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평 - 퇴짜 맞은 명저들
빌 헨더슨, 앙드레 버나드 지음, 최재봉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플로베르씨는 작가가 아니다. '

 

라는 것은 <마담 보봐리>가 나왔을 때, 르 피가로지에 실린 평이다.

 

'퇴짜 맞은 명저들' 이란 부제를 가지고 있는 <악평> 은 저자가 의도했던 것보다 더 독자에게 (그러니깐, 최소한 나란 독자에게는) 더 많이 와닿고, 이런저런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었다.

 

총 3부로 나와있는 악평 퍼레이드는 1부 - 기원전 411년 이후, 즉 고전에 관한 당시의 악평. 리뷰 제목에 쓴 '플로베르씨는 작가가 아니다.' 가 1부에 나와 있는 악평 중 한 줄이다. 그리고, 2부 - 현대 작품들에 관한 추문, 마지막으로 3부 - 가혹한 거절 편지. 로 이루어져 있다.

 

얼마나 기발하게 깠을까. 라는 심술궂은 호기심으로 이 책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말 못하겠다만, 이 책을 읽고, 악평을 사랑하는 나는 조금 착해진 기분이다.

 

저자는 이런 명저를 못 알아본 이런 위대한 사람들과 매체가 있다니, 얼마나 멍청하고, 작품을 평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그래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라고 악평에 동조하거나, 동감하지는 않더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이라고 생각이 들어버리는거다. 현대로 갈수록, 처음 이 책을 시작할 때의 불순한 동기도 채워지기는 하지만, 외려, 시간이 지나, 당대에 평가받는 고전들에 대한 악평을 볼 때, 악평과 호평에 대해 작품과 당대의 사람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가 당대에 욕을 우라지게 먹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더 더 옛날의 채털리 부인을 쓴 로렌스가  색정광으로 여겨졌던 것도 당연하지 말이다.

 

시대의 윤리와 타부를 떠나, 위대한 작가의 스타일이나 작품이 누군가에게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여겨지는 것은 모두가 다 칭송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럴법한 일이다.

 

'미들 마치는 세부사항으로 가득찬 보석함과 같다. 그러나 전체로서는 거의 아무 의미가 없다' - 헨리 제임스


<미들 마치>라는 작품에 대한 헨리 제임스의 악평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헤밍웨이에게 스스로가 다 큰 어른이라는 진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은 물론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 맥스 이스트먼

 

맥스 이스트먼이 헤밍웨이를 평가한 글은 꼭 악평인 것만 같지는 않고, 헤밍웨이에 대한 전기나 글들을 읽어본 바, 역시 공감 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헤밍웨이가 좋은 작가인 것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좀 더 옛날로 가서 제인 오스틴에 대한 당대의 평들을 보면,

 

 '오스틴의 소설을 왜 그토록 좋아하세요? 저는 그 점이 이상해요.. 저 같으면 오스틴의 소설에 나오는 신사 숙녀들과 그들의 우아하지만 폐쇄적인 집에서 같이 살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아요... 오스틴은 그저 약삭빠르고 영민할 뿐이에요.'

 

라는건 샬롯 브론테의 평이다. 왠지 샬롯 브론테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물론 이 책에서는 샬롯 브론테도 악평의 대상으로 심심찮게 등장하고, 그 악평 또한 왠지 이해할 것 같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렇다고 해서 오스틴과 샬롯 브론테가 싫어지지 않는 다는 것.

 

'엄마 말로는 오스틴은 당시 제일 예쁘고 제일 바보 같았으며 제일 가식이 많은 인물, 부나비처럼 남편감을 찾아 다니던 모습으로 기억된다는군요.' 메리 러셀 미트퍼드의 편지글에 나오는 오스틴에 대한 평이다. 이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끄덕.

 

'나는 사람들이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왜 그토록 높이 평가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보기에 오스틴 소설은 어조가 조악하고 예술적 창의성도 형편없으며 영국 사회의 빌어먹을 관습에 갇혀 있는 데다 재능이나 기지, 또는 세계에 대한 지식도 부족한데 말이다. 삶이 그토록 궁색하고 협소하게 그려진 경우는 없었다. 이 작가의 머리를 사로잡고 있는 단 하나의 문제는 ... 결혼할 수 있느냐 하는 것뿐이다... 차라리 자살이라면 더 존중할만할 것이다.'

 

이 신랄할 평은 랠프 월도 에머슨의 '일기'에 나온 오스틴에 대한 '악평'이다.

 

뭐랄까, 나는 이부분에서 '악평'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고전'에 대한 당대의 악평은 그럴법하면서도, 신선하다. '이 작가의 머리를 사로잡고 있는 단 하나의 문제는... 결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뿐이다' 라는 말에 고개 끄덕이는 독자를 설득하려면, 꽤 오래 길게 설득해야 할 것 같다.

 

맞아, 맞아, 나도 이렇게 생각했어. 라고 생각했던 것은 <캐치-22>의 악평들이다. 고전이라는, 남들이 다 좋다는 책이니, 뭔가 있겠지. 라고 생각하고, 아마 그렇게 리뷰도 썼을테지만, 꼭 '좋은 소설'이 '오래 남는 것'은 아니다. 사람도 아웃라이어. 가 있듯이, 책도 시대를 잘 타고 나야하지 않겠는가. 시대와 장소와 이야기가 딱 맞아떨어졌을 때, 그 책은 그 시대와 함께 오래오래 남는다.

 

모든 '죽기 전에 읽어야 할 1000가지 책'이 다 좋은 건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악평들을 모아 놓은 이 책은 의외로 그 기획 자체보다 더 큰 재미를 준다. 악평의 대상이 된 책들, 작가들, 악평을 내 놓은 사람들( 유명인이거나 유명 매체), 에 대해 다른 여러가지 방식으로 생각해 보게 하고, 책을 읽고, 정말 화가 나 미치겠는 사람들이 쓴 악평들에는 웃을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거세해서 영구히 가둬 놓아야 한다.'  - 산후안 카운티 레코드

에드워드 애비의 <몽키 스패너를 든 강도들>이라는 책이다. 정말 몽키 스패너를 들고 강도짓을 한 것도 아닐텐데(  이 책이 그런 이야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소설 쓴 죄로 거세 당하고 감금되어야 한다니 ^^;

 

'이 책에서 정말이지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갠저미가 스카스데일에서 태어났으며 런셀러 폴리테크닉 대학교에서 엔지니어링 학위를 받았다는 책 표지의 정보다.' - 윌리엄 프리처드

 

가장 기억에 남는 악평은 존 바스의 <연초 도매상>에 대한 뉴욕 해럴드 트리뷴의 리뷰다.

 

 

 

 

 

 

 

'....... 너무, 너무,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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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2-01-02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꼭 사봐야 할 책이로군요. 신인들의 작품을 맨 처음 읽고 평가해야 하는 편집자(?)들은 참 부담스럽겠어요. 이렇게 솔직하게;; 악평을 날렸는데 초초초 베스트/스테디셀러가 되는 걸 목도해야 한다면. ㅠ_ㅠ

하이드 2012-01-02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소장해도 좋겠다 생각했어요. 뭔가 저자 의도와 다르게 저는 재미났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