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읽는다 - 강상중의 청춘독서노트
강상중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강상중이라는 재일교포 학자가 그의 치열했던 청춘시절을 관통한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경식의 미술 이야기가 그냥 미술 이야기로만 다가오지 않듯, 그의 청춘 이야기도 그저 흘러간 나의 청춘이나 너의 청춘과는 좀 다르다.  

그의 부모는 한국인, 어머니는 진해 출신이고, 아버지는 마산 출신이다. 그들이 일본 구마모토에 자리 잡고 나서 나가노 데쓰오가 태어났다. 일본에서 태어난 그가, 강상중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된 계기와 시기는 그의 청춘에 있다. 이름, 정체성을 바꾼다는 보통 사람은 겪기 힘들 일을 청춘에 겪어낸 것이다.  

스무살때(70년대다) 한국에 처음 가 보게 되고, 정확하게 어떤 이유로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했는지는 이 책에도 <고민하는 힘>에도 나오지는 않지만, 자이니치(재일한국인)로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그 회색지대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다 한국 방문 후 고국, 그렇다. 일본에서 태어나 20여년만에 한국땅을 밟은 그는 처음부터 한국을 고국이라 부른다. 고국의 상황을 보고, 느낀 바가 있었고, 돌아와서 정치사를 공부하기로 한 대학시절, 그는 일본의 한국인들을 만나 교감하게 된다.  

<청춘을 읽는다>, 이 책은 그의 청춘에 놓여 그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영향을 미친 다섯 권의 책을 이야기하면서, 그 자신의 역사, 한국과 일본의 정치사, 미래에 대한 염려와 예측, 한일문화 등에 대한 촌철살인의 글을 남기고 있다.  

그가 이야기하는 다섯 권의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 보들레르의 <악의 꽃>, 지명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마루야마 마사오 <일본의 사상>, 그리고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이다. 

읽어 본 책은 보들레르의 시집 정도이고, 지명관과 마루야마 마사오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저자들이긴 하다. 막스 베버의 책은 평소라면 읽을 엄두도 생각도 안 했을 책이고.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 그 중에서도 특히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그의 애정은 대단하다. 나쓰메 소세키는 그가 살았던 구마모토 출신이고, 일본의 국민작가이다. 그의 '고민', '청춘', 그러니깐, 그가 평소 가장 큰 화두로 두고 있는 것이 나쓰메 소세키와 베버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고민하는 힘>을 읽어보면, 그는 일찍 죽어 노년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없는 것을 빼고는 온 세상의 모든 문제에 나쓰메 소세키라는 답을 제시한다. 그 부분은 좀 놀랍다. 무튼, 소설 속의 주인공과 작가를 통해 제시하는 답이라, 그 세계에 익숙한 나로써는 반갑고 귀에 쏙쏙 들어오긴 하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는 시골에서 처음 도쿄로 나간 산시로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많은 소설과 산문 중에서도 강상중은 이 '산시로'라는 인물과 자신의 처지를 비슷하다 여긴다. 어린시절 동경하던 동경, 스무살에 드디어 동경에 입성하나, 흔들리는 도시, 새로운 시대. 나쓰메 소세키가 지식인으로서 가졌던 근대에 대한 고민은 백년이 지난 지금, 역시 새로운 문화, 발달하는 기술사회에 비해 더딘 속도의 인간이라는 것과 닿아있다. 저자는 백여년간 고민과 해결 없이 멈춰져 있던 세상이 다시 돌아간다.고 말하고 있다. 어린 시절 구마모토와 70년대 서울은 '가는 곳마다 피와 땀과 눈물, 오물을 배출하며 몸부림치는 듯 보였고, TOKYO와 같은 근사함도 풍요로움도, 휘황한 광채도 없으나, 필사적으로 살아가려는 사랆들의 생생한 숨결과 온기가 있는, 나 이외의 다른 무언가에 내 모든 것을 걸어보겠다는 격렬한 에너지가 있는' 곳이었으나, TOKYO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산층이라는 것에서 고만고만한 만족을 찾고 있던 'TOKYO'에서는 썰물이 빠져나가듯 정치의 계절이 막을 내리고 진부함과 평범함이 신조가 되어가고 있는 듯 했다. (중략)지금 이대로가 뭐가 나쁘단 말인가, 일본인이란 정말 좋은 거야... 대체로 이런 암묵적인 합의가 성립되고 '평범한 결론'이 젊은이들의 새로운 상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상식이라는 녀석과 작별을 고할 때, 자유라는 이름의 티켓을 손에 쥐지, 봐, 해피하잖아. 마이 컵 누들" 이 시엠송처럼 'TOKYO'는 '자유'를 구가하는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자유' 역시 그들이 살고 있는 사방 몇 미터의 세계에 한정된 것이다.  -51-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 다음에 나오는 책은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다. 그의 청춘시절, '마음의 어둠'을 대변해 주었던 보들레르의 시는 지금도 그의 청춘의 바로미터라고 한다. 이 책의 말미에 나오듯이, 쉰이 넘은 그는 여전히 청춘이고자 한다. 보들레르 편에서는 그의 대학시절에 대한 에피소드들과 당시 '김대중 납치사건'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은 박정희 독재정치 시절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당시 일본의 잡지에서 연재되었던 것을 책으로 만든 것이다. 저자가 지명관으로 밝혀진 것도 한참 후이고, 당시에는T.K.生으로 불리웠다. 1973년에서 1988년까지 일본 잡지 '세카이'에서 연재 되었던 그 기록은 당시의 한국 정치사, 일본, 한국과 일본에 대한 여러 사람의 피와 땀과 위험부담이 담긴 기록이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생소한 이름인데, 전후 일본의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지식인이라고 한다. '일본의 사상'은 그의 논문 등을 모아 둔 것으로 마루야마를 이해하는 적절한 입문서라고. 1961년에 나와 2007년에 85쇄를 찍고 있는 이 책은 저널리스틱하지만 학술적이고, 학술적이지만 저널리스틱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패전과 전쟁 체험의 잔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료라고 한다. 강상중은 이 책이 자신을 만들었다.고 하고 있다. 정치학자로서의 강상중을. 그는 이 책에서 모든 일에 '거리를 두는' '나만의 입장을 갖는' 법을 배웠다.  

