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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수집하는 노인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현정 옮김 / 아고라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작가를 천재형과 노력형으로 구분한다면, 내가 생각하는 조이스 캐롤 오츠는 노력형에 가깝다. 그녀의 이야기는 범상치 않지만, 한문장, 한문장 술술 써 내려갔다기보다, 굉장히 고민하고, 숙고한 끝에 나오는 문장, 플롯인것 같다. 늘 감탄하지만, 아직 그렇게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미녀작가를 좋아하는데, 정이 안간다. 무튼, 그런 모순적인 감정을 가지고 JCO의 책이 나오면 사서 읽어보는 편인데, <소녀 수집하는 노인>은 내가 생각하는 JCO의 스펙트럼을 한층 넓혀준 작품임에 틀림없다.
이런 작품 굉장히 신선하다.
다섯명의 거장, 헤밍웨이, 헨리 제임스, 마크 트웨인, 애드가 알랜 포우, 애밀리 디킨슨의 말년의 모습, 더 정확히 말하면, 죽음 직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JCO가 만들어낸 허구의 장면들 속에 그 작가들과 관련된 '사실들'이 박혀 있고, 그 허구의 장면들은 무려 그 작가의 문체를 모방하고 있다.
헤밍웨이식으로 쓴 헤밍웨이의 죽음의 모습. 이런식.
다시 한 번 노력형작가라는 믿음을 굳혀주고, 노력 더하기, 천재성과 문학적 감수성/감각도 이 작품에서는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에 대한 평은 대체로 좋은 편이다. 다만, 이 작품집에서 JCO는 인간의 끝, 막장, 을 '거침없이' 다루고 있어서, 결코 해피앤딩이기 힘든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불편한 독자라던가, 다루어지는 거장들에 대한 고상한 존경과 숭배를 맘에 담고 있는 독자들, 그리고, 작품 곳곳에 '골고루' 묘사되는 '혐오스러운 장면'들중 어느 하나에라도 트라우마가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기가 꽤 괴로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강한 혐오를 드러내는 리뷰들도 종종 눈에 띈다.
이런 이야기들 읽기 편한 사람이 많겠냐마는, 나 역시 불편해하는 독자 중 하나지만, 책에서 눈을 떼기 힘들다. 좀 다른 얘기지만,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동물 애호가를 위한 잔혹한 책>을 읽고,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에 정이 뚤 떨어진걸로 모잘라, 한동안 찜찜한 맘을 떨쳐버리기 힘들고, 화가 났더랬는데, 그런 느낌을 책을 읽고 받는다면, 안 읽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마크 트웨인의 노년의 로리기질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 허구와 사실이 비비꼬인), 헤밍웨이가 넘버포(네번째 부인)와 산장에 살면서 자살을 기도하는 이야기, 헨리 제임스가 전시에 병원 자원봉사를 나가 팔,다리가 절단된 젊은 병사들에게 느끼는 사랑 이야기, 애드거 알랜 포우가 외딴 섬에서 등대지기를 하며, 기묘한 해상생물과 결합하는 이야기 (으엑-), 애밀리 디킨슨 레플릭서스(사이보그)를 사서 집에 두고, 묘한 감정을 느끼는 남자 이야기. 하나같이 역겨운 소재들이다. 사실, 소재만 역겨운게 아니라, 그 소재를 묘사하는 방식은 더 역겹다.
번역된 작품을 읽는 정도니 세세한 문체의 모방을 느끼기는 힘들었지만, 헤밍웨이의 건조한 문장들이라던가, 포우의 기괴한 소재, 헨리 제임스의 환상과 실제를 오가는 모습들에서는 묘사되는 거장들을 느낄 수 있었다. 다루어지는 거장들과 작품에 대한 더 많은 지식이 있다면, 더 많은 걸 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좀 아쉽기는 하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편할리 없다. 더구나 거장들처럼 인생의 피크를 누구보다도 높은 곳에서 맞이한 이들에게는 반짝이는 정상과 내리막의 골이 대비되어 더 비참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개인차는 상당할 것 같다.
가장 추한 모습들을 가장 존경받는 작가의 이름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에 환멸을 느끼거나,
나이브하게 쎄 라비, 그것이 인생이지. 라고 즐기거나.
무려 '이 가을에 읽을 책' 추천 리스트에 올렸던 책이다.
섣불리 추천했다가 들을 원망과 욕을 감수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