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인생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선을 긋는 문제이고,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지는 각자가 정해야 해. 다른 사람의 선을 대신 그어 줄 수는 없어. 물론 시도는 해 볼 수 있지만, 그래 봐야 소용없는 일이야. 다른 사람이 정해 놓은 규칙을 지키는 것과 삶을 존중하는 건 같지 않아. 그리고 삶을 존중하려면 선을 그어야 해."
인생이란건 본질적으로 선 긋기의 문제...
요즘 존 버거를 다시 읽고 있다. 아직 읽지 않은 소설들도 있지만, 초창기에 읽었던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부터. 이 내가 심지어 노란하이라이트펜(형광펜이 아니라, 개나리색의 하이라이트펜이다.)으로 줄을 그으면서 책을 봤다니, 도그지어를 만들며 봤던 기억은 나지만, 하이라이트펜이라니, 얼마나 오래전인가. 무튼, 처음 읽었을 때의 그 감흥이 아니라 당황하면서, 그간 나이도 먹었고, 경험도 쌓았고, 볼꼴 못볼꼴도 많이 봤는데, 왜? 읽어나가고 있다. 하이라이트를 그었던 낯선 과거의 나를 마주하면서.

찾아보니, 집에서 꾸역꾸역 찰스 디킨스의 원서들이 나온다. David copperfield가 있었고, Pickwick Papers가 있다. Christmas Carol도 있네. Great Expectations야 이번에 산 책이니깐 기억하고 있었고, 안 그래도 꺼내서 읽고 있다. 번역본이랑 같이 볼까 싶은데, 민음사 말고, 어디 딴데서 좀 안 나오나? 열린책들에서 디킨스를 좀 내주기를 원해요!
거의 처음으로 제대로 읽는 디킨스의 첫번째 책이 하필이면, <두 도시 이야기>였을까. 두 도시는 파리와 런던. 이야기는 프랑스혁명 직전이 배경이다. 디킨스 소설 중에서 가장 덜 유머스러운, 가장 덜 생생한 캐릭터에, 몇개 안 되는 정치소설. 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역시 재미있게 읽고 있는 걸.
어떤 느낌이냐면, 아주 성능좋은 탈 것을 타고, 씽씽 달리는 느낌이다. 평소에는 슝- 빠르게 가다가 커브가 나올때마다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솜씨 좋게 스피드를 더 내며 꺾어져서 위태위태하면서, 배꼽 아래가 짜릿해지는 기분. 부앙- 부앙- 부아앙-
장면묘사나 심리묘사들이 그러한데,
첫번째 급커브의 느낌을 받았던 건 '마을' 이다.
큰 술통 하나가 거리에 떨어져 깨졌다. 마차에서 짐을 부리다가 일어난 사고였다. 술통은 데굴데굴 굴러, 테두리가 터져나가 마침내 술집 바로 문밖에 부딪쳐, 호두 껍데기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곳으로 달려들어 포도주를 마시느라고 야단법석들이었다. 사방에 돌멩이들이 널려 있는 거칠고 고르지 못한 이 거리는 마치 접근하는 모든 생물을 분명히 절름발이로 만들 속셈인 모양이다. 빌어먹을 놈의 포도주가 그 거리의 군데군데에 흥건히 고이자, 포도주 웅덩이마다 밀고 밀리는 대소의 군중으로 둘러싸였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맞대어 바가지 모양을 만들어 가지고 들이마시는 이, 손으로 뜬 포도주가 손가락 사이로 다 새나가기 전에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는 여자들을 도와 마시게 해 주려는 자, 깨진 오지그릇 잔을 포도주 웅덩이 속에 처넣는 남녀, 머리에 썼던 수건까지 웅덩이 속에 적셔서 갓난애 입에다 대고 짜 먹이는 어머니, 포도주가 흘러가는 것을 막고자 조그마한 진흙 둑을 만드는 사나이, 높은 창에서 내려다보는 구경꾼들의 지시에 따라 이쪽 저쪽으로 뛰어다니며, 새로운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 포도주의 흐름을 막으려는 친구, 질척질척하고 거무스레한 통조각을 움켜쥐고 핥느라고 정신없는 사람, 그 통조각을 질겅질겅 씹는 데 열중하는 양반.....
(...기가막힌 장면이지만, 중략..) 포도주는 붉은 포도주였다. 그래서 그 포도주가 엎질러진 파리 생탕투안 문밖 좁디좁은 길거리는 시뻘겋게 물들여지고 말았다. 톱질하던 사나이의 손에 든 장작개비에 빨간 물이 들었고, 갓난아기를 달래던 아낙네의 앞이마에도 머리에 다시 동여맨 헌 수건에도 빨간 물이 들었다. 게걸스럽게 술통 조각을 물어뜯던 패들의 입 가장자리에도 범의 잔등 같은 얼룩이 져 있었다.
포도주가 또다시 거리의 자갈 위에 엎질러지고, 그곳의 많은 사람들을 새빨간 피로 물들일 그때가 바야흐로 다가오고 있었다. -60-
마을, 술집 앞, 포도주통이 엎질러진 에피소드는 붉은 포도주처럼 시뻘건 이미지로 격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페이지를 많이 넘겨, 시간이 많이 흘러 어느 아침
점점 날이 새어 마침내 햇빛이 고요한 나뭇가지 끝에 닿자 고개 너머에도 햇살이 퍼졌다. 햇빛에 비친 성안의 분수는 핏물로 변했고, 돌 얼굴들도 마치 피로 물들여진 듯이 보였다. 새들의 노랫소리가 드높은 하늘에 울렸다. 그리고 후작 나리의 침실의 비바람을 맞은 큰 창문턱에서 한 마리의 작은 새가 있는 힘을 다해 즐거운 노래를 지저귀고 있었다. 그 바람에 그곳에 있던 돌 얼굴은 자못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리고 아래턱을 떨어뜨리며 질렸다는 듯이 앞을 노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 성안은 상류 계급의 특성에 따라, 좀 늦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날은 완전히 밝았다. 먼저 쓸쓸히 걸려 있는 산돼지 사냥용 나이프가 첫 햇살을 받고 빨갛게 물들여지더니, 아침 햇빛이 차차 퍼지자 날카롭게 번쩍였다. -236-
디킨스의 소설에 워낙 색色이 없고, 빨간색이 강조되고 있는건지, 지금의 나에게 유난히 빨간색이 다가오는건지 모르겠는데, 이 부분들에서 가슴이 콩콩거렸다.
스에가나 타미오의 <색채 심리>를 오늘 막 다 읽었는데, 그 중 빨간색이 나타내는 것은 '원초적인 것' , '인간이 가장 먼저 의식한 색', '생명의 상징', '죽음의 공포를 초월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 의 의미라고 한다.
뭉크의 예를 드는데,
Scream
"나는 두 명의 친구와 길을 걷고 있었다. ... 일몰을 보고 있었다.... 하늘이 갑자기 피처럼 빨갛게 바뀌었다.... 나는 그 자리에 발걸음을 멈춘 채 다리 난간에 가까이 갔다. 굉장히 피곤한 상태였다... 검푸른 피오르드(협만)과 도시 위에는 피와 혀 같은 노을이 물들어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었고, 나는 남았다. 공포에 떨면서... 그리고, 나는 풍경을 뚫어지게 응시하면서 큰 외침을 들은 것이다." -뭉크의 일기中-

