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력>을 먼저 읽고 싶었는데, 알라딘에서 책이 올 생각을 안 하는 관계로(힘주어서 째려보며) <청춘을 읽는다>를 먼저 읽게 되었다.
강상중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면, 부모는 경상도 사람, 아버지는 마산, 어머니는 진해 출신이다. 그들이 1931년 일본으로 건너와 일본 규슈 구마모토 현에 정착 (책 속에서 구마모토 현의 '토착성과 중앙에 대한 반골, 강고한 보수성' 같은 모순된 현민기질이 경상도와 닮아 있어서 더 잘 정착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학생운동인가의 문제로 도쿄대에 시험이 없어서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과정 수료. 서독 유학 후 국제기독교대학을 거쳐 현재 도쿄대 대학원 정보학환 교수로 재직중이다. 책 속에도 나오는데, 1972년 처음 서울 방문 후 느낀바가 있어 나가노 데쓰오라는 일본 이름을 버리고, 한국 이름 '강상중'을 쓰게 된다. 1988년 한국국적 최초로 도쿄대 정교수가 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 성향과 논리적이고 날카로운 언어 구사'로 많은 지지자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고민력>이라는 책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강상중에 대해 알게 되었고, <청춘을 읽는다>를 서점에서 보게 되어 구매. 독서하게 되었다.
책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이 책은 가장 믿음직한 두 출판사 중 하나인 '돌베개'에서 만든 책이다. (나머지 하나는 열화당) 이 출판사에서 만든 책들은 가격이 비싸도 언제나 수긍할 수 있는 그런 책들을 만든다.
전 일본 마이크로소프트가 생긴 이래 가장 젊은 사장이었고, 독서에 대한 다소 과격한 칼럼으로 매니아들을 확보하고 있는 나루케 마코토는 그의 베스트셀러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에서 '책은 종합예술'이고, '좋은 표지는 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마음'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표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책의 전체적인 만듦새에 해당하는 것이리라. '책을 커버로 판단하지 마라' 라는 말이 있고, '책표지 껍질론'을 펼치는 ^^; 강유원도 있지만, 나쁜 커버와 허술한 만듦새의 좋은 책이 있을 수 있겠지만, 좋은 커버와 정성들인 만듦새의 나쁜 책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돌베개'와 '열화당'과 같은 출판사는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무튼,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돌베개에서 만든 <청춘을 읽는다>는 표지도 인테리어도 흠잡을 곳 없다.
내부 페이지의 하단 1/4 가량이 비어 있다. 한 페이지에 16줄 밖에 안되는셈이다.(보통 21- 길게는 37,8줄까지 간다.)
편집을 헐렁하게 해서 16줄이 아니라 하단 1/4을 비워 놓은 파격적인 인테리어다. 인용부분은 표지와 어울리는 풀색이고, 각각의 책소개에 나오는 내지 역시 풀색이다.
하단 인테리어가 일견 종이가 아깝다거나, 페이지수 늘리려고 꼼수 썼다거나. 라는 이야기가 나올법도 한데,
일단 돌베개에 대한 나의 믿음은 잠시 접어둔다 하더라도 전혀 그렇지가 않다.
나로서는 하단을 비워둔 것이 책을 읽을 때 어떤 효과를 주는지는 모르겠고, (손으로 잡고 볼 때 글씨를 안 가리는 정도? 책을 읽으면서 메모? 같은 단순한 이유는 아닐테고 ^^;) 강상중의 글이 녹록치가 않아 (녹록치 않지만, 그렇다고 어렵게 쓴 글은 아니다.) 읽고 나서 남는 책은 페이지 수나 글자 수와는 상관없다는 것 외에도 디자인적으로 위화감이 들지 않고, 더 신경쓴 느낌이니 (역시 평판은 중요하다.) 좋기만 하다.
강상중이 청춘에 읽은 책, 강상중의 청춘을 읽는 책은 다음 다섯권이다.
<산시로>와 <악의 꽃> 정도를 빼고는 내가 평소 읽는 책들이나 관심가는 저자가 전혀 아닐 뿐더러, 그에 대한 지식도 없는 상태였으나, 잘 읽힌다. 죄다 보관함에 담아두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에서는 시골에서 도쿄로 나간 산시로와 구마모토에서 도쿄로 나간 자신의 처지를 대입하고 비교한다. 꽤나 동질감을 느꼈던지 산시로 이야기는 후에 다른 책들을 이야기할 때도 종종 나온다.
각각의 책과 강상중의 '청춘' , 그리고 지금의 강상중이 만들어지기 까지의 이야기,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일본의 정치적 상황등이 책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다.
책은 공부로 읽는 것보다 '생활'로 '삶'으로 읽는 것이 당연히 더 잘 와닿는 법이다.
각각의 책이야기에 대해서도 풀어보고 싶지만, 저자의 짤막한 압축된 글에 나의 두서 없는 긴 생각들이라 책 이야기는 앞으로 독서할 사람들에게 맡기도록 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읽었던 책에 대한 이야기로 페이퍼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보통 5-6권 정도의 책을 한꺼번에 읽는데, 어쩌다보니 강상중의 책과 미시마 유키오의 책을 비슷하게 시작하게 되었다. 강상중의 책은 5장으로 되어 있고, 미시마 유키오의 책은 4장으로 되어 있다. 책을 한꺼번에 읽는 것은 챕터로 나누기도 하고, 한번에 이만큼 읽고, 덮은 다음, 그 다음에 읽을 때는 다른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섞는데, 이 두 권의 책은 한장씩 한장씩 번갈아 가며 읽어냈다.
강상중의 책에 미시마 유키오 이야기가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강상중이 이야기하는 어린시절에서 청춘을 거치는 이야기 속의 시대와 장소에 미시마 유키오가 있었기도 하고,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은 '고백문학의 정수'라고 까지 불리우는 아마도 미시마 유키오 본인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그런 이유로, 머릿속에는 강상중, 산시로, 미시마 유키오가 한 인물처럼 범벅이 되어 버렸다. 초반에 그렇게 범벅이 되는걸 느낄수 있었지만, 중간에 놓아버리고 싶지 않아서, 부러, 고의로 가능한 겹쳐서 읽어버린 면도 없지 않다.
둘의 문체나 뭐 이런게 비슷한건 전혀 아닌데, 어떤 분위기.(아마 시대의 분위기일 것이다.) 가 두 책 모두에 흐르고 있어서, 그 느낌에 약간 중독된다고나 할까.
둘 다 꽤 얇은 책인데, 읽자 마자 한번 더 읽어보고 싶어지는 책들이었다. (내게는 거의 없는 일이다. 보통 책을 읽으면, 게임 클리어하듯, 바로바로 치워 버리고, 다음 책을 꺼내는데, 읽자마자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이라니.)
리뷰 쓰기 전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페이퍼에 풀어버린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리뷰에 쓰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미리 해두고 싶었다.
아, 잡담 하나 더 추가

오늘 서점 갔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
청춘의 독서의 색깔은 풀색이던가?
하는 잡생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