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속에 갇힌 ' 그 '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오랜동안 벼르고 있던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를 읽었다.

생각보다 작고 예쁜 모양의 책이다. 표지의 창문 속 늙은 남자와 큰 새의 그림은 다섯개의 작품 중 '칠십리 장화' 에 나온 그림이다. 작품마다 독특한 느낌의 그림들이 끼워져 있다. 가장 인상 깊은 그림은 ' 생존시간 카드' 였다. 세상에 비생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 정도에 따라 사는 기간을 줄인다. 그 중에는 작가도 포함되는데 주인공인 쥘 플레그몽은 한달중 15일을 살 수 있게 된다. 처음 그 법이 발효했을때부터 법이 폐지될때까지의 요지경을 잘 드러내는 단순하지만 임팩트 강한 느낌의 그림들이다.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마지막 작품인 '천국으로 간 집달리' 이다. 집달리란 직업은 세든 사람에게 집세를 받아내는 일이다. '천국에는 집달리가 거의 없다' 베드로는 뻔뻔스러운 태도의 그에게 그 때문에 고통 받은 모든 이들의 눈물을 보여주며 지옥행을 선고하나 그는 자신의 직업을 수행했을 뿐이라며, 그게 무슨 잘못이냐며, 하느님께 상소한다. 그러나 그는 천국에 갈만한 선행을 대지는 못한다. 결국 하느님은 그를 다시 지상으로 내려보내 선행을 쌓으면 천국으로 보내주겠다고 한다.

그는 그 다음날로 노트를 만들어 반 지점에 선을 긋고 선행, 악행을 적고 선행과 악행을 표기하기로 한다. 하루에 얼마씩 선행을 행하기로 한 그가 행한 마지막 선행. 그로써 '머리에 동그란 빛줄기를 받으며 아름다운 선율에 이끌려 천국 안으로 들어가' 게 한 그 선행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는 짧은 단편이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다.

원래 열작품으로 구성되었으나 다섯작품만 선별해 골라낸 이 단편집은 어른들을 위한 우화집이다. 워낙에 200페이지도 않은 얇은 책이라, 열작품 다 들어갔으면 좋았을뻔 했단 생각이 들지만, 어두운 면을 구질구질하지 않게, 그러나 세상에 대한 무조건 적인 희망 섞인 어조를 배제한 마르셀 에메의 단편과의 첫 만남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