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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변화 - 상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일롱카, 페터, 유디트
여자, 남자, 또 다른 여자
소시민, 시민(신사), 하층계급
이런 구조의 이야기이다. 외국작가의 책이 많이 번역되어 나올 때는 분명 이유가 있다. 그것도 다소 생소한 국가인 헝가리 작가라면. 이 작품이 가장 좋을꺼라고 해설에는 나오지만, 뭐, 그건 산도르 마라이의 책을 앞으로 더 읽어나가면서 볼 일이고. 독특한 형식의 독특한 사랑 이야기다. 물론, 사랑 그 자체는 진부하다. 사랑이야기야 진부하지.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이라니, 그것도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뭐 이런 소재 한두번 봤나. 근데, 그게 다가 아니다.
이야기는 세 등장인물의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일롱카는 미국에서 막 온 오래 헤어져 있던 친구에게 자신의 결혼생활을 이야기하고, 페터는 그 이후의 일을 또 다른 친구에게 이야기하며, 그 이후의 일은 유디트가 드러머 남자친구에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각각이 같은 사건을 이야기하지만, 시간은 계속 흐르는 거.
하나의 만남이라는 이벤트가 각각의 입장에서 말해질때마다 변하면서 환상을 팍팍 깨주는지. 이게 '결혼의 변화'입니까?
너무 다른 세 사람의 모습에서 조금씩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세상에 서로 맞는 사람은 없어' 라는 진리를 온 몸으로 부딪혀 깨달은 일롱카
'삶의 외로움을 즐기고 포용하라'는 페터
'취할 수 있을 때 취하라는(take)' 유디트
사랑, 결혼에 대해 이렇게 꼬고, 저렇게도 꼬아보며 다양한 방식을 이야기하고, '외로움'이라는 주제에 강박이라도 느끼듯이 반복해서 이야기하며, 각각의 계급으로 인한 마찰과 배려 아닌 배려를 집요하게 이야기하는데, 그 '계급'이라는 것이, 사회적 계급만은 아닌 것이, 덜 사랑하는 사람. 연약한 사람, 소심한 사람, 일단 지르고 보는 사람, 꾹 참기만 하는 사람, 그들 모두가 '사랑' 이라는 괴물 앞에서 하층계급이었다가, 귀족이었다가. 그렇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그렇지. 꼭 '사랑'이 아니라도. '사랑'이라는 안경을 쓰고 보면 그 모든 것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저자는 그것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되게 재미있게 읽었는데, 리뷰가 이렇게 밖에 안 되네.
각각의 화자가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방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마음 너덜할때 남의 연애사 이야기 들으면서 멍때리고 있기 좋은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가난함과 부유함 사이에는 엄청나게 많은 단계가 있어. 그리고 가난한 정도도 얼마나 천차만별인 줄 아니? (중략)
나는 어떤 식으로든 삶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서 교육을 받았고, 그 사람은 무엇보다도 절도 있고 교양 있고 우아하게 살아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교육을 받았어. 시댁에서는 그 원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지. 이것은 정말 엄청난 차이야. -17-
네 시아버지는 나를 사랑했어. 언제나 그렇단다. 어느 한쪽이 사랑을 더 주기 마련이야. 그러나 사랑을 주는 편이 차라리 마음은 더 홀가분하단다. 너는 네 남편을 사랑하잖니. 마음고생은 할지 몰라도 그 편이 더 나아. 나는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감정을 견뎌야 했단다. 그게 훨씬 더 힘들어. -81-
전체적으로 이미 시들해져서 더 이상 위급해 보이지 않았어요. 세상에는 홍수나 야만적인 힘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관성의 법칙도 존재하지요. 그 법칙을 존재하십시오. -217-
외로움이 곧 고통을 의미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아. 나는 오롯이 혼자 있을 때보다 사람들 가까이에서, 사교적인 모임에서 더 많은 고통을 겪었어. 어른들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혼자 어두운 방을 지키는 어린아이처럼 누구나 한동안은 외로움을 징벌처럼 느끼기 마련일세. 그러나 언젠가는 어른이 되고 외로움이나 의도적인 진정한 혼자 있음은 징벌이나 괴팍함, 상처 입고 무력하게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유일한 인간다운 상태라고 깨닫게 되네. -292-
사람들이 이따금 선뜻 악한 짓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착하다고 말했어. -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