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집을 사기로 마음 먹고, 사 놓았던 '무진기행'을 드디어 펼쳤다.

오늘 기차타고 천안에 가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작가의 말'을 읽고 나니, 나머지 세권 사는 것이 주저된다.

|작가의 말 |

 

나와 소설 쓰기

제 1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관사가 붙어다니는 [서울의 달빛 0장]을 쓰고 난 이후로 나는 소설을 거의 쓰지 않고 지냈다. [서울의 달빛 0장]을 쓴 해가 1977년이니까 그 이후 십팔 년동안 나는 소설가이기를 그만둔 꼴로 지내온 것이다.

1980년에 동아일보에 장편 연재를 시작했으나 광주사태의 참극으로 인한 충격과 분노는 펜을 잡고 있을 수 없을 만큼 손을 떨리게 했다. 연재 십여 회 만에 소설 쓰기를 중단해버렸다. 그 후 몇 군데 사보에 콩트 몇 편을 썼을 뿐, 나는 친구들의 말마따나 '前소설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아무리 1980년대 초의 한국이 피비린내 나는 광기에 휩싸여 있었다고 할지라도, 1981년에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내 다시 펜을 잡고 소설 쓰기에 매달렸을 것이다. 소설 쓰기란 나에게는 항상 직업 이상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나는 오히려 생계수단으로 다른 일을 하곤했었다. 소설 쓰기는 나에게는 신성한 것이었다. 소설을 구상하고 파지를 내가며 지금 쓰고 있는 장면의 의미를 정리하는 동안은 인생의 혼란과 무의미감에서 일시적으로나마 벗어나 이 세계가 제법 조리 있어 보이고 의미 있어 보이는 구원의 시간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에 의해서 내 영안靈眼이 열리고, 하나님의 크고 하얀 손을 보게 되고 그 손에 의해서 어루만짐을 받게 되고 "누구냐?"라는 내 질문에 "하나님이다"라는 음성의 대답을 듣게 되고, 또 이후 1982년엔 "그리스도의 명령이다. 인도에 가서 전도하라!"는 음성의 대답을 듣게 되고, 다음해인 1983년엔 예수 그리스도의 발현으로, 그 하얀 내리닫이 옷을 입으신 하얀 몸-하얀 머리칼, 하얀 수염, 하얀 피부의 얼굴 등. 하얀 모습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눈으로 보게 되는 등, 극치의 구원이 나에게 임하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놀랍기만 한 신비의 연속적인 체험이 나에게는 광주사태 이상으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후 여러 해 동안 나는 오직 성경과 그 주석서를 읽고 기도 생활에 몰두하며 나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교정하는 일밖에 다른 겨를이 없이 지내왔다. 소설 쓰기는 이 시각 교정 이후에나 고려해볼 문제였다. 인도에 가서 전도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으로서 그 준비와 관련되지 않는 일은 내 일상생활에서 배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쓰기의 문제는 해가 갈수록 더욱 새로운 필요성에 따르는 강한 욕구가 되어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구원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만난 이상 소설 쓰기가 더이상 나의 구원 수단은 아니게 됐지만 소설이라는 언언행위가 하나님의 진리와 진실을 드러내기에 적절한 수단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소설을 쓰기에 따라서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갚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치 공산주의자들의 선전문학처럼 상투적인 기독교 전도용 소설로 단순화하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의 진실이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는 소설은 오히려 보다 철저한 독창성과 보다 생동적인 형상화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인간과 사회의 죄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접근과 관찰과 숨김이 없는 기록. 그리고 리얼리티를 오히려 돋우어주는 은유- 그것이 앞으로 내가 써야 할 소설이라는 비전이 날이 갈수록 뚜렷해지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빛이 밝을수록 인간들의 어둠은 더욱 고통스러워보였다. 무신론자 또는 불가지론자였던 시절에는 인간들의 어둠이 때로는 귀엽기도 하고 아름다워 보인 적도 있었는데 말이다.

십수 년 동안 중단했던 소설 쓰기를 새로 시작하려고 보니 기왕에 써냈던 작품세계를 새삼스럽게 검토해보고 싶어졌다. 십수년의 간격이 이전에 썼던 작품들을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집결시키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60년대 작가'라는 별칭이 붙어다니는데, 아닌게 아니라 이제 보니 이 카테고리야말로 1960년대 상황 인식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1960년대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내가 써낸 소설들은 한낱 지독한 염세주의자의 기괴한 독백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1960년대라는 조명을 받음으로써 비로소 소설들은 일상적인 모습으로 동작하는 것이다. 내가 '60년대 작가' 임을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자리를 확인해보려고 고개를 돌려대며 두리번거리는 어린아이처럼 자기 시대의 현상과 징조를 확인하기 위해서 상상력의 빛을 여기저기 들이대보고 있는 젊은 작가의 모습이 다소 그립게 회상된다. '하나님을 모르고도 잘도 견뎌왔군!' 작품 한 편 한 편을 들춰볼 때마다 불안과 초조함으로 입술이 바싹 말라붙은 젊은 날의 내 모습이 눈에 선해지며 저절로 연민 섞인 감탄사가 중얼거려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무신론의 불타는 가슴을 후벼대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보다 더 많다고 하면 이 작품들은 더이상 나의 것이 아니고 바로 그 사람들의 것이 되리라. 하나님의 위로가 없는 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들의 상황은 항상 1960년대인 것이다. 이 깨우침이야말로 이 '김승옥 소설전집'을 출판하는 데 동의한 나의 이유이다. 만약 이 소설들이 바로 내가 하나님의 한없이 자애로운 손길에 닿기 이전까지 걸어온 그 궤적의 일부라고 하면 이 작품들이야말로 지금도 1960년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미로에서 하나님께 이르는 골목으로 들어서게 하는 입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것이 나의 뻔뻔스러운 희망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이 소설들이 지금 이대로도 바로 그들의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할 것이다. 되풀이하지만, 인간의 고통의 궤적을 쫓아서만 하나님의 사랑 깊은 손길이 다가온다는 사실도 분명한 것이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해설한다는 것은 ...(후략)