마지막으로 그가 나쓰메 소세키와 함께 애정하는 사회학자 막스 베버. 독일 유학시절 방황할때 자신을 이끌었던 막스 베버. 어느날 우연히 친구에게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의 공통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는 나쓰메 소세키, 막스 베버, 그리고 백년후 지금의 '그 자신' 의 모습에 대한 연구와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생각거리가 많은 책이다. 글도 좋고, 열화당이라는 믿음직한 출판사에서 책도 잘 만들었다.
그가 이야기한 다섯권의 책은 모두 번역되어 절판되지 않고, 현재 팔리고 있는 책이다. 서경식의 글을 읽을 때의 애잔함과 쓸쓸함 보다는 끊임없이 고민하는 학자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한국인 최초의 도쿄대 교수, 일본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으로 배에 신문지를 넣고 다닌다는 그, 일본말을 하며, 일본말로 쓴 '고민'에 대한 책을 일본의 베스트셀러로 만든 한국 이름의 강상중.  

<고민하는 힘>과 한 책같이 닮아 있으니,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면, 둘 중 아무 책이나 먼저 잡아도 된다.   

청동포대기 속의 자유, 그것은 자유가 아니고, 청춘이 아니다. 라는 것이 이 책의 주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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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1-17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책을 연대순으로 읽고 있다가 그만 참지못하고 <마음>을 먼저 읽어버렸습니다. 하이드님 리뷰를 읽고보니 또 <산시로>가 궁금해지네요. 뒤섞지 말자고 다짐하는데도 말이죠.

하이드 2010-01-17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반딧불이님과 강상중 덕분에 소세키의 책들을 하나둘 모으고 있어요. 이전에 리뷰 보고 샀던 <나의 개인주의>에 이어, <마음>과 <나는 소세키로소이다> 를 샀어요. <그 후,>, <산시로>, <문>, <유리문 안에서> 등등 소세키의 책이 참 많더군요. 강상중의 책 중 <고민하는 힘>에는 소세키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와요. 덕분에 좋은 독서 시작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드려요. ^^

반딧불이 2010-01-22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드디어 산시로를 읽을 차례가 되었어요. 소개해주신 강상중의 책과 함께 읽으려구요. thanks to~

하이드 2010-01-23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으셔야할텐데요 ^^
땡스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