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각의 집에서의 모험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길에, 친구가 비행기에서 열어보라며 준 선물을 뜯어본다. 황금색과 푸른색의 우아한 비단 상자 안에는 똑같이 생긴 2개의 크롬 공이 비단 구멍 속에 나란히 박혀 있다. 슬쩍한 딸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강박적으로 2개의 공을 돌리던 미친 퀴그 선장이 생각난다. 상자 안에는 접은 쪽지가 들어 있다.

서기 800년경부터 고대 중국인들은 이 지압구가 몸의 건강과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단다. 그래서 이 귀중한 운동기구를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한 레이건 대통령 부부에게 선물했지. 중국인들은 이 2개의 공을 손에 쥐고 돌리면 손가락의 경혈이 자극되어 기의 순환을 촉진시킨다고 하더라. 체육인들과 음악가, 컴퓨터 사용자와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누구나 이 공들이 근육 단련에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인정해. 관절염을 앓는 사람들도 이 부드럽고도 힘든 운동을 통해 큰 효과를 본대. 이완과 명상에도 아주 효과적이지. 공을 돌리는 동안 신비스러운 종소리가 조그맣게 들린단다. 이 아름다운 수공품, 속이 빈 이 반짝거리는 크롬 공의 둘레는 45밀리미터고 무게는 딱 알맞지. 누구의 손에든 편안하게 들어갈 거야.

나는 공을 하나씩 꺼낸다. 그리고 그 부드러움과 매끈함, 서로 부딪칠 때 나는 소리, 빛나는 두 개의 공을 한 손에 겹쳐 쥐고 돌릴 때의 편안함에 대해 감탄한다. 사실 이것은 여자들이 질 속에 삽입하고 즐기는 동양의 쾌락의 도구 린 노탄 rin no tan과 비슷하다. 여자들이 그것을 집어넣고 몸을 흔들면 공들이 몸속에서 움직이면서 성행위를 할 때의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고 한다.

이 신비스러운 물건은 샌프란시스코 '촉각의 집 Touch Dome'으로 가는 여행길에 적당한 선물이다. 나는 몇 시간 뒤면 그곳에 도착한다. 멋진 체험과학 박물관인 익스플로라토리움의 한쪽 끝에는 사람이 차가운 어둠 속에서 걷고, 오르고, 기고, 미끄러질 수 있도록 3차원의 미로를 설치해놓았다. 휘청거리는 벽 사이를 뚫고 지나가면 경사 진 바닥이나 강낭콩 같은 것들이 가득 찬 바다가 나오고, 때로는 로프로 만든 그물침대 사이에서 나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따금 솔이나 샌들 같은 친숙한 물건 위로 손이 스치면 소스라치게 놀랐다가 다시 해독할 수 없는 어둠으로 돌아온다. 누군가 갑자기 폐소공포증에 사로잡혀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면 경비원이 슬며시 들어와 구해준다. 그러나 평소에 폐소공포증과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라도 밝은 세계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순간, 공포에 사로잡히게 된다. 암흑은 단단한 바위처럼 완강하고, 경사면으로 굴러 떨어지는 미로는 너무 좁아 일어나 앉을 수도 없을 지경이다. 사람들은 경사로의 시작과 그 대강의 넓이를 느낄 수는 있어도, 길이나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알지 못한다. 이 경사 진 길이 앞으로 얼마나 더 곤두박질칠 것인가? 머리도 못 들고 팔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중간에 갇히면 어쩌나?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보려고 팔을 앞으로 내밀었는데 길은 너무 좁고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밑바닥에 구멍이 있어서 물렁한 바닥으로 거꾸로 떨어진다면?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은 미끄러지다가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공중제비를 돈다. 출구가 없는 듯한 방으로 기어 들어가서 팔을 위로 뻗어보니 손잡이가 만져진다. 손잡이를 잡고 더듬더듬 기어 올라가자 또다른 차원의 미로가 나온다. 가볍고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얼굴을 스치고, 어둠은 다시 방향을 알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가득 찬 순전한 수수께끼가 된다. 그리고 어둠은 발밑에 느닷없이 구슬을 부어놓고, 건조하지만 꿈틀거리는 어떤 것의 수렁에 무릎까지 빠진 채, 비틀거리며 급하게 걸어나간다. 그리고 쿵쾅거리는가슴을 다잡으며 두꺼운 고무 술을 헤치고 나가다 손잡이를 붙잡고, 경사로를 굴러 떨어져 밝은 빛 속으로 나온다. 순수한 촉각의 짧은 여행을 견뎌낸 것이다.

- 다이앤 애커맨 ' 감각의 박물학'中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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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4-23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하이드님, 저를 위한 페이퍼를 따로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동의 물결입니다.^^
글도 잘 읽었구요. 특히 저 글 속의 익스플로라토리엄이 있는 Marina 지역은 제가 무척 좋아하는 곳이랍니다. 언제 기회되면 사진 올려드릴께요. ^^

하이드 2005-04-23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정말 궁금해요. 예전에 샌프란시스코 갔을적에 가자는걸 안 갔는데, 지금 이렇게 제가 좋아하는 책에서 만나고 보니 속이 쓰리네요. 딱 보고 perky님 생각났어요. 헤헤 부모님 오셨겠네요. 와 - 정말 좋으시겠어요.

2005-04-23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4-23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