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의 전쟁 이스케이프 Escape 3
존 카첸바크 지음, 권도희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정말 재미있다.  

정말 재미있다. 책은 700페이지 가까이 되고, 글자도 깨알같은 만만치 않은 분량이고, 표지까지 우중충하여, 읽을 생각이 안 든다는건 알겠는데, 일단 읽기 시작하면, 오래지 않아 책에 쑥 - 빠져들게 될꺼다. 두툼한 책일수록 한 일이백페이지 읽어야 재미있는 경우도 많은데, 그때까지만 참으세요! 라고 나는 말할테고, 하지만, 이 책은 읽는 거의 즉시 재미있어서 손에서 놓기 힘들다.  

재미있고, 감동도 있다.

나는 카첸바크의 작품을 <어느 미친사내의 고백>부터 읽었는데(이 책도 정말 재미있다!) 카첸바크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건 <하트의 전쟁>이라고 한다. 브루스 윌리스 주인공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고 하니, 영화를 먼저 본 사람들도 있겠다.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중간에 지루함이라곤 느낄 수 없어서 영화가 책만큼 재미있을 꺼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긴 잡설은 여기서 접고, 책 이야기를 하자면,  

하트의 전쟁이라는 제목의 하트는 주인공 이름이다. 토마스 하트
별 보기를 좋아하는 항법사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 그는 하버드 로스쿨에 재학중이었고, 별보기를 좋아하고, 눈이 좋다는 이유로 공군의 항법사로 일하게 된다.  

그에게는 두가지 아픔이 있다. 하나는 그가 항법사로 일하며 동료들을 잃고 혼자 살아남은 것이다. 그는 24시간동안 바다에 떠 있다 구출되어 독일군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이야기는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책 뒷면에 보면 '숨막히는 법정드라마' 라고 되어 있다. 포로수용소에서 무슨? 싶었는데,  

좀 더 이야기해보면, 시간이 가장 큰 적인 포로수용소에서 하트는 장난반 진담반으로 구호물품에 법학 서적들을 적고, YMCA를 통해 법학 서적들을 받아 그걸 공부하게 된다.  

이 스토리는, 그리고 이 스토리를 포함한 수용소생활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을 카첸바크는 법무부장관까지 지냈던, 포로수용소생활의 이야기를 카첸바크가 어렸을적부터 귀에 박히게 해주었던 아버지에게 빚지고 있다. 아, 이 이야기는 처음 알았다. 그런 이유로 카첸바크는 다른 모든 작품도 소중하지만, 이 작품이 특히 소중하고, 아버지에게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이야기속으로 돌아가서 토머스 하트는 옆 수용소의 영국군 고위장교이자 명변호사였던 필립과 캐나다 경찰이었던 휴와 함께 유명한 사례들의 모의재판을 여는 낙으로 시간이 멈춘 수용소의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매일매일이 똑같고, 어쩌면 그것이 독일군보다 더 큰 적이었을 크리기들(포로들)에게 새로운 일이 일어난다.
그 시작은 흑인 조종사 링컨 스콧의 입소였다.  남부 젊은이들, 북부 젊은이들이 모인 군대포로 수용소에서 흑인의 등장은 남부출신 포로들의 증오를 일으킨다. 그 중에서도 수용소 내 백만장자나 다름없는 영악한 장사꾼 빈센트 베드포드에겐 더욱 더. 

적군인 독일군보다 전우이자 같은 미국인인 스콧에 대한 증오는 수용소의 기류를 심상치않게 한다.  

그 와중에 토미는 스콧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스콧은 한마리 우아하고 고독하며 위험한 야생동물처럼 벽을 쌓고 주변의 접근을 차단한다.  

장사꾼 빈센트가 어느날 밤 살해당한다. 모든 증거가 스콧을 가리키고 있다.

군대포로수용소의 이야기는 그간 읽었던 수용소 이야기들과 좀 다르다. 그 디테일이 훌륭하게 살아 있어 중간중간 묘하게 감동하게 되는데, 각각의 에피소드같은 이야기들은 모두 다음 이야기의 복선이다. 막 소름 끼친다. 카첸바크의 책을 두 권 읽어봤을 뿐이지만 (둘 다 무지 두껍다;) 심리묘사에 능하다고 알고 있었다. 보통 능한거 아니고, 아주아주 능하다.  

이 책에서 치밀한 플롯과 어느 하나 쓸데없는 문장이나 이야기는 아무리 사소한거라도 찾을 수 없는 이 완벽함에, 게다가 재미까지 있고! 정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여튼, 군대포로수용소에선 계급과 전쟁포로에 관한 제네바협약에 따라 규칙이 정해지는데,
사회에 비해 너무 많은 융통성을 보이긴 하지만, 스콧에 대한 법정이 세워지고, 변호인측에 토미 하트가 지정된다.  

