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오단장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키타자토 산고의 이야기에 교수는 경멸을 보였고, 시인은 옛 추억을 회고했다. 그 젊은 날의 기억으로 인해 그의 삶과 죽음은 화려하게 장식되었고, 추억하기 충분한 빛깔을 얻었다.
그리고 요시미츠는 암흑 속에서 자신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곱씹었다. 불황의 여파에 힘겨워하는 생활, 집으로 돌아오라는 어머니와 거부하는 아들의 눈치 살피기가 눈앞에 닥친 최대 문제다. 각 장면은 무섭게 긴박하지만, 그 속에는 한 조각의 이야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아마도 번역본중 가장 인기 있었고, 어느 추리카페에서인가는 그 해의 미스터리로 꼽히기도 했던 <인사이트 밀>이 '너무' '재미만'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별로였다.  두 번째 번역본인 <덧없는 양들의 추억>, 단편연작집에서 갸우뚱, 재미도 있고, 스타일도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싶었다. 세번째로 읽는 <추상오단장>은 너무 매끈해서 별로였던 첫인상을 바꿀만큼 인상적인 이야기로 다가왔다.  

주인공인 요시미츠는 버블로 인해 경제가 무너지고, 그로 인해 죽은거나 다름없는 아버지, 기운 가세 때문에 역시 버블 부동산으로 폼 안나게 되버린 고서점 주인인 큰아버지 집에 얹혀 살게 된다. 일을 배울 생각도 없이 갑갑하고,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고서점을 찾아 온 한 여자. 자신의 아버지가 쓴 다섯 개의 소설을 찾아달라고 의뢰한다.  

등록금 때문에 휴학중인 대학을 다시 가고 싶었고, 큰아버지에게 더 이상 얹혀 살고 싶지 않았던 요시미츠는 한 편에 10만엔이라는 거금에 주인인 큰아버지 몰래 의뢰를 받아들인다.  

이야기는 요시미츠가 다섯 개의 단상, 짤막한 소설들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중간중간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물론이다. 액자식 구성으로 단편연작집.이라고 해도 큰 무리는 아니겠으나, 단편 연작보다 더 긴밀하게 각각의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으니, 하나의 장편이라고 해도 되겠다.  

이야기는 모두 루마니아의 어느 마을을 가다 들은 이야기인데... 인도의 어느 마을에서 보게 되었는데... 하는 식으로 이국의 어느 곳에서 있었던 짧고 강렬하고, 심술궂은 이야기들이다.  

의뢰인이 가지고 있는 것은 다섯 개 소설들의 결말 한 줄이다.  

이야기는 결정적인 순간에서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리들 스토리' 이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퍼즐의 전체 그림이 드러나면서, 반전도 있고, 반전의 반전도 있는 흡입력이 강하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이야기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으며, 플롯도 훌륭한데다가, 스타일도 적당히 화려하며, 빈틈도 많아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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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1-06-22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재미있겠어요. 이국의 어느 곳에서 있었던 짧고 강렬하고 '심술궂은' 이라니욧!!! 너무 매력적인 평이잖아요. >.<
제 머리를 '심술궂게' 꼬집어주는 이야기이길 바래요. 주문주문;;;

하이드 2011-06-26 12:27   좋아요 0 | URL
심술궂어요. ^^ 중간에 이야기들이 나와서 그런지 시마다 소지의 하늘도 감동시키는 어쩌구 생각났어요. 가볍게 읽기에 되게 재밌어요! 추천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