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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셰프 - 영화 [남극의 셰프] 원작 에세이
니시무라 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독서에는 아무 이유 없음을 포함한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남극의 셰프> 같은 책을 읽을 때, 의외로 독서의 보람을 충만하게 느낀다.
이 책이 아니면, 내가 어떻게 영하 50도가 일상이고, 영하 75도까지 내려가는 남극 중에서도 오지인 돔 기지 이야기를 접하겠는가.
일본 아저씨들 웃기게 글 쓰는걸 남몰래 좋아하는데, 이 책은 그런과이기도 하다.
제목에서 요리사 주인공을 연상하기 쉬운데, 일당백인 그 곳에서 저자인 니시무라 준이 요리사로 책 선전문구처럼 말그대로 '요리 활극'을 펼쳐보이기는 하지만, 그는 알고보면, 해상보안대.. 직원이다. ... 자꾸 까먹어서, 책 읽다가 종종 그가 해상보안대 출신임이 언급될 때마다 흠칫흠칫 놀라곤 한다.
역시나 책 읽는 동안 까먹는 것은 이들이 일본 각 분야에서 엄선된 몸짱 브레인들이라는 거;
'공식적으로는 '일본에서 어렵게 선발된 남극관측대의 돔 특수부대'이지만 돔 월동대의 정체는 '불굴의 경이로운 바보 아저씨들의 집단'이니깐.'
그러니깐, 이야기도 '불굴의 경이로운 바보 아저씨들' 의 남극 이야기.. 정도로 읽어진다구. '불굴의' , '경이로운' , '바보' , '바보 아저씨들' 중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는 독자 각각에게 맡긴다.
때는 198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설상차는 아스카기지 월동대가 가지고 가 버렸다. 남겨진 7명은 긴급 피난소에서 성스러운 밤을 보내게 되었다. (중략) 부시럭거리며 찾아낸 식료품은 제 7차 관측대가 먹다 남긴 빵과 홍차 티백, 아니, 이건 23년 전의 물건이 아닌가! 석유 풍로로 따뜻하게 데워 그럭저럭 입에 넣고 저녁을 때웠다. 술안주는 때마침 크리스마스 파티로 분위기가 무르 익은 시라세 함상에서 들려오는 "케이크하고 칠면조구이, 동 페리뇽으로 신나게 즐기고 있습니다. 보내 드릴까요?.... 자요"라고 괜한 참견을 하는 술 취한 대원들의 목소리. (중략) 23년 전의 빵을 케이크 대신에 먹은 우리 팀은, 겉으로는 웃고 속으로는 복수심을 불태우며 시라세 갑판에 내려섰다. 때투성이 몸과 펭귄 같은 냄새를 무기 삼아, 숙취로 힘들어 하는 친절한 대원들에게 정중한 인사를 하러 돌아다닌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요리 레시피 비스무리한거(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란 옛말에 지극히 충실한), 그리고, 바이러스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극한의 추위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는 이야기, 고립된 장소, 너무 추워서 펭귄도 없고, 바다표범도 없는 극극한의 장소에서 연구를 하고, 기록을 하고, 지원을 하며, 그 모든 것을 해 내는 일당백의 생활을 하는 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초어려운 일이겠지만,
저자는 약간 불량하고 유머스럽게 그들의 생활을 풀어낸다. 그 생활이 '먹는거 위주'란건 아주 당연해 보인다.
그러고보면, 나는 이 이야기의 방점을 '불굴의'로 찍고 싶다. '바보 아저씨들' 쪽도 상당히 땡기긴 하지만..
이들의 리얼 야생 서바이벌 생활기.는 그 스케일이며 그 장소의 스케일이며, 그 곳에서 1년 넘는 시간을 보내는 야생의 아저씨들의 스케일이며 '불굴' 이란 말이 딱 맞는다.
땀이 삐질 나기 시작하는 여름의 초입, 영하 75도의 불굴의 웃기는 이야기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