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루헤인의 <운명의 날 The Given Day>를 읽고 있는 중.
그러니깐, 이 책하고, <평생독서계획>하고, <YES is More>하고, <봉제인형 살인사건>하고, 에 또..

여튼, 상권을 막 덮고 나서, 지루하게 시작했던 이 책에서, 처음으로 어이쿠 했던 문장을 적고 넘어가야겠다.  

이 책의 배경은 1919년 미국
첫 챕터에는 베이브 루스가 월드 시리즈를 하러 시카고 컵스, 보스톤 레드 삭스 선수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있었던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이 보스톤 경찰인 대니 커글란이고, 당시 있었던 굵직굵직한 사건 중에 '보스톤 경찰 파업'을 가장 크게 다루고 있긴 한데, 배경이 '보스톤'이다보니, 필연적으로 보스톤 레드 삭스 이야기도 나온다.  

베이브 루스도 첫장면에 길게 등장한 거 말고도 또 등장해서 존 리드와 유진 오닐과 술집에서 싸우기도 하고, 뭐 그런 장면들.
야구선수 파업 이야기도 나오고. 이 때, 1919년 구단주 해리 어쩌구가 선수들 마구 팔아 치우고, 베이브 루스까지 팔아치운 후 ... 그 ... 밤비노의 저주로 2004년까지 우승 못 했던.. 그 시발점이 되던 해가 (아....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친다. )  바로 이 해.  

이야기의 주가 되는 보스톤 경찰 파업은 이제 이야기의 반정도 온 정도라 이제 막 슬슬 피치를 올리고 있고,
상권에서 지나간 굵직한 역사 속의 사건은 '스페인 독감'이다. 1차대전 후 귀환한 병사들에 의해 퍼진 독감은  

1918 - 1920년 전세계적으로 500만에서 5000만의 생명을 앗아갔고, 50만명의 미국인이 죽었으며, 한국에서도 14만 이상이 죽었다고 한다.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인물들이 스치듯 지나가는데,
스페인 독감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나오고, 그 중 하나로 장의업자들 이야기가 나온다.  

그 주가 다 가기 전, 장의업자들이 관을 지킬 경비들을 고용했다. 경비들은 계층도 다양했다. 사설 경호업체에서 온 자들은 그나마 목욕하고 면도하는 법을 아는 자들이었지만 다른 친구들은 퇴물 축구 선수나 복서처럼 보였다. 게다가 노스엔드에서 온 자들 중에는 흑수단 졸개들까지 끼어 있었다. 어쨌든 모두 샷건이나 라이플을 소지했다. 목수들 중에도 환자가 있었는데, 모두 건강하다 해도 밀려드는 관 제작 요구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캠프 데븐스에서 하루 동안 독감으로 죽은 병사가 모두 63명이나 되었다. 질병은 노스엔드와 사우스 보스턴의 셋집, 그리고 스콜레이 광장의 하숙집들을 파고들었고 퀸시와 웨이머스의 조선소를 쑥밭으로 만들어놓은 후 다시 선로를 따라 이동했다. 급기야 신문들이 하트포드와 뉴욕시의 발병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전염병은 맑은 날씨를 타고 주말쯤엔 필라델피아에 도달했다.  

나는 이 문장이 참 기가 막힌 것 같다. 장의업자들과 관 지키는 경비 이야기를 건조하게 풀어나가며 죽음과 불행의 향을 풀풀 풍기다가, 그 죽음의 사신인 '전염병'이 '맑은 날씨'에 '주말'에 필라델피아까지 퍼졌다니, 인간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떼죽음과 같은 하찮은 사정따위는 상관하지 않는 맑은 날씨의 자연과 인간의 불행과의 괴리감이 뺨을 때리듯 선연하게 느껴진 문장이었다.
 
데니스 루헤인의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와 주인공과 문체인데, 아무래도 역사소설이니만큼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그 스케일과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지극히 현실적이다. 소설에서 (그것이 아무리 역사소설이라도) 소설같지 않은 드러운 현실같은 이야기를 접하게 될 때의 그 쌔- 한 느낌.  

이 책을 읽으면서 언제부터인가, 볼티모어 경찰이 주인공인 경찰수사물 미드 '와이어'가 생각났다. 주인공 대니도 완전 오버랩되고.  

열악한 환경, 그리고 경찰물이어서만이 아니라, 그 현실적인 냉혹한 터치가 닮아 있다.

어느 정도냐면, 드라마 '와이어'를 보고 나면, 내가 그 좋아하는 'CSI', '크리미널 마인드', 'NCIS'를 한동안 못 보는 후유증이 있다. 시시하고, 너무 드라마 같아서.  

그런 묵직한 박진감이 있다. 멜랑꼴리하고, 하드보일드 하지만, 대단히 생생한 1919년 보스톤,
보스톤 경찰 대니  

초반의 지루함을 극복하면, 명품 역사소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많은 인상적인 인물과 이야기와 문장들이 있지만,  

'전염병은 맑은 날씨를 타고, 주말쯤엔 필라델피아에 도달했다' 는 문장은 오래오래 마음 한켠에 붙어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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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0-10-06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네요. (한숨;)
제가 '바라만 보고 있는'-_- 운명의 날은 책의 외관도 참 좋은 것 같아요. 두툼하고 믿음직스럽고.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움에 가끔 꺼내서 쓰다듬어보고 다시 꽂아놓는답니다.(이런 말은 딴 데 가서는 못하죠.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는 ^^;)
그나저나, 마구, 열심히, 전투적으로 독서하시는 하이드님을 보니 마음 한켠이 안스러워진...;;;;;;;;;;;

그나저나(어흠;) 하이드님 덕분에 챙겨봐야 할 미드도 생겼네요. 크리미널 마인드가 시시해지는 드라마라니!!! ^^

하이드 2010-10-07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책쓰다듬기 .. 중증의 증상이지요. 책앓이~
그나저나 달밤님도 책 진짜 많이 사시네요. 제가 페이퍼 올리는 책, 거진 다 가지고 계시거나, 구비하실 예정이라는.

저요.. 네... 책 속으로 마구 빠져들 수 있어 다행입니다.

아직 한 가지 좋은 일이 남았어요. 로감독님 재계약 하면, 좋은 일이고, 그렇지 않으면, 전 또 무섭게 책으로 빠져들지도 ..

저도 '와이어' 알라딘에서 어떤 분이 인생 최고의 드라마라며 추천해 주셨는데요, 역시 처음에는 좀 지루하고, 지금까지 보아오던 수사물과 다를 수 있는데, 2시즌까지는 정말 보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요. 1시즌은 한 번 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돌려 봤을 정도 ^^ 3시즌은 봤는지 안 봤는지 아리까리 하지만, 여튼, 그래요

Beetles 2010-10-09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전 구입보단 도서관 대여를..^^;; 아이들 책때문에 제책을 살 수 가 없어요...거기다 남편의 엘피,씨디,와인,카메라..기타등등..ㅠ.ㅠ 며칠전에 알라딘 장바구니에 책을 담았는데 바흐전집이 떡~~하니 들어있길래 제가 그거 사면 그 열배의금액의 물건으로 갚아줄테다 해서 겨우 막았어요...ㅠ.ㅠ

dalcom34 2011-02-15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e wire 투섬쓰업!with brotherhood
2005년부터 죽 보아왓는데,, 조,꼬마들,,,맥널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