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잭, 당신이 떠나고 나면 다들 서운해할 것 같아요."
나는 머리를 끄덕여 감사를 표했다.
" 안젤라가 감쪽같이 땜질할 텐데요, 뭐."
" 안젤라는 유능하고 의욕적이긴 하지만 한칼이 없어. 적어도 아직까진 말이죠. 그게 문제라고, 안 그래요? 신문은 사회의 경비견이라고 하는데, 우린 그 임무를 강아지들에게 맡기고 있어요. 우리가 평생 동안 보아온 그 막강한 신문들을 생각해 봐요. 부정부패를 들춰내고, 공익에 이바지한 그 신문들. 이 나라의 신문들이 이처럼 모조리 박살나면 이제 그런 일은 누가 하죠? 우리 정부가? 어림없지. TV나 블로그가? 말도 안돼."
우리의 매커보이는 책 시작하자마자 핑크레터를 받는다. (근데 왜 해고통지서를 애초에 분홍색 편지지에 써서 해고통지의 유래가 되었을까?) 무튼. 그렇게 잭이 떠나고 후임으로 들어올 초짜 안젤라. 신세대 기자다.
1인미디어, 파워블로거라는 말이 익숙해졌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 파워블로거란 명칭이 붙을 블로거가 몇이나 될까. 가끔 아무대나 가져다 붙이는 파워블로거라는 말이 초큼 부끄럽다.) 그로 인해 종이신문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온라인 버전은 유료와 무료, 반유료 반무료 사이에서 아직까지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전통있는 신문에서의 진지한 기사들, 기자를 업으로 삼고 프라이드를 삼고 있는 사람들의 생계를 위한 글과 블로깅은 그 차원이 한참 틀리다는 당연한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다.
"그럴 필요 없어. 그건 이제 네 기사야."
"아녜요. 선배님 이름도 올릴 거예요. 선배님의 질문으로 폭과 깊이가 있는 기사가 되었으니까요."
편집자가 원하는 폭과 깊이가 있는 기사. <LA 타임스>의 명성이 그 위에 세워져 있다. 벨벳코핀 안으로 들어온 첫날부터 우리 머리에 깊이 심어진 말이었다. 너의 기사에 폭과 깊이를 더하라. 사건을 일어난 그대로만 쓰지 마라. 그것의 의미를 설명하고 도시생활과 독자들 속으로 맞춰 들어가라.
나의 글쓰기는 생계를 위한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지만, '폭과 깊이'가 있는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한다.
<허수아비>는 역시 기대했던 대로 흥미진진한데, 거기에 더해, 기자로서의 매커보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크리스 앤더슨의 <프리>에서 본 공짜 세상의 연장에 있는 종이 미디어의 위기같은 거.

얼마전 펭귄에서 아이패드 시연하는 유튜브 동영상을 봤는데,
엄청 끌리긴 하지만, 역시 책의 표지를 만지고, 책장을 넘기고, 책들을 마구 쌓아 놓고, 그런 즐거움이 대체될 것 같지는 않다. 아이팟을 사지만 여전히 CD 플레이어를 좋아하고, 터치폰은 질색인 나는 어쩌면 의외로 아날로그파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