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크리스마스 때 웃기고 씁쓸한 마음으로 스크랩 해두었던 동영상을 풀 기회가 드디어 생겼다.
웃겼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는데, 비교할 만한 이야기거리가 생겼기 때문에 기쁘게 풀겠다. 이 꼬맹이 녀석  

동영상 올리기 전에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는지, 무슨 선물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받기 싫은 선물 1위가 꽃다발, 2위가 책, CD 등이라는 기사가 뜬 적 있다.  

헉; '꽃하는 책벌레'인 나에게 이 무슨 개똥같은 리서치란 말인가.  

받기 싫은 꽃다발과 받기 싫은 책, CD 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짐작이 안 가는 바는 아니다. 
저기.. 돈을 쓰거나 머리를 쓰세요. 라고 한 명 한 명 붙잡고 말해주고 싶은 심정.. 이었달까.  

여튼, 우리나라에서 저런 기사, 놀랍지 않다. 왠지 우리나라좋은나라 답다. 라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마침 발견한 동영상

 

좀 많이 귀엽긴 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크리스마스에 책이라고?! ( 막 목소리도 갈라짐)
크리스마스에 책이라고?!
이게 뭔 난리야!  
난 책을 증오해에에에에에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서점에서 읽은 책의 머릿말을 보고, 위의 동영상이 함께 떠올랐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어린이를 위한 <어른 선생 Mr Men>  시리즈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중략)
친척분이 내게 로저 하그리브스의 이야기책 한 권을 선사한 뒤로는 내가 그 시리즈에서 단 한 권도 빠짐없이 완질을 갖출 때까지 휴일, 주말 나들이, 토요일 장보기가 매번 애오라지 서점 순례로 바뀌어 버렸다는 것이다. 

<좌충우돌 선생 Mr. Bump>을 샀으면 <참견 선생Mr Nosey> 이 필요했고, <간지럼 선생Mr Tickle>은 <수다 선생Mr Chatterbox>이 없으면 외로웠으니까. (중략)  

내가 열네 살이 되는 성탄절에 <셰익스피어 전집(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인쇄한 챈슬러 출판사 1982년 발행본)과 워즈워스 시선집 (W.E. 윌리엄스가 편집한 펭귄 출판사 1985년 발행본)의 포장을 푸는 것을 지켜보시는 우리 부모님의 마음은 초조함과 기대감에 싸여 있었음에 틀림없다. 부모님들은 대문자 L로 쓴 문학Literature은 워낙 범위가 넓어 아들의 심리적 고착이 풀려 버리기에 충분할 거라는 희망을 품고 계시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문학은 내 열정을 새로운 고지대로 향하도록 내몰았다. 온몸을 쑤시는 좀은 고전 그리스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마침내 손에 만져지는 뾰루지로 돋아나기에 이르렀다. 주말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을 몇 달 모으고 배를 곯며 점심 값을 아껴 모은 펭귄 판 고전 시리즈의 그리스 극작품들에 흠뻑 잠겼다. 두 권짜리 아이스퀼로스, 두 권짜리 소포클레스, 세 권짜리 아리스토파네스, 네 권짜리 에우리피데스, 단권짜리 메난드로스. 잘 정돈된 내 독서 체계에 가해진 첫 충격은 내가 그 날렵한 책표지들을 떠들춰 들어가는 말을 죽 훑어보기 시작할 때 닥쳐왔다.

나는 그리스 극작품을 전부 구입했다고 속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데, 머리말과 주해에서는 음울하게도 전혀 다른 얘기가 울려나왔다. 아이스퀼로스는 내가 극 일곱 편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여든 편을 쌌다는 것이고, 소포클레스의 극은 달랑 두 권이 아니라 서른세 권은 있었다는...   

두 번째로 얻은 더욱 쓰라린 깨달음은 아리스토파네스 극 <테스모포리아 축제의 여인네>에 달아 놓은 61번 주석을 읽는 중에 닥쳐 왔다.   

"아가톤은 당대 최고의 평판을 누린 비극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인데, 이 극을 썼을 때 마흔한 살이었다. 그의 작품들 중 단 한 편도 현존하지 않는다." 단 한 편도? 합창부 하나도, 대사 한마디도, 시행의 반절도? 도무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 아닌가.

이는 내 나이 열다섯에 바로잡아야 되겠다고 작심하게 된 상황이었다.  

스튜어트 켈리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머릿말 中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좀 더 하게 되겠지만, 어쨌든 이런 말도 안 되는 책을 쓴 저자의 어린시절 답다. 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나도 생일이나 크리스마스때면,  최고의 선물은 백화점 6층에 있던 서점에서 책을 한 권, 혹은 두 권 고르고, 당시에 처음으로 생길랑 말랑 했던 패스트푸드 점에서 프렌치 프라이를 사 먹는 것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나의 어린시절에, 그리고 지금도, 책은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이고, 최고의 선물이다.   

물론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다만, 책이 얼마나 좋은지 많이들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다.

책을 한자도 안 읽는 누구에게라도, 책이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메슥거리는 사람에게라도
재미있고, 꼭 맞는 그런 책이 세상 어딘가에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나 할까.  

오랜만에 위의 동영상을 보는데, 크리스마스 선물로 책 받고 학 띠는 꼬마 마이클의 일년 후 동영상이 업데이트 되어 있다.  

 

 

오, 꼬맹이, 한 살 더 먹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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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1-01-30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후배 딸아이에게 크리스마스에 팝업북을 선물했어요. (오즈의 마법사) 제법 비싸기도 했고 저도 너무 예뻐했던 책이라 분명히 좋아할 거라고 믿었는데 말이죠. -_-; 그 딸아이에게 가기도 전 후배의 말이 너무 충격이었어요. "아이들에게 최고진상어른이 크리스마스에 책 선물하는 사람이라던데요." 농담이긴 했지만 진담이기도 한 말이라, 바로 의기소침. 책이라면 좋아서 마구 흥분하는 건 알라딘 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더라구요. ㅠ_ㅠ;

저 동영상 속 꼬마, 잘 컸군요. ㅋㅋ

하이드 2011-01-30 23:33   좋아요 0 | URL
아니, 무슨 그런 기분나쁜 농담을 ㅜㅜ 그럼 아이들이 좋아하는 "현금"이나 "게임기"라도 주길 바랬던걸까요?

아이들이 제일 먼저 보고 배우는 건 함께 사는 어른들에게서겠죠.
그러니 알라딘의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는 건 당연해요. 알라딘의 아이들, 복받은겨. 새삼 이야기하고 싶은 심정 ^^




Kitty 2011-01-31 01:36   좋아요 0 | URL
아 진짜 너무한 듯 ㅠㅠ 전 조카들한테 책 잘사주는데 진상어른? ㅠㅠㅠㅠㅠㅠ
진짜 책이라면 좋아서 흥분하는건 알라딘 나라뿐인거 같아요 흑흑

2011-01-30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30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