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중 카테고리를 창고에 넣고, '어젯밤에 읽은 책'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어젯밤부터 기분이 좋다.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어젯밤 기분 좋았던 걸 기념하기 위한 뉴 카테고리다.
'어젯밤에 읽은 책'  리뷰 보단 잡담식 페이퍼가 되지 싶다. 이때까지의 '책읽는중' 같은 느낌. 리뷰말고 페이퍼. 이런 간지

 

 히가시노 게이고 <다잉 아이>
신간 나오고 바로 산 것 같은데, 산지도 모르고 있다가, 어제 다른 책 찾다가 이 책이 나와서 읽기 시작.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스럽지 않다. 잘 읽히는 거 빼고. 그래서 재미있었다고 해야할까?  

중간에 이야기가 완전 안드로로 가나 싶은 지점이 있는데, 약간 진지한 독자라면 책을 던져버리고 싶을지도 모르게 만드는 개황당한 상황 설정.  

그 정도는 아니지만, 결말도 보통의 미스터리와는 좀 다르다. 첫챕터부터 예상할 수 있었던 거긴 하지만, 그래도 설마 했는데, 설마 역시 였다.  

책 내용보다 책 내부 디자인이 겁나 섬찟했다. 어느 부분이 어떻게 섬찟했는지는 입다물기로 하고..   

바텐더인 주인공이라서, 바에서의 이야기와 칵테일 이야기가 아주 간간히 나오는 것도 조금 볼만 했다. 전체적으로 주인공이고, 조연이고, 그닥 인상깊은 캐릭터가 없다.  

멋진 줄거리, 그저그런 내용과 결말   

※ 바 장면이 인상적인 미스터리, 만화, 일본드라마

 

  

 

 


곤도 후미에 <토모를 부탁해>

작가 이름이나 저 저 표지나 내 반취향일 가능성이 높지만, 곤도 후미에는 언젠가 한 번 꼭 읽어봐야지 했던 작가다.  

왜냐하면, 언젠가 일본 미스터리 매니아와 업계 사람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어뜬 남자가 혼자 유일하게 곤도 후미에 노래를 부르는거다.

매니아가 그렇게까지 재미있다고 이야기하는 정도면, 별로라도, 나는 같은 매니아로서, 그/그녀의 취향과 애정을 존중해서 전혀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읽어보고 싶고, 읽고 별로라도, 어떤 매니아가 정말정말 좋아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 책의 점수는 떨어지지 않아. 여전히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친구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얼어붙은 섬>부터 읽을껄,
20세로 이제 막 성인이 된 여자애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귀엽고 달달하고 읽을수록 사랑스러운 이 소설을 먼저 읽어 버렸다.

<얼어붙은 섬>과 <새크리파이스> 당장 주문할 정도로 <토모를 부탁해>는 사랑스럽고, 군데군데 지뢰처럼 맘에 퍽- 와닿는 글들이 있는 책이었다.  


세가지 단편이 나오는 단편 연작인데, 책 제목인 <토모를 부탁해>는 단편 제목에 속해 있지 않다.  
토모는 유기견. 첫 단편부터 제목이 '강아지 독살 사건'이어서 이 책 포기할 뻔 했다. 나처럼 동물학대 나오는 이야기 질색팔색하는 사람도 이 정도는 읽을만 할꺼다. 일단 여기 나오는 '안'과 '토모' 가 무지 사랑스러운 녀석들로 맘 아픈 장면들은 잊게 해준다.  

곤도 후미에의 감수성에 감탄한다. 굉장히 섬세하다. <토모를 부탁해>가 특히 그런류라고 하는데, 작가의 다른 소설 얼른 읽어보고 싶다.  

여기 나오는 구리코는 프리타, 동생은 삼수생 (잘나가다 왕따 당하고, 집에서 부모고 누나고 눈치보는 일견 잔인한 면모도 있는 히키코모리)다. 구리코는 론도라는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미래를 걱정하고, 같이 알바하는 유미타에게 반하기도 하고, 구다니에 노인과 몰래 우정을 키워나간다.  

겨우 스무살 주제에 ^^ 귀엽기도 하고, 나도 저랬지 싶기도 하고, 아직도 내 안에 이런 모습 남아 있지 하는 마음도 들고  

   
 

지금 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 일도 육체노동이라서 몸은 피곤한데, 왜 그런지 한밤중에 자꾸 눈이 떠진다. 아침에도 깜짝 놀랄 만큼 이른 시간에 깨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이런 게 나이를 먹는다는 건가,'

어머니 앞에서 그런 말을 하면, 이제 스물하나에 별 소릴 다 한다며 배를 잡고 웃겠지. 그래도 열여덟, 열아홉때와는 확실히 무언가가 다르다.

론도에서 일하는 파트타이머인 무라사키 씨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서른이 지나면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이십 대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구리코는 앞으로도 내내 나이 먹는 걸 의식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걸까,
사십 대가 되면 삼십 대를 그리워하고, 쉰을 넘기면 사십 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늙어간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어린 것들의 웃기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다듬어진 이야기로 이 서른 넘은 언니를 공감하게 만드는 구리코
뒤에 열 일고 여덟의 풋풋한 후배를 부러워 하는 이야기도 나와서 좀 웃었다. 이건 진지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스물 한 살의 고민에 이미 여유로울 수 있는 나이다. 웃을 수도 있고. 쳇, 그렇게 좋기만 하지는 않다.  

