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뚜루까츠키라는 생소한 이름의 <세상이 끝날때가지의 10억년>이란 책을 샀던 것은 ... 고백하건데, ... 이 책에 '최강 더위류 라인' 이 있다는 말을 들어서였다.
더운걸 죽도록 싫어하고 (여기까지는 괜찮은데), 추운걸 죽도록 좋아하는( 변태스럽게스리) 내가 그 말에 혹해서 이 책을 산 건 .. 왜?
비가 오락가락 했을때, 초낙관적이게도, 더위는 갔군. 가을이군. 생각했던 나를 비웃듯
전국은 폭염주의보로도 모잘라 폭염경보로 기상청의 한반도 지도는 불이라도 난듯 온통 빨갛다고. 밤에도 25도를 웃도는 열대야도 계속 된다고.
어제 새벽 3시경에는 올 들어 벌써 일곱번째로 최고 전기사용량을 찍었다고. 열대야에 짜증을 내며 새로이 에어컨을 켜 최고전기사용량에 일조한 사람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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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 년 만에 처음이라는 찌는 듯한 6월의 더위가 도시를 집어삼켰다. 달아오른 지붕 위에선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고 창이란 창은 모조리 활짝 열린 채였다. 기진맥진한 나무들의 흐느적거리는 그늘 밑 작은 벤치 위에서는 노파들이 땀을 쏟으며 녹아 내렸다.
지오선을 넘어선 태양의 열기는 더위에 오랫동안 시달려 온 책들의 맨 뒷장까지 침투해 들어왔고 책장의 유리문과 찬장의 광을 낸 목재 문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벽지 위에서는 열 그림자가 화가 난 듯 뜨겁게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오후의 마지막 열 폭격이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으레 오후 한 시경이면 맞은 편의 12층짜리 건물 위에서 미쳐 버린 듯한 태양이 죽음의 신처럼 건물의 모든 방을 속속들이 뚫고 들어왔다.
- 아르까치 스뜨루가츠끼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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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들을 녹아내리게 하고, 책들의 맨 뒷장까지 침투하는 목재 문을 사정없이 내리 치는 더위의 모습은 뭔가 이글이글
난 예전에 더우면 하늘을 저주하곤 했는데, 아주 쓸모없고, 더위를 삭히는데 1g도 도움되지 않는다.
덥다고 하늘에 삿대질을 하고, 얼굴을 있는대로 찌그려봤자..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딱 하이드는 헥헥
더위의 한계를 뚫고 '참고, 견디게' 해 주었던 더위는 방콕의 더위였다.
내 방에 콕할때 방콕이 아니라, 어느 봄, 첫번째 방콕 방문. 방콕 시내를 돌아다니다 황금빛으로 화려한 궁궐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얼굴이 따끔따끔하고 옷은 쥐어 짜면 하얀 소금기를 남기고 땀이 질질 흐를만큼 더웠다. 40도 정도였던걸로 기억하는데, 40도에 관광한답시고 돌아다닐 수 있을까.를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40도가 아니였을지도 ..
궁궐을 나와 궁궐 앞 나무 그늘에서 신문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는 제이와 시내의 어느 허름한 상가 건물의 불법 시술소 같이 생긴 마사지샵에 들어가 한시간 넘게 따끔따끔한 얼굴에 열기를 죽이는 무언가를 치덕치덕 바르고, 토닥토닥 맛사지 해주며 제이와 태국말로 뭐라뭐라 떠들던 그 때, '방콕은 어쩜 이렇게 더울까' 생각하며 스르르 잠에 빠졌던 때가 생각난다.
한국으로 돌아와 맞게 된 사상 최대의 더위는 '견딜만한 것'이 되었다.
요즘의 더위는 그때의 끈적끈적함과 닮아 있다.
로사 몬테로의 9월 여름, 데지레 클럽은 가지 않으려고 발광하는 늦여름에 대한 이야기... 일리가.
여자 둘과 남자 둘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 배경은 한물간 볼레로 가수가 나오는 망하기 직전의 클럽. 시간적 배경은 9월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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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더워 죽겠네...."
공기는 후덥지근했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오후의 공기는 그녀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고, 그녀의 몸은 동물적인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가운 허리띠를 풀어 옷을 헐겁게 하자 앞섶이 벌어지며 가슴이 드러났다. 주근깨가 점점이 뿌려진 풍성한 가슴이 브래지어 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 안토니아는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 땀이 솟는 느낌 외에는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 로사 몬테로 <데지레 클럽, 9월 여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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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끈이주걱같이 끈덕끈덕한 더위다. 열기다. 더위로 이성을 무장해제 시키고 뱀의 뇌를 드러나게 하는 그런 더위다.
더위로 정줄을 놓을 때면 나는 '여름잠 자는 뱀' 과 같은 기분이다. 선풍기 바람에 몸을 드러내고 가만히 가만히 누워 있는거다.
다른 건 몰라도 발만은 느낌상 뱀과 같은 변온이라 더워지면 발도 뜨거워지고, 추워지면 발도 겁나게 차가워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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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 냄새가 진동하는 외양간은 조옹했고, 공기는 목에 걸릴 정도로 깔깔하고 굼뜨게 움직였다. 들여마셔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공기였다. 마치, 지금처럼. 단지 차이라면 도시의 더위가 외양간보다 더 심하다는 것이다. 더 더러웠기 때문이다.
- 로사 몬테로 <데지레 클럽, 9월 여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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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버윈의 <핫하우스 플라워>에서, 여자 주인공은 미친 더위의 멕시코 정글에서 환상의 아홉가지 식물을 찾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이 우여곡절이 책의 전체 내용) 다시 도시로 돌아오게 된 그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멕시코 정글에서 느꼈던 더위와는 또 다른 더러운 더위를 온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
지글지글 검은색 아스팔트 위에서 올라오는 지열, 부릉부릉 자동차 본넷 주위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뜨거운 차열, 사람열, 건물 안에 오물조물 모여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건물 밖으로 흉하게 내밀어져 열을 내뿜는 에어컨열, 더 더울줄만 알았지, 온도를 조절하는 길거리의 많은 나무들과 달리 더울수록 온도를 높이는데 일조하는 건물들
확실히 도시의 더위는 더럽다.
더워서 돌아버릴 것 같지만
책 속 더위를 찾아 퐁당 빠지는 '책으로 이열치열'
더 찾아봐야지. 더운 8월에서 도피해 더 더운 책 속으로 피서하지 말고, 탐서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