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잔치는 끝났다 - 최영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이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라는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서른, 잔치는 끝났다. 를 열여덟에 읽었다.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란 말을 그때는 이해 했는가? 지금 나는 ' 잔치는 끝났다. ... 홀로 마지막까지 남아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이해하는가?

흠. 진중권선생님의 강의만큼 스릴있지는 않지만,
열여덟에 샀던 시집의 그녀. 서른을 앞둔 지금 보게 될 그녀를 기대해본다.
좋아하는 화가들. 그림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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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9-16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바람은 그냥 스쳐가지 않는다
밤별들을 못 견디게 빛나게 하고
가난한 연인들 발걸음을 재촉하더니
헤매는 거리의 비명과 한숨을 몰고 와
어느 썰렁한 자취방에 슬며시 내려앉는다


그리고 생각나게 한다
지난 여름을, 덧없이 보낸 밤들을
못 한 말들과 망설였던 이유들을
성은 없고 이름만 남은 사람들을......
낡은 앨범 먼지를 헤치고 까마득한 사연들이 튀어나온다


가을바람 소리는 속절없는 세월에 감금된 이의
벗이 되었다, 연인이 되었다
안주가 되었다


가을바람은 재난이다

마태우스 2005-09-17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흔이 코앞인데도 잔치는 계속되더이다.

클리오 2005-09-17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드디어 미술의 세계로 깊이... ^^ 저도 서른 즈음은 아니었지만,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의 구절을 읽으며 이러저러한 생각을 했던걸 기억합니다... 님, 저는 목포의 한 피시방이랍니다..... ^^

하이드 2005-09-17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여긴 비가 무지하게 오다가 지금 그쳤어요. '목포의 한 피시방' 왠지 시적입니다. 넵. 전 최영미시인으로만 알았지 그녀의 전공이나 미술관련 책 썼다는건 이번에 알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