   
 

"울지 마라, 이제 클 거야."
그 말에 구리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은 아직 아팠지만, 마음에 가득 차 있던 슬픔이 조금씩 어딘가로 흘러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에도 배수구가 있는지 모른다. 구리코는 그리 생각했다.  

 
   

마음에 배수구가 있으면 좋겠네. 슬픔만 흘러가는게 아니라, 추억도 흘러가겠지. 추억따위, 과거따위   

   
  "철저하지 못하다는 건 결코 칭찬받을 만한 일은 아니야. 마에카와 양이 머리를 묶지 않은 것도 분명 잘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수갑을 채워 연행해 갈 정도의 죄는 아니지. 하지만, 그 철저하지 못하다는 것을 죄로 몰아가겠다는 생각 자체가 악의라는 거지. 자기 일에 철저하지 못한 것보다 그쪽이 훨씬 무거운 죄야."
그렇게 말하고 구니에다는 설핏 웃었다.
"물론 악의를 가졌다는 것만으로 사람을 심판할 수는 없지만 말이네."
  
 
   

소설 속의 A는 악심을 행동에 옮겨 '악의'를 증명하고 말지만, 나 역시 철저하지 못한 행위에 짜증을 많이 내는 편이고, 그 소악심들이 모여서 악심이 되면, 설사 행동에 옮기지 않더라도 '철저하지 못한 것'보다 나쁘다. 는 이야기?  
 
악심 vs. ( 한심이 or 규칙위반 )+ 젊은 여자애 특유의 오만  

뭐, 요런 에피소드  

   
 

  이슥한 시간에 방문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던 구리코는 벌떡 일어났다. 득득 문을 긁는 듯한 소리와, 또 다른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구리코는 방문 앞으로 가서 귀를 댔다. 다시 끙끙거리는 콧소리가 났다. 구리코는 살포시 웃고서 문을 열었다.

안이 거기에 앉아 있었다.

슬플 때나 외로울 때 안은 무어라고 형용할 수 없는 콧소리를 낸다. 그것은 누가 들어도 외롭다는 걸 알 수 있는 소리이고, 사람의 울음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왜 그러니?"
쭈그려 앉아 안의 얼굴을 들여다보자, 안은 구리코의 배에 얼굴을 비벼댔다.

이런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을 위로하러 와주었는지도 모르겠다고 구리코는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깨달았다. 안은 혼자 자는 것이 조금 외로웠을 뿐일 게다. 토모는 꾀바르게 마코토의 침대를 자기 침상으로 삼고 있다. 안은 마코토가 조금 무서운지 자진해서 그 방에 들어가는 일은 없고, 부모님은 침실에 개를 들이지 않는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이제까지도 안은 때때로 구리코의 방문 앞에서 낑낑거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리가 워낙 작아서 잠들고 나면 알아채지 못했겠지.

"안, 외롭니?"

다시 한 번 안은 코를 끙끙거렸다. 구리코는 그 따스한 몸을 안고 눈을 감았다.
하느님은, 외로울 때면 이렇게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살아가도록 인간과 개를 만든 게 틀림없다. 구리코는 그리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슬플 때의 개의 목소리와 인간의 목소리가 이토록 닮았을 리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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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우 2010-09-02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곤도후미에~ 저는 새크리파이스를 인상깊게 읽고 그녀를 주목(?)하고 있었는데.
나머지 책들이 너무 소녀취향의 표지라서 괜찮을까 좀 주저되더라구요.
사랑스럽고 달달한 이야기가 심하게 끌리는 날도 있으니까, 저도 나머지 두 권을 질러야겠어요.
잘 읽고 갑니다. ㅎㅎㅎ

하이드 2010-09-02 11:41   좋아요 0 | URL
저도 표지 때문에 절대 살 생각 없었던 작가에요. ㅎ
저는 달달한 이야기 별로 안 좋아하는데, 게다가 소녀와 여인 사이 스물 한 살 막 이런 주인공이라니; 게다가 이 책 착하기 까지 해서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이었으니 새크리파이스와 얼어붙은 섬은 당장 주문하게 되더라구요. ^^

소영 2010-09-0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히가시노게이고 팬으로써 다잉아이...실망만 했네요
묵직한 감동도 없고,호러인데 무섭지도 않고..ㅜㅜ
그냥 검증된 작품만 읽는게 나을 것 같아요

하이드 2010-09-0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대부분 읽으면 실망하는데 ^^; 꾸역꾸역 읽고 있어요. 왤까, 왤까


moonnight 2010-09-02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가시노 게이고는 왠지 끌리지 않는 작가라 좋다, 재미있다 말은 들어도 읽지 않게 돼요. 뭔가 2프로 부족하단 느낌이. ;; 곤도 후미에는 몰랐던 작가인데 하이드님 덕분에 새롭게 발견하네요. 표지는 영 마음에 안 들지만 -_-;;;; 당장 읽어봐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