소극적이었던 토미 (자잘한 인물 묘사와 사건들이 정말 뒤에 가면 다 복선이다. 하룻밤에 단숨에 읽어버리긴 했지만, 복선 음미하며 다시 읽고 싶다.) 가 스콧을 대변하며, 스콧의 결백을 확신하고, 영국 최고의 변호사였던 필립의 지휘아래 우직한 전직 캐나다 경찰 휴와 함께 스콧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보통의 법정드라마가 아니다. '포로수용소'내의 법정드라마다.

이 안에는 서로가 적인 연합군 포로들과 독일군이 공존한다.
상대편에게 부상을 당해 팔을 잃고, 가족들이 죽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서로를 증오할 수밖에 없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명령에 따라 죽이고, 죽임 당한 이들의 모임이다.  

이 안에서도 세세하게 나누어 진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미국인들 사이의 인종차별자와 그렇지 않은자들간의 대립.
온 세상이 적이어서, 늘 누구보다 힘든 삶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던 스콧은 이 책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로 묘사된다.
흑인 조종사의 이야기(실제로 2차세계대전 당시의 기적같은 이야기들) 들도 감동적이다. 스콧에 필적할만한 뛰어난 인물로 독일군 게슈타포의 위장인 키써 하인리히가 나오는데, 이 소름끼치는 인간은 광신으로 뛰어나고, 스콧은 성심과 진실성으로 뛰어나다고 토미는 생각한다.  

포로수용소 안, 인종차별이 난무하는, 군인들, 군인포로들 간의 법정드라마는 기대보다 훨씬 긴박했고,
그 과정에서 적군과 아군, 흑과 백의 세계가 회색의 세계로 변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전쟁 외에도 그곳에서 그들은 누구나 각기 자신만의 전쟁을 하고 있다.
그 전쟁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을지 모른다.
그 과정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들도 하나 둘 생기게 된다.
전쟁 중에는 모두가 살인자이다.   

작가는 이 모든 상처들을 보여준 다음에,
아들에게 읽어주기 위해 썼다는 케네스 그레이엄의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에 나오는 글귀로
그들의 상처를 달래준다.   

토미는 그 책에서 밑줄을 그어놓은, 색이 바랜 두 단락을 발견했다. 마치 아이가 끊임없이 되풀이해 읽은 것처럼 그 부분이 닳아 있었다. 첫 번째는 '새벽녘의 피리 부는 목신' 이라는 제목의 장에 있었다. '친절한 목신은 도움을 주려는 그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마지막으로 최고의 선물을 주었다. 그 선물은 바로 망각이었다. 무시무시한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 점점 커져 환희와 기쁨을 가리는 일이 없도록, 잊히지 않는 기억이 어린 동물들의 앞날을 망치지 않고, 계속해서 예전과 마찬가지로 행복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 수 있도록 어려움을 이겨내게 해주었다...'  

용기를 잃지말고, 앞으로 나아가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얻게 되는 치명적인 상처들에 죽은 인생을 살지 말고,
친절한 목신이 주는 최고의 선물을 받아들여 행복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며 살 수 있도록..  

이 책에는 위에 길게 이야기한 것 외에도 장점들이 꽤 많다. 다른 어떤 장점들을 찾는 것은 각각의 독자의 몫이겠지만,
흔치 않게 재미있고, 감동적인 책이라는 것은 꼭 얘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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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tles 2011-03-17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아악~~볼만한 미스테리가 없어 하던 참에 장바구니에 담아야징...언노운 보셨어요..?아~~그정도는 이젠 밋밋하다는..재미있는 스릴러물 좀 추천 해주세요...

하이드 2011-03-17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재밌어요! 언노운 아직 안 봤어요. 볼 예정이긴 한데요 ^^ 하트의 전쟁이 너무 재미있었어서, 근래 별로 추천할께 없네요; 시마다 소지 '기발한 발상이 하늘을 움직인다'가 재미나긴 했는데, 취향을 좀 타긴 할 것 같아요. 샤바케 4권은 보셨나요? 지금까지 샤바케중 가장 귀여워요! 밀레니엄 2탄은 새로 나오는거니 보셨는지 모르겠고, 아더왕 연대기 (랜덤에서 나온)가 무지 무지 재미나다는 얘기를 들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 아더왕 무드라면 (가끔 이런 영웅물 읽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이 연대기도 추천.

Apple 2011-03-18 0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이것도 봐야하나요?이런!!!!ㅠ ㅠ

하이드 2011-03-18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력 추천!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