. 하며 잠들었다...는 '어슬렁어슬렁'과는 별 관계 없는 이야기. 



몬난이 



아침에 조조로 '킹스맨'을 봤다. 

왜 인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재미는 있다. 애그시가 체조선수처럼 푱푱 뛰는거 보는게 좋았음. 


영화를 보고 자리를 센트럴 스벅으로 옮겨 메세지카드를 새로 만들고, 책을 꺼내 읽는데, 지금 읽는 책이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이다. 에코백도 맘에 쏙 드는데, 서문도 맘에 쏙 든다. 


글을 쓴 날짜를 분명히 기록한 이유는, 책이 세상에 나올 즈음이면 글 속의 거리 풍경은 이미 적잖이 파괴되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으리라 여겨지는 탓이다. 목조 다리였던 이마도바시는 어느 새 철교로 바뀌었고, 에도 강 둔덕은 시멘트가 발라져 다시는 달개비꽃을 볼 수 없다. 에도 성 사쿠라다몬 성문 밖이나 시바 아카바네바시 건너편 공터는 지그 토목공사가 한창이다. '어제의 꽃도 오늘은 꿈'이 도는 덧없는 세상의 유물을 비록 서투른 글월로나마 남기고자 하니, 부디 훗날 두런두런 나눌 이야깃거리라도 될 수 있기를. 


을묘년(1915) 늦가을 가후 


'어제의 꽃도 오늘은 꿈' 이라는 말 좋다. 


무심코 뒷골목을 걷다 들려오는 소녀의 샤미센 연주에 감동하다니, 나는 도무지 새로운 세계의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 에도의 음곡을 전기등 아래서 요란스레 연주하게 만드는 세속 일반 풍조와도 어울릴 수 없다. 큰 타격을 주는 무언가가 나타나지 않는 한, 나의 감각과 취미와 사상은 나를 차츰 고루하고 편협하게 만들어, 마침내 나는 세상에서 완전히 소외되고 말리라. 나는 이따금 반성하려 애써본다. 동시에 이런 성격이 도대체 나를 어디로 끌고 갈까 생각해본다. 차라리 내 몸을 남의 것인양 방치해버릴까. 그렇게 허무한 미래를 상상하며 얄궂은 호기심을 느낄 때도 있다. 자기 몸을 꼬집고는 이 정도 힘을 주니 역시 이 정도 아프구나 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혼자서 눈물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담담함과 소탈함을 가장하지만, 마음속에는 참을 수 없이 깊은 체념이 깃들어 있다. 



비위생적인 뒷골목에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미신과 탕약에 의지해 세상은 덧없는 꿈이라며 생명을 간단히 체념하는 모습을 떠올리면,의학이진보하지 않았던 시대의사람들이 병고와 재난을 태연히 받아들이고 간명하게 살았던 모습에 깊은 경외심이 인다. 무릇 근대인이 기뻐 환호하는 '편리'라 부르는 것만큼 의미 없는 것은 없으리라. 도쿄의 서생이 미국인인 양 편리하다고 만년필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문학이든 과학이든 진정한 진보가 있기는 있었는가. 전차와 자동차는 도쿄 시민들이시간을 절약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가. 



프랑스인 에밀 맨유의 저서 '도시미론' 이 얼마나 흥미로운지는 나의 수필 '오쿠보 소식'에 밝힌 바 있다. 에밀 맨유는 도시가 지닌 물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장에서 널리 세계 각국의 도시가 하천이나 강만과 어떤 심미적 관계가 있는지, 나아가 운하, 늪지, 분수, 교각과의 관련성까지 세세히 짚었다. 아울러 추가로 강물에 비치는 가로등의 아름다움까지 논했다. 


이 책 보고 싶다. 강물에 비치는 가로등의 아름다움까지 논하는 책!






 도쿄는 예전같이 산책할 곳이 없다.는 무려 백년전의 글을 보니, 지금의 도쿄, 혹은 서울은 어떤가 싶다. 자연이 없는 곳에 산책도 없다.인가. 주변에 산책할 곳이라면 .. 버드나무 이야기가 나오니, 현충원이라도 산책가볼까 싶다. 혹은 잘 정돈된 한강변 정도겠지. 영화 괴물을 떠올리며. 


어렴풋하긴 하지만, '본질'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 책 속에서 아쉬워하는 것들이 자연과 사물과 감성의 '본질'에 가까웠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백년 전의 작가는 과거를 아쉬워하고, 백년 후의 한량은 또 그 과거를 아쉬워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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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4-05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는데 다시 넣어야겠군요!!!

하이드 2015-04-05 22:00   좋아요 0 | URL
약간 고양이의 서재. 스러운데, 저 이 작가 좋아요. 탐미주의, 에도시대 전문. 산책도 엄청 좋아하구요.

2015-04-06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06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