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
마르크 레비 지음, 김운비 옮김 / 북하우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세상살이 고달파 죽겠는데, 잠시잠깐의 환상에 빠지는 것을 허락하자구.

여기 성격은 지랄같지만, 능력있는 레지던트 로렌이라는 여자가 있어. 주변에 혹시 새끼의사가 있으면 알꺼야. 그들이 얼마나 인간이하의 생활을 하는지. 프랑스도 마찬가지인가봐. 어느날 그녀는 기적처럼 주말에 비번을 내게 되지. 완전 신난거지. 최소 24시간 이상 잠을 못잤을텐데, 이 여자 새벽부터 일어나서 주말 여행을 간다고 설쳐. 태평양 해안도로를 따라 아름다운 새벽길을 달리는 즐거움을 포기할수 없대나 뭐래나.

논다는 생각에 완전 기운찼어. 왜, 그런거지, 주말여행, 그것도 몇년만에 병원에서 벗어나서 맞는 여행인데, 나라도 아드레날린이 마구마구 솟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혼자서 막 떠들어. 애완견인 칼리에게 얘기하는건 이해하겠는데, 나도 종종 레오가 사람말로 대꾸를 안하다뿐이지 내 말 다 알아듣는다고 믿거던. 근데, 막 집한테도 말 걸고, 싱크대한테도 말하고, 널린 옷들과 수건을 향해 소리쳐. ' 일찍 돌아와서 다 정리해줄께!'하고. 풉. 웃기지 않아? 이여자? 낡은 계단을 날듯이 내려가면서 ' 와 떠난다, 나 떠난다구!' 신나게 외치기까지해.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꺼야. 그러더니 이젠 낡은 차에게 말을 걸어. " 믿을 수 없는 일이야, 진짜 기적이라구! 이젠 네가 잘 출발해 주는 일만 남았어. 한 번이라도 쿨럭이면 엔진을 메이플 시럽에 빠뜨리고 널 폐차장에 내던져버릴 거야. 그리고 널 갈아치울거야. 완전 전자식 젊은 놈으로, 추운 날 아침에도 스타터가 필요없고 영혼도 없는 놈으로 말이지, 알아들었지 응? 자, 부디 걸려라!"

이 소설 초반에 나오는 로렌이 여행을 떠나면서 혼자 떠들어대는 말들, 낡은 자기 차에게 이야기를 거는( 협박을 하는 ?) 장면은 마르크 레비의 책에 아직 익숙하지 않겠지만 상당히 의미심장해. '와 떠난다, 나 떠난다구!'  '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꺼야' '영혼도 없는 놈으로 말이지'

늙다리 영국차가 여주인의 확고한 메시지에 깊은 감명을 받아서 키를 돌리는 첫 방에 모터가 돌아갔나봐. 로렌은 멋진 하루를 예감해.

이 책이 유령로맨스인걸 아는 나로서는 그녀의 죽음을 예감하지.

여자가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녀의 영혼은 빠져나와 그녀가 예전에 살던 집에 이사온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를 안락사시키려고 하자 그 남자는... 으로 시작되는 줄거리를 읊어버리면 이건 상당히 통속적이고 간질거리고 그저그런 고스트로맨스 소설로 전락하고 말꺼야.

하지만, 소소한 부분에까지 찬찬히 눈길을 돌린다면, 사실 너무 귀에 쏙 들어오는 말들이 많거든. 그건 그거대로 좋은거구, 소소한 부분에까지 찬찬히 눈길을 돌려야해. 혹은 그냥 있어도 소소한 부분들이 가랑비에 옷젖듯이 메마른 심장을 촉촉하게 만들어주기를 기다리던가.

투닥투닥 농담따먹기하는 로렌과 건축가인 아더와 그의 죽마고우인 폴이 있어. 그리고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더의 엄마인 릴리와 앤서니도 있고, 그리고 막판에는 나탈리와 필게즈도 나와.

