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의 이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7
헤르만 헤세 지음, 김누리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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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사람만 볼 것-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말 미국의 대학 도시 샌프란시스코의 서점에서 벌어진 기이한 일. 한동안 도시 전체를 통틀어 헤세의 책을 구할 수 있는 서점이 없었다. 책이 서가에 꽂히기가 무섭게 동이 나 버린 것이다. 실로 느닷없이 휘몰아친 헤세 선풍은 삽시간에 미대륙 전체를 휩쓴다. 그와 같은 헤세붐을 선도한 작품은 ' 황야의 이리' 와 '싯다르타' 였다.

1927년 헤세가 오십줄에 들어서 발표한 '황야의 이리' 가 미국과 유럽을 뒤흔든 68학생운동 세대와 히피들에게 성경처럼 읽혔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자아 찾기', '강력한 전쟁 비판'  그리고 '몽환적'이기까지 한 이 작품은 그러나 그 세대 못지 않게, 21세기 초두에 읽어도 들어맞는다.

하긴, 헤세는 말한다.

'나는 독자들에게 나의 작품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정해주고 싶지 않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각자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취하기를! 그렇지만 만약 독자들이 [황야의 이리]가 병적인 것과 위기를 묘사하고 있음에도 죽음이나 몰락으로 치닫지 않고 반대로 치유에 이르고 있음을 알아차려 준다면 기쁠 것이다'

백가지, 천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이 책에서, 누가 읽던 원하는 부분을 찾을 것이라 믿는다. 다만 세상에 대한 유머를 통해 고통과 정신적 질병을 치유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렇구나. 할 뿐. 강력히 동의할 수는 없었다. 그 예로 등장한 인물들이 모짜르트와 괴테다. 그들. 천재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죽는 날까지 나이브하게 미쳐돌아가는 세상( 그렇다. 세상은 그때나 이때나 지금이나 항상 미쳐돌아가지.) 을 담담히 받아들였던 것이고, 헤세는 그렇게 우리가 적응해 나가길 바라나보다. 그 자신이 그것을 해답으로 찾았고.

이야기는 3가지 주요 줄거리를 담고 있다. 가상의 편집자 서문에서는 주인공, 황야의 이리, 하리 할러가 편집자의 아주머니 집에 하숙하는걸 관찰한 '시민'의 시선을 담고 있다. 조금은 기괴하고 병적이지만, 예의 바르고, 그것이 또 위험해 보이지만, 어쨌든 조용히 지내는 할러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두번째로는 할러가 길에서 얻게 되는 작은 소책자' 황야의 이리론'이다. 이 책자의 제목 아래에 나와 있다. '미친 사람만 볼 것' . 할러의 거칠고 조절하기 힘든 내면을 '황야의 이리' 라 이름붙였지만, 사실 할러의 영혼은, 아니 인간의 영혼은 이원론적으로 이야기되어질 수 없으며, 수백, 수천의 각기 다른 영혼을 지니고 있고, 그 영혼들을 조화롭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사회에서 그것에 과학의 이름으로 ' 정신분열'의 딱지를 붙일지라도. 당시 헤세는 융의 제자인 랑박사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이뿐만 아니라 헤세의 당시 경험들이 진하게 묻어 나 있다.

마지막으로 할러가 헤르미네( 젊은 시절 친구인 헤르만의 여성형 이름) 라는 고급 창부를 만나게 되어 그가 지금까지 경원시 여겼던 다른 세상을 체험하게 되고, 그녀를 따라 가장무도회에 가서 '지옥'이라는 이름의 방에서 '마술 극장'을 보게 된다. 그 마술 극장에서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꼭꼭 씹어 읽어야 할 책이다. 그의 정갈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은 책을 통째로 외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여러번 읽고 싶어지게 한다.

헤세의 책은 매 번 읽을때마다 무척이나 다른 느낌을 준다. 좀 더 어렸을때 이 책을 접할 기회가 없었음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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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6-22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본지 거의 20년은 되가나 봅니다.. 새삼 다시 보고 싶네요..^^

하이드 2005-06-22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세의 책들은 볼때마다 느낌이 틀린 것 같아요. 잘 묵혀 두었다가 몇년 후에 또 꺼내봐야지요. ^^

2005-06-23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perky 2005-06-25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읽으셨군요. 정말 대박인 책이었어요. 휴..

하이드 2005-06-25 0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perky님 추천 받고 샀었던거죠. 그때가 언제... ^^a 독일문학에의 관심을 다시 북돋아준 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