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프라이버시 문제로 말들이 많아서 주민회에도 주민이 모두 참가하는 건 아니니까요. 상부상조 정신이 사라지고 서로 고립되어 있다고 할까, 공동체라는 의미가 동네에서 전반적으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아무튼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마미하라는 그렇게 말하고 시무라에게 얼굴을 돌렸다.
"동물 학대와 관련된 상황은?"
(중략)
"어떤 사례가 있지?"
"우선 유기 및 방치입니다. 그리고 굶기기, 배설물 방치하기 등 양육 거부가 있습니다. 그다음은 발로 차고 때리는 폭행. 멍청이 개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언어도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학대 행위라고 보는 전문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거, 뭐랑 비슷하지 않나요?"
마미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각 항목이 어린아이에 대한 학대행위와 거의 일치한다. 인간과 동물을 함부로 연결할 생각은 없지만, 가해자의 동기나 정신의 바탕에 있는 건 비슷한지도 모른다. 아동 학대나 동물 학대나 예전부터 존재했을 텐데, 이렇게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는 데는 무엇이 어떤 형태로 영향을 미치는 건지, 혹은 미치지 않는 건지...
어제 저녁 오랜만에 찾아온 E와 함께 딘타이펑에 갔다가 ( 가격은 두 배 되고 맛은 반절이고, 서비스는 뷁인)
신세계 지하에서 '이렇게 맛있는 팥빙수를 이제야!' 팥빙수와 딸기빙수를 먹고
<이웃사람>을 봤다.
다르지만, 조금씩 이어져 있는 이야기..
신문1면을 차지하고 있을 고종석 이야기(흔한 성도 이름도 아닌데, 쩝;) 어제 만난 친한 동생이 아동성폭행이 아이들이 반항하지 못하고, 제압하기 쉬워서 그런가보라면서 말했을때, 난 좀 강력하게 다른 이야기를 했다. 아무리 힘센 여자라도 남자가 제압하기는 쉽다. 무기라도 들고 있다면 더욱 더. 아동성폭행이 더욱 심각한 것은 '아동'에게 성욕을 느낀다는 점 때문이라는거. 단순히 힘으로 제압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병자들. 인거라고.
강풀은 '이웃사람'에서 아이를 '사회 모두가, 어른이, 우리가 지켜야할 마지막 가치' 라고 했다. 영화를 보면서 울고, 웃고, 박수치며, 영화를 다 보고, 바로 또 다시 보고 싶었다.
피자가게 알바생도, 가방가게 아저씨도, 조폭도, 경비원도, 아이를 잃은 엄마도, 모두가 이웃사람이고, 모두가 아이를 지키기 위해 뛴다. 감동적이면서도 영화속의 비현실적인 피와 살보다 더 잔인한 현실이 떠올라 슬펐다.
그리고 집에 와서, 그리고 다음날인 오늘, 텐도 아라타의 <가족사냥>을 읽고 있자니, 파괴된 가족. 무관심한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들이 또 다르게 다가온다.
오늘 아침 커피를 마시면서였던가, 어제 밥을 먹으면서였던가, 집에 가면서였던가, '엄마도 공범이야' 라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옆에서 끼어들고 싶었다. '나쁜놈이 나쁜놈이지. 공범이라니 너무 가혹하잖아요.'
게임중독으로 문도 안 잠그고 세 딸을 거실에 재우고, 새벽까지 피씨방에 있었던 엄마.
미쳐 돌아가는 언론. 아이의 일기장을 단독입수라며 까발리지 않나, 엄한 사람 사진을 아동성폭행범이라며 1면에 실지 않나.
나는 방관자이고, 운명론자이고, 나만큼 중요한건 고양이밖에 없지만, 그래도 '아이'는 지키고 싶다.
나의 아이가 아니고, 너의 아이도 아니고, 우리 모두의 '아이'
세상이 아무리 팍팍하고 힘들지라도, 세상이 아무리 비참하고 구질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