육개월여동안 영혼의 모습으로 홀로 지내야했던 로렌의 모습. 그건 유령소설이 아니라도 볼 수 있어. 로렌이 아더를 발견하고 말하지. " 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요. 내가 그들을 볼 수 있다고 해도 그건 행복보다 불행을 더 안겨주지요. 연옥이란 것이 아마 그럴 거예요. 영원한 고독."  내가 좋아하는, 아니 숭배하는 뮤지컬 '시카고'에도 비슷한 사람이 나와 음.. 이름이 뭐더라, 이름은 기억 안나는데, 그는 자기 자신을 ' 셀로판지' 라고 불러. '나는 셀로판지, 나는 셀로판지. 내가 옆에 있어도 사람들은 나를 보지 못하지.' 몸을 좌우로 까닥까닥 거리면서 우울한 표정으로 하얀 장갑을 끼고 마임하듯 노래를 부르지. 별로 안 나오는데, 인기최고야. 별로 웃기지도 않은 춤을 보면서 사람들은 ( 물론 나를 포함해서) 과하다 싶을정도로 웃지. 아마 ' 나는 셀로판지가 아니야.' 라고 믿고싶은건가봐.

아무튼. 그런 '로렌'을 '아더'는 봐. 보고, 느끼고, 만지기까지해. 그러니깐 이건 비록 유령, 아니 귀신, 아니 영혼하고의 사랑이지만, 플라토닉하기만 한건 아니라는거지. 

이 세상에서 '로렌'을 보고 느끼는 사람은 ' 아더' 뿐이야. '로렌'이 이야기할 수 있는 단 한사람도 '아더'뿐이지. 서로에게 그렇게 유일한 존재야. 그들은. 감동적이지 않아? 뭐, 그냥 그렇다구? 어쩔 수 없지. 난 마르크레비처럼 입담꾼은 아닌걸. 그럼 읽어보던지.

아무튼 유령이 아니 영혼의 모습으로도 현실적인 로렌은 자신때문에 아더가 망가지는게 싫어. 미래가 없는 모습에 서로 기대야하는게 싫어. 그래서 자꾸 물어, '나한테 왜그러냐고' '나한테 더 이상 얽매여선 안된다고' 보통 남자가 현실적이고 여자가 감정적인데, 이 친구들은 그런거 없어. 근데 아더가 그래.'그럴 수 밖에 없다'고.  " 왜냐하면 따지고 계산하는 동안, 찬성할 것과 반대할 것을 분석하고 있는 동안, 삶이 흘러가며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야." 라고. 이 친구 계속 보면 알겠지만 꽤나 행동파야. 원래부터 그랬는지, 아님 로렌을 만나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여튼. 앞으로 가는 방법밖에 모르는 것 같애. 처음에는 그녀가 그에게 자신이 영혼임을 믿어달라고 사정했는데, 이제는 그가 그녀에게 고민하지 않고 그녀를 돌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자신을 믿어달라고 간청하는 지경이 되었어.

근데, 평소같으면 한심해보여야 할 아더같은 남자에 가슴이 마구 뛰어. 수줍고, 가슴 한 구석에 과거를 안고 있고 지극히 평온하면서 행동파인 이 남자.

이 이야기는 몇번이고 반복되는걸 보니 이 글의 테마쯤 되나봐. 아더가 잡으러온 은퇴를 앞둔 노 형사에게 또 말해.

"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 당신이 진정 내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면, 당신이 진정 나를 신뢰하고자 한다면, 아마도 마침내는 내 이야기를 믿게 될 것이고, 그건 내게는 무척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 비밀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하늘 아래 유일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뭐,굳이 그렇게 성심성의껏 진심에서 우러나와 ' 믿어주세요' 라고 말하지 않아도 '너를 믿어' 라고 서로 말할 수 있는, 점점 희미해지는 나의 모습을 뚜렷하게 봐주는 ' 너' 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럼 나도 '나비나 파리를 유심히 탐색하는 고양이처럼' 너를 지켜보아 줄텐데.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했던가?" 수줍어하는 어조로 그가 말했다.

"당신은 내게 사랑의 증거들을 보여줬어. 그게 훨씬 좋아." 그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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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3-30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긴 하지만 <귀신은 산다>랑 비슷한 면이 있네요....

하이드 2005-03-3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뜬금없지만, 저도 그 생각 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