* 볼드체는 내가 한 것임. -_-v

난 소속은 천주교 . 나름 유아세례 받았었고, 어렸을적부터( 아니 어렸을적에는) 성당에 매주 나갔었고, 대학교 들어간 후 2-3년에 한 두 번 갈까 말까 하다가 회사 들어와서는 맨날 지나만 다닌다. 성당신자요. 라고 당당하게 말하긴 뭐하지만, 종교는? 카톨릭이요. 라는 대답이 스스럼없이 나올정도는 된다. 가끔은 이번 주에는 가서 고백성사도 하고 미사도 참가하고 영성체도 모셔야지. ( 영성체를 한다고 하거나 성체를 모신다고 해야지, 영성체를 모신다고 하는건 번역자가 기본적 소양도 없고 어쩌고 해 놓은 리뷰를 봤었는데, 리뷰 보면서 뜨끔했다. 뭐, 우리 세계에선 영성체 모신다고도 했는데? -_-a 암튼) 라는 생각도 해보고 그러는 정도. 세상에 신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항상 지켜보고 계셔.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내 마음 속에, 혹은 컴퓨터 자판 속에, 혹은 알라딘 속에, 혹은 책 속에 있을꺼야라는 생각은 하고 있다. ( 그렇다고 다신론자냐? 묻는 바보는 없겠지)

그런 정도의 '나' 가 싫어하는 것은 좀 과하다 싶은 사람. 그리고 종교로 돈 벌어먹는 사람. 그리고 종교를 빌미로 햇소리 하는 사람 등등등.  예를 들면 쓰나미 재앙은 주님의 심판이셨소! 혹은 스님들이 엔터프라이즈 타고 다니면서 패싸움 하는거.( 진짜 싸움. 말싸움 말고) . 그런것보다는 덜 싫지만,  개인적으로 '주 예수 믿으시오' 하면서 따라다니는 사람도 싫다.  누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으시오. 그러면서 책들고 따라다녀준다면 냉큼 ' 네! 아멘!' 할텐데. 아, 그리고 성모 마리아는 우상숭배 아니야? 천주교에선 고백성사를 왜해? 하며 눈썹 치켜뜨고 묻는 사람들도 싫다. ( 눈썹 안 치켜뜨면 괜찮다.)

다시 김승옥 전집으로 돌아가서. 찝찌름한 기분의 작가의 말을 읽고 소설을 읽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재미있었다.'

그래서 다시 고민.

나머지 세권은....

혹은 생각의 방향을 바꿔서 왜 작가들이 글 쓸때 신내렸다고 하잖아? 그래. 그 '신 ' 아닐까? 붓 끝에 영감을 주는 신! 이라고 하기엔 그리스도 전도. 그러니깐. 그의 그리스도는 영감을 주는... 이라고 우기기엔 너무 비약에 오역인거겠지.

'강변부인' 만 한 권 더 사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저기.. 후략된 작가의 말에 나오는 해설 보고 산다고는 절대 말 못해.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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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2-21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단편 작가중에 최고라고 생각하는 작가에요, 저에게 김승옥씨는..고등학교때 처음으로'무진기행'을 접한후 얼마나 가슴이 뛰던지..문장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던 섬세함..그의 감각적 문체에 반해서 엄청나게 밑줄 그어가면서 읽었던 책이었지요. 그 후 몇몇 단편들을 읽어봤는데, 언제나 경탄을 금치 못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김승옥 전집은 꼭 소장하고 싶은 전집이에요. (근데 언제가 될련지, 휴..)고등학교 이후로도 1~2년에 한번씩 꼭 무진기행을 읽고 있답니다.^^

하이드 2005-02-21 0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책은 재미가 있더란말이죠. 근데, 위처럼 작가의 말에서 '하나님' '하나님' 하면 왠지 거부감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라서 말이지요. 일단 지금 1권 읽고 있는 중이니깐, 다 읽고 나서 사거나 말거나로 대충 생각하고 있는데, 귀가 파닥거리는 저는 게다가 perky님의 '최고'라는 말에 내심 다 사기로 굳히기 들어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