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밝힐 것... 은  

꽃집 아가씨는 나다.  

 

 

정말 신기하게도 손님이 한 명도 없었던 어제 저녁, 나는 가방 속에 챙겨온 <워킹 데드>를 꺼냈다.

스티븐 킹, 24시간, 프리즌 브레이크..를 잘 못 보는 나. 대충 어떤 걸 못 보는지 감이 잡히시려나? 

여튼, 스티븐 킹과 24시간과 프리즌 브레이크를 잘 못 보는 것과 같은 이유로 책이 도착한지 한 이틀은 박스채로 풀리지 않은 채 거실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일단 미드를 받아두자.고 마음 먹고, 받아 두었으니, 한 번 구경이나 해 볼까? 틀었다가.  

오오오오! 하면서 첫 씬 보고, 바로 끄고, 책을 가져 나온 참이었다.  

 

드라마가 재밌겠어서 책을 먼저 꺼내든거긴 하지만, 그래픽 노블에 익숙하지도 않고,(왠지 생각을 많이 해야할 것 같다. 그림을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닥 기대치 않았는데, 예상치 못한 흡입력에  

마감시간이 지나도록 가져간 1권과 2권을 다 읽고, 집으로 달려와 남은 세 권을 다 읽었다.  

이런류(?)의 책은 갈수록 자극적이고, 강도가 강해지기 마련인데, 익숙해진 독자가 지루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겠지만, 결국 너무 허무맹랑해져서 외려 재미가 없어진다. (유니트 4시즌 'ㅅ')  

알다시피, 이건 좀비 이야기이다.  

좀비물과 SF물에는 그것을 개똥이라고 하건, 소똥이라고 하건, 철학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대 놓고 아류에 자극적이기만한 쓰레기더라도, 거기에서 또 뭔가를 읽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라고.  

저자 로버트 커크먼의 말을 빌려보자면,  

" 내게 있어 최고의 좀비 영화는 유혈과 폭력이 낭자한 화면에 바보 같은 캐릭터가 나와 실없이 호들갑을 떠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훌륭한 좀비 영화는 우리가 얼마나 엉망진창인지를 보여주고, 우리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 주며...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이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까지도 보여 준다. 물론 흥건한 피와 폭력과 그 밖의 짜릿한 구경거리도 보여 주기는 하지만... 그 기저에는 늘 사회 비판과 사색이 흐르고 있다.  

(중략)  

<워킹 데드>에서는 사람들이 극단적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또 그러한 상황이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탐구하려 한다. "  

나는 '책'이란건 늘 저자와 독자가 반반씩 쓰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 책을 어떻게 읽어내냐는 읽는 독자 각각에게 달려있겠지만,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나에게는 '분명히' 와 닿는 부분이 있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릭이라는 작은 마을의 경찰관이다. 총을 쏜 적도 거의 없는 그는 탈주범과 마주하고, 총을 맞게 된다.  

다음 장면은 병원에서 깨어난 릭의 모습.   

얼마인지 모를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릭  

세상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채 인지하지 못한 채 카우보이 기분을 내며, 기름 떨어진 차를 버리고 말을 타고 아내와 아들이 갔을 거라고 짐작되는 애틀란타로 향하지만,  

 

그가 큰 도시에서 마주한건 더 커다란 아비규환의 모습이었다.  

 

  

살아 남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살아 남은 자들이 모인 캠프로 향하게 되고, 거기에서 아내와 아들을 찾게 된다.  

몇 명인가의 초라한 모임은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견뎌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좀비물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이다. 세상이 망했고, 그 와중에 살아 남은 사람들이 있고, 나쁜 놈 나오고, 치고 박고 싸우고  

익숙한 이야기.이니, 그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 캐릭터가 얼마만큼 강력하고, 디테일이 얼마나 훌륭한가. 등으로 익숙한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리라.  

매 권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렇다고 에피 위주는 아니고, 쭉 연결되는 이야기이다. ) 점점 강도가 높아지는 건 맞긴 한데, 지루하게 한 라인을 타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라인으로 이야기가 합쳐지는 식이라 식상하지 않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주인공은 릭이고, 그에게 가장 감정이입이 되기는 하지만, 어떤 캐릭터에도 백프로 공감할 수는 없다.는 점이 현실적이다.   

완벽한건 지루하다. 완벽한 주인공도 마찬가지.  

좀비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좀비'라는 녀석은 다른 어떤 무기나 특기도 없고, 느리기까지 하다. 머리를 박살내면, 죽기도 한다. 무시무시한 이빨이나 발톱도 없고, 하늘을 날라다니거나, 날아다니는 급으로 날래지 않아도, 피할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지만, 좀비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공포 중에 하나임에 분명하다. ... 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지고, 흥미 있어진 순간은 비교적 완벽하던 주인공 릭의 일탈(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후이다.  

"살아남으려면 이 세상에 적응해야 해. 내가 살짝 미친 것 같아?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건 이 세상도 마찬가지야.  

내가 리더가 되는 게 싫어? 그래, 상관없어. 부담이 없으니 난 더 좋아. 하지만 이 말은 꼭 해둬야겠어. 우리가 안전할 수만 있다면 난 무슨 짓이든 할 거야. 무슨 짓이든 다 할거야. 그러니 나랑 싸우고 싶지 ㅇ낳거든.. 내 뜻을 거스르고 싶지 않거든, 명심해 두는 게 좋아.  

하지만 가식은 이제 집어치워. 더 이상은 자신을 속이지 마.  

이게 진실이야. 이게 당신들의 삶이야. 기대 따윈 버려. 우린 지금 때를 기다리는 게 아니야. 앞으로 일어날 일도, 구조의 손길도 바라지 마! 우리가 가진 건 이게 다야! 앞으로도 영원히.  

더 잘 살고 싶거든 이곳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해.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  

" 타이리스, 우린 벌써 야만인이야. 특히 자네!  

저 죽지도 않는 괴물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는 순간.. 놈들의 얼굴에 망치를 날리는 순간.. 아니면 놈들의 목을 칠 때.  

우리 정체는 그 때 드러나! 

그리고 그게 다야. 그게 바로 본질이야. 당신들은 자신의 정체를 몰라.  

우린 저 산 송장들한테 둘러싸여 있어.  

그 속에서 살다가... 마침내 숨이 끊어지면, 저렇게 돼! 

우린 빌려온 시간을 사는 중이야.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은 모두 저놈들한테서 훔쳐온 거야!  

저 바깥에 있는 놈들을 봐. 죽으면... 우리도 저렇게 돼. 당신들은 그렇게 생각하겠지. 우린 저 산송장들한테서 목숨을 지키려고 이 담장 안에 숨어 있다고! 아직도 모르겠어? 

 

우리야말로 

산송장들이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LAYLA 2011-08-04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살려구 하는데
양장이랑 반양장이랑 뭐가 더 좋아요? @_@
세일즈 포인트 마저 둘 다 비슷해서 고민이에요 실물을 한번도 못봤거든요

하이드 2011-08-04 21:04   좋아요 0 | URL
전 양장이 좋아요. 그냥 양장, 반양장 좋아하시는 스타일로 하심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