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Chinese new year)가 아니였으면, 구글에 나왔을지도 모르는데..  여튼, 1882년 2월 2일에 태어난 제임스 조이스 
제임스 조이스, 제임스 조이스, 하지만, 난 왜 그런지 아직 모릅니다만.  

하루 지났지만, 생일맞이 서핑해보며, 별로 재미 없을 것 같고, 다들 재미 없다고 하면서 뭔가 자기들끼리 특별한 걸 나누고 있는 것 같아서, 나도 한 번 읽어볼랍니다. 하며, 집에 있는 율리시스를 꺼내 봅니다. (꺼내만 봅니다. 원서네요. ) 보관함에 담아봅니다. 담아만 봅니다. 보관함에 담는게 독서의 반.이라는 걸 제임스 조이스씨는 아시려나요? 
  

 

 

 

1882년 아일랜드 더블린의 중심에서 남쪽으로 약 4Km 떨어진 라스가(Rathgar)의 브라이턴 서부 스퀘어 41번지에서 아버지 존 스태니스라우스 조이스(John Stanislaus Joyce)와 어머니 매리 제인 머래이(Mary Jane Murray) 사이에서 첫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정치에 관심이 높았으나 직업적으로 거의 사회 밑바닥을 전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어머니 매리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제임스를 포함하여 10명의 자녀들을 낳아 가톨릭 신앙에 따라 키우고자 노력하였다고 전한다.

벨비디어 칼리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성직에 입문하기를 권유받았으나 예술가의 길을 선택, 유니버시티 칼리지(더블린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대학 시절부터 창작을 시작하여 시집 <실내악>,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 장편소설 <율리시스>, <피네간의 경야>, 희곡 <망명> 등을 냈다.

1931년에는 노라 바너클과 정식으로 결혼했다.성인이 되어서 대부분의 삶을 아일랜드 밖에서 보냈지만, 그의 정신적 가상적 세계는 그의 고향인 더블린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더블린은 그의 소설의 주제와 설정의 많은 부분을 제공해 주었다.

1941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 <율리시스>의 후속작인 <피네간의 경야>는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더블린 사람들>에서는 20세기 초의 더블린 사람들의 냉소적이고 우울한 모습과 당시의 각박했던 사회상을 그려냈다.  

 
알라딘 저자소개中

 

 

기타도 치고 ..  

 

멋진 동상 같은 사진도 찍히고, .. 여자랑  

 

지적인 것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 근데, 몬로씨 쇄정보 보는걸까요?  책 뒷껍데기를 잡고 있으시네)  

 

타임지 모델도 하신 제임스 조이스씨  

 

 

 

 

 

페이퍼 쓰다가 자버렸는데, 올라가 버렸고, 나는 지금 그걸 뒤늦게 깨달았을 뿐이고 'ㅅ'  

앤 패디먼의 아버지인 클리프턴 패디먼이 <평생독서계획>에 써 놓은 율리시즈에 대한 꼭지를 덧붙인다.  

 

 

 

 

<율리시스>는 침투하기가 불가능한 소설처럼 보인다. 이 높은 산은 단숨에 걸어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올라갈 수는 있다. 이 산의 정상에 오르면 아주 풍요로운 광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중략)  

1. 이 작품은 <신곡> 이래 가장 완벽하게 조직된 작품이다.
2. 20세기에 발표된 작품들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소설이다. 그 영향력은 주로 다른 작가들에게 미친 것이므로 간접적이다.
3. 영어로 된 가장 독창적이고 상상력 풍부한 작품들 중 하나다. 문학의 많은 길을 새롭게 개척했다.
4. 약간의 의견 불일치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인 견해로서, 이 작품은 "퇴폐적"이거나 "부도덕"하거나 "비관적"이지 않다. <평생 독서 계획>에 포함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강력한 정신이 포착한 인생의 비전을 제시한다. 그 정신은 부분적이거나, 감상저깅거나, 자기 변명적인 것은 일체 배격한다.
5. 그 모태가 되는 <오디세이아>와는 다르게, 이 책은 읽으면 알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곡들이 오래듣고 연구할수록 그 풍부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듯이, 오로지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만 그 비밀스러운 뜻을 드러낸다.  

여기까지의 다섯가지 대전제를 말하고, 세 가지 권장사항이 있다.  

1.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먼저 읽도록 하라. 이 작품은 <율리시스>에 비해 한결 읽기가 쉽다. 이 작품을 읽으면 조이스의 분신인 스티븐 디덜러스를 알게 되고 두 소설의 무대가 되는 더블린에 대해 알게 된다.
2. <율리시스>의 경우 먼저 훌륭한 주석서를 읽어라. 짧은 것으로는 에드먼드 윌슨의 평론이 훌륭하고 단행본으로는 스튜어트 길버트와 앤서니 버제스의 저작을 권한다.
3. 주석서를 읽고 나서도 <율리시스>는 읽기가 쉽지 않다. 모든 문장, 생략된 문장, 미세한 의미, 암유, 혹은 앞에 나온 내용에 대한 간접적 언급 등을 모두 이해하려고 들지 말라. 읽을 수 있는 데까지 읽어라. 그런 다음 책을 내려놓았다가 1년 뒤에 다시 시작하라.  

그리고 나서는 조이스의 의도를 이야기해 주고, 이렇게 마무리 한다.  

<율리시스>를 읽으려고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모험이다. 또 독자에게 큰 소득을 안겨줄 것이다. 라고.   

 

 

 

 

 

 

 

 

 

하이드 버전 권장사항 덧붙인다.
안 읽힐때면 율리시즈를 읽는 마릴린 먼로를 떠올려라. 리딩 이즈 섹시! yeh~  

또 덧붙인다. 위의 사진에 대해서
위의 사진은 마릴린 먼로가 촬영 중 틈틈이 율리시즈를 읽는 것이 찍힌 것으로 어떤 포즈 없이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라 더욱 아름답다. 는 평이다. 마릴린 먼로는 '율리시즈'는 읽기 쉽지 않아서, 틈틈히 조금씩 읽을 뿐이지만, 마릴린 먼로는 이 책의 부분들을 큰소리로 소리 내어 읽는 것을 좋아한다. 고 말했다고 한다.  

위에 올려 놓은 영문판 중 첫번째의 초록 표지가 유명하고, (율리시즈 하면 떠오르는 표지)
클리프턴 패디먼이 추천하는 버전은 중간의 랜덤에서 나온 빈티지북스 버전이다. (1986)
마지막 버전은 표지가 예뻐서 스크랩해두었던 <율리시스> 'ㅅ'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11-02-04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로 사진 좋아요. 약간 입을 벌리고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참 아름답네요. (제가 율리시즈를 읽고 있는 모습과 참 비교되는 듯. 아마도 인상 잔뜩 쓰고 마구 괴로워서 몸을 비틀고 있었던 듯 한데 말이죠. 킁 -_-)

그나저나 페디먼 선생님 말씀 중 읽으려고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모험이다. 라는 대목 참 감사하네요. 그치만 일년 후 다시 시작하라는 말씀에는 그,글쎄요. 저는 한 번으로 만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