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고독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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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종말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서구 작가들, 특히 프랑스인들의 기우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동유럽이나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에게는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책꽂이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꽂아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밀란 쿤데라-

굳이 밀란쿤데라의 말이 아닐지라도, 이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백년동안의 부엔디아 집안의 이야기는 너무나 대단해서, 최고 작가인 마르케스가 23년동안 고민하고  이 소설을 세상에 내보였다고 하는데 23년까지는 아니라도 오래 고민하고 흡수하고 리뷰를 쓰는 것이 허접한 리뷰를 피하는 길이긴 하겠지만, 두번째 읽고, 두번째 리뷰, 세번 읽고 세번째 리뷰를 쓸것을 자신과 약속하고, '백년의 고독'과의 첫만남에 대해 주절거려 본다.

이 책을 읽기는 쉽지가 않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장면이나 헷갈리는 장면이 나와도 안 찾아보고 일단 그냥 읽어내려가는 나에게는 마지막까지도 이 사람은 누구더라? 하는 인물이 몇 있었다.

그러나 읽고 나면, 특히나 강렬한 마지막 열장정도를 읽고 나면, 그 사람이 누군지 몰랐던건 그리 중요하지 않아진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로 시작하는 부엔디아 집안의 흥망은 결국 한가지 이야기다. 중간정도 읽을때까지만해도, 되풀이 되는 이름과 되풀이 되는 이야기에 여기서 끝나도 하나도 안 이상하겠다며 페이지를 끈기있게 넘기기도 했지만,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그 모든 이야기가 이 결론을 향하여 치달았구나. 처음부터 예견되어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머리를 쾅 친다.

옮긴이의 말처럼 '백년의 고독' 을 '백년의 근친상간의 이야기' 로 바꾸어 놔도 될 정도로 이 이야기는 근친상간으로 시작해서 근친상간을 끝난다. 등장인물들의 고독도 근친상간이라는 비도덕에서 오는 고뇌에서 온다.  정녕 그렇다. 이 '근친상간'모티브에는 외부세계(서양세계)와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비확실한 근본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굴절된 역사와 현재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이 책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라틴 아메리카의, 그 중에서도 콜롬비아의 역사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책에 나온 굵직굵직한 사건들( 19세기 말에 일어났던 천일전쟁과 바나나 농장 파업사건)과 인물들은 실존인물들과도 실제 사건들과도 겹친다.

이 책은 역시 호세 아르까디오의 성격을 지닌 아들들과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의 성격을 지닌 아들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문의 긴 역사를 통해 똑같은 이름들을 집요하게 되풀이해 씀으로써 확실해 보이는 결론들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내성적이었지만 머리가 뛰어난 반면에, 호세 아르까디오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충동적이며 담이 컸으나 어떤 비극적인 운세를 지니고 있었다. '

1982년 노벨 문학상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수없이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은 이 소설을 한 번 읽고 어떻다 말하기는 무리일 것이다. 위에 썼듯이 라틴아메리카 역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이 책을 보는 것은 많은 것을 놓치고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듯이) 하지만, 이런저런 숨은뜻과 배경지식에 대한 무지에도 불구하고, 그 텍스트만으로도 다시 접하기 힘든 충분히 처절하게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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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5-02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정말 마지막이 압권이었어요. 맨 마지막 장을 읽고났을때야 비로소 '백년동안의 고독'이라는 책 제목이 확실히 이해됐었죠. 솔직히 저는 이 책을 상당히 어렵게 읽었었는데요. 워낙 어렸을 때 읽었고, 특히 마술적 사술주의 기법이란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보니 이해하기 무척 어려웠던 것 같아요. (2번 읽다 포기했고, 3번째 시도만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다 읽고나서 뿌듯함과 허무함, 황홀감이 마구 교차했던 책이었어요.

하이드 2005-05-02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어요. 맞어요. 마지막장! 저도 어렸을 때 접하고 지금 또 나이 들어서 접하고, 나중에 또 접하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정말 대단하단 말 밖에 안 나와요.

해적오리 2005-05-05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요. 저도 읽어보고 싶은데 번역본 어디게 좋은가요?

하이드 2005-05-06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민음사꺼밖에 안 읽어봐서요. 근데, 대체로 민음사께 믿음직 한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