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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소설을 쓰려는 누군가가 있다고 치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SF 물도 하고 싶고, 미스터리도 하고 싶고, 정치 이야기도 하고 싶으며, 판타지도 하고 싶다. 인종 이야기도 하고 싶고, 너드nerd(매니아,오타쿠) 이야기도 하고 싶다. 가족 이야기도 하고 싶고, 사랑 이야기도 하고 싶으며, 아프리카 이야기도 하고 싶고, 저주 이야기도 하고 싶다. 그 모든 걸 다 한 책에 써보려고 해봤자 제대로 된 책이 될리가 없다.
그런가?
될리가 있더라.
푸쿠와 사파. 이 책은 아프리카에서 온 저주, 푸쿠로 시작한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의 주인공인 오스카는 꼴통에 찌질이다.
온갖 SF물을 섭렵하고,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요정어를 하며, 아니메와 닥터후, DC 코믹스와 마블을 꿰고 있는 오스카
140킬로의 거구에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이 삶의 목적이며, 여자에 화안-장. 한다.
이것이 오스카. 찌질이들에게도 따돌림받는 메가찌질이.라는 것은 오스카의 엄마인 벨리의 어렸을적 이야기이지만, 그러니깐 벨리가 환골탈태하기 전에 말이다. 메가찌질이란 말은 오스카에게 적절하다. 그의 인생에 '환골탈태'가 왔느냐,
그걸 판단하는건 독자의 몫이다. 나에게 묻는다면,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서 나는 '짧고' 에 방점을 찍겠다. 유한해서 아름답고, 짧아서 빛났다고. 아마 오스카 와오의 삶이 길고 길었다면, 놀라움은 희미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화자는 오스카의 누나 롤라의 '한 때' 남자친구이다. 존재감이 없어서 이름은 기억 안 ;;; 아, 유니오르던가, 유니오르다. 유니오르의 눈으로 바라본 오스카의 이야기. 유니오르는 작가를 투영한다. 그리고 롤라 이야기, 벨리 이야기, 라 잉카(오스카의 할머니) 이야기, 아벨레르 집안의 불행 이야기 등으로 전개된다. 친절하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왔다 갔다 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라 독자가 그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짜맞춰야 한다.
도미니카라는 나라는 저자의 나라이기도 하고, 이 책의 주 배경이 되는.. 아니 이 책의 주인공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존재다. 내게는 어느 성깔 있는 용병 투수가 온 나라. 정도로밖에 각인되어 있지 않았던 그 나라는 많은 중남미의 나라들이 그랬듯이 독재와 가난으로 멀지 않은 과거에 무시무시한 경험을 겪었다. 어느정도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고. 그 나라의 푸쿠, 푸쿠는 '저주'라는 말이다. 그 나라의 푸쿠는 오스카와 롤라, 그들의 엄마인 벨리, 그녀의 부모와 가족인 아벨레르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 푸쿠의 가장 뛰어난 제사장이 바로 트루히요. 독재자다. 푸쿠의 가장 뛰어난 제사장의 시절을 보내야했던 삼대
이 책은 또한 마콘도와 매콘도중 어느 것이냐?를 묻는 선택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마콘도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에 나오는 그 곳. 즉 마술적 리얼리즘의 붐세대를 의미한다)냐, 매콘도(붐세대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매너리즘에 빠지자 라틴 아메리카의 현재를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로 생긴 마콘도의 패러디)냐. 의 질문에 주노 디아스는
마콘도면 어떻고 매콘도면 어떻냐, 둘 다는 안돼냐.
멋진 답을 내주었다.
이렇게 우주적이고 환상적이고 현실적이고 찌질스럽고 꼴통스러운 이야기를 이렇게 잘 엮어내다니, 주노 디아스는 천재인 것이 틀림없다.
아, 그리고 이 책은 심지어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