Weeping Nude
어린 시절, 다섯살 때 엄마가 결핵으로 사망하고, 수년 후 누나 소피에가 같은 병으로 죽었다.
뭉크의 그림에는 어린 시절의 연속된 슬픈 충격을 주제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육신의 사랑을 죽음에 의해 빼앗긴 기억. 더욱이 그것을 극복해 살아가려고 할 때에 넘치는 생의 에너지. 그것의 전체가 빨강색이 되어 그림 속의 하늘에 울려퍼지고 있다. 마치 궁극의 감정이 분출할 때 빨강이 파멸의 색이라고 말해 주고 있는 듯한 것이 뭉크의 그림이다.'
네? 아, 제가요, 지금 삼천포에 있거든요, 곧 갈께요. -_-;;
내가 이러니, 한번에 한 권을 읽을수 있을리가 없다. 뭉크 평전까지 꺼내 놓으니, 좀 직성이 풀리는군.
무튼, <색채 심리>에서 주로 예를 드는 것은 화가의 작품과 임상사례들이지만, 뒷부분에 괴테의 <색채론>이 나오면서, 문학 작품 속의 색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온다. 워낙 색의 조예가 깊은 괴테였기에 (지금까지 태어난 인간족 중에 가장 천재라지?) 그의 문학작품 속에 반영된 색깔들을 발견하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다.
그래서, '색'을 장치로 쓰는건 많은 창작자들이 이용하는 방법.이라고 하면,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서는 역시 신경을 쓰고 봐도, 칙칙하고 가난한 마을과 그에 대비되는 강렬한 빨간색. (그러니깐, 지금 반 조금 못 읽은 정도까지는)이 마음에 확 와닿는다. 음. 응, 이 책 어떻게 끝나는걸까.
스토리가 시간순이긴 한데, 몇 년 후, 또 몇 달 후, 이런 식으로 페이지를 휙휙 넘어가는지라, 완전 몰입이 안되긴 하지만 (그건 그냥 내가 어수선해서일수도;;), 찰스 디킨스의 글빨만은, 내가 왜 그동안 찰스 디킨스풍을 찾았던거지? 찰스 디킨스를 놔두고! 억울해할만큼 대단하게 휘몰아친다. .. 그러나 번역본은 .. 지금 읽고 있는 Great Expectations 첫부분 묘지에서 협박당하는 부분도 박력있긴 했어.


집에 <색채론>이 있는거 같기도 하고, 없는거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