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봉제인형 도시의 살생부 사건
팀 데이비스 지음, 정아름 옮김 / 아고라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이라는 리뷰 제목의 테디베어는 '봉제인형'으로 바꾸는 것이 맞다.
팀 데이비스, 스웨덴 출신의 남성작가로만 알려져 있는 베일에 싸인 작가. 이 작품이 데뷔작으로 악, 선, 믿음, 정의 이렇게 네가지 이야기를 '몰리산 4부작'으로 할 예정이라고 한다.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아니라, 등장'봉제'인형들이라는 것은 잠깐 제쳐두고,
이야기만으로 보자면, 이것은 하드보일드. 작가가 스웨덴 출신이라서 그런건 아니지만, 스웨덴 출신 미스터리 작가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익숙해진 '미국적' 혹은 '일본적' 좀 더 써서, '영국적', 혹은 '프랑스적'이거나 '독일적' 인 것들과는 다른 독특함이 있다. 독특하면서 재미도 있어서, 생소한 분위기더라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것이 번역된 스웨덴 미스터리를 보는 내 느낌.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있는데, 남편이 어두운 과거를 지니고 있다. 그 어두운 과거 속에서 튀어나온 악몽, 과거의 보스가 남자를 위협하며, 도시에 전설처럼 떠도는 '살생부'에 자신의 이름이 있다며, 그 이름을 지우지 않으면, 부인을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다. 광고회사의 임원이자 명문가의 아들이자 여러 위원회에 이름을 이루고 있는 중년의 이 남자는 과거 어두운 시절을 함께 했던 팀을 모아 과연 존재하는지도 확실치 않은 '살생부'를 찾아 보스의 이름을 지우는 불가능한 미션을 이루고자 한다.
반전도 있고, 반전에 반전도 있고,
이 작품의 주제인 '악' 에 관한 등장인..형들의 독백과 에피소드들은 어설프거나 덜익었지 싶지만, 읽는데 거슬릴 정도는 아니고, 평균의 '악'이 주제인 미스터리들보다 훨씬 낫다고도 할 수 있다.
이야기만으로도 그럭저럭 흥미로운데,
이 모든 이야기를 상상하면서 덧씌워야할 어마어마한 장치가 추가된다.
이것은 '인간' 이 아닌, '봉제인형' (구체관절도 아니고, 피규어도 아니고, 브릭도 아니고, 레고도 아닌!) 의 이야기인 것.
봉제인형의 세계관, 인형관에 독자는 눈을 맞추어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기 전에 꼭 품고 자는 곰인형..은
중년의 하드보일드 탐정곰이 된다. 그 중년곰, 에릭이 사랑하는 부인 엠마는 토끼인형이다.
에릭은 인형세계에서도 흔치 않은 쌍둥이로, 쌍둥이 동생곰인 테디와 형제이고,
엄마는 이 도시의 권력자중 하나인 환경부 장관 (환경부는 인형의 생사를 쥐고 있는 가장 강력한 부서) 인 코뿔소 인형 에다. 아빠는 교장선생님인 복서(무섭게 생긴 투견) 인형이다.
가족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는가?
에릭이 소환한 이전의 팀메이트들은 이렇다.
커다랗고 난폭한 까마귀 인형 톰톰, 비열하나 냉정하고, 지적인 뱀인형 마렉, 사디스트 남창 가젤 인형 샘
위에 이야기한 최강나쁜놈 보스는 비둘기 인형이고, 어둠의 세계인 쓰레기장을 통치하는 쓰레기하치장의 여왕인 루스는 쥐인형이다. 태어날때부터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기형 쥐
이야기 자체가 단순한 것도 아니고, 끝까지 복잡한 편인데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는 정도의 복잡함이다)
어린시절 함께 했던 봉제인형들의 캐릭터를 새로운 인형관으로 매치시켜가며 읽어야 하는 기이함이 더해진다.
게다가 작가가 묘사하는 인형세계의 몇몇 장면들은 굉장히 인상적이고, 글로 읽으면서도 확- 상상이 되어 버린다.
예를 들면, 쓰레기 하치장의 여왕 루스에 대한 묘사가 무지 생생한데, 그녀가 머무르는 곳, 즉, 왕궁의 이미지는 거대한 쓰레기들로 쌓여 있고, 꼭대기에 루스가 맘에 들어하는 4m 가량의 트리가 있는데, 수백개의 전구가 멈추지 않고, 깜박거리고 있다던가.. 책 속에 유난히 많이 나오는, 아니, 내 눈에 유난히 밟히는 분홍의 이미지들. 얼척없이 잔인한 장면들도 꽤 많이 나오는데, 뭔가, 인형계와 인간계 반반 걸친 마음으로 책을 읽다보니, 당황스럽고, 어찌 리액션해야할지 모르는 그런 장면들.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인상적이었던 하이에나 인형.
각각의 인형에 대한 캐릭터가 대단히 생생하여 등장인형들이 많지만, 기억에 착 달라붙는다.
간혹 책카피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등의 카피를 보고 읽어도 그렇게 다르지도 않더만, 이 책은 여러의미에서 지금까지 읽어왔던 소설, 미스터리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책이다.
이건 아마 독자 각자의 상상력에 따라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너무' 상상해버린 독자 중 하나.
결말은 있지만, 뒷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하다.
남은 삼부작에서 이 책에 나왔던 등장인물들이 또 나와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