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는 죽을 때까지 평생 하던 일을 계속했다. 즉 언제나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발자크의 『들나귀 가죽』이었다. 그는 "이 책이야말로 내게 정말 필요한 책이야"라고 말했다.
- 미셸 슈나이더 '죽음을 그리다'中-
해즐릿은 자신이 "클랜골른의 여관에서 셰리주 한 병과 식은 닭 요리를 앞에 두고 『신 엘로이즈』를 들고 앉아 있던" 날이 1798년 4월 10일이었다는 사실을 줄곧 기억했다. 롱펠로 교수가 대학에서 훌륭한 프랑스어 문체를 훈련하는 방법으로 발자크의 『상어 가죽』을 읽으라고 조언했던 것을 내가 기억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수잔 와이즈 바우어 '독서의 즐거움中' -
요즘 읽고 있는 책들 <토요타의 어둠>, <독서의 즐거움>, <죽음을 그리다>, <제인 구달 평전>
발자크의 <나귀 가죽>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서 독자교정을 보았던 책이다.(책 뒤에 이름도 나와 있다능;) 그래서 더 열심히 원본 비교해가며 읽었던 책.
그런 동기부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참 재미없게 읽었던 책; 말했듯이, 난 번역물의 듣도 보도 못한 순수 우리말 내지는 고사성어 같은거 좀 싫어하는터라. 안 그래도 읽기 깝깝한 번역물인데, 염상섭 놀이 할 것 까지는 없잖아. 앞으로 절대 못 잊을 '이현령비현령' 같은 말이 프랑스 고전문학 번역물에 나온다는 것이 좀 이해가 안 간다.. 그러니깐, 딱 저 단어만 가지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번역이 내 저런식이니깐.
무튼, 그런 인연과 반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책인데, 후에 읽는 책들에 이렇게 언급되면 그래도 반갑다.
나귀 가죽이던, 상어 가죽이던, 들나귀 가죽이던..
기억은 가물하고, 별로 다시 찾을 생각은 없는 성의 없는 포스팅이라 미안하지만, 저 '나귀 가죽'이라는 것의 '나귀'가 좀 애매한 단어여서 영어로 번역될때도, 그리고 우리말로 번역될때도 정확한 단어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상어'와 '들나귀' (???) 가 나왔으니, 이 다음에는 어떤 가죽이 나올까 기대된다. 하하


<나귀가죽>을 제외한 <죽음을 그리다>와 <독서의 즐거움>은 무지 재미나게 읽고 있다. 험험; 그래도 발자크의 책은 더 읽어보고 싶어- <골짜기의 백합>이라던가 <인생의 첫출발>이라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