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이란건 꼭 작가가 정해야만 하는건 아닐지도 모른다. 판매를 생각해서 잘 팔릴법한, 눈에 쏙 들어오고 잊혀지지 않는 제목을 정하는건 마케팅 부서나 PR 부서에서 더 많이 관여할 수도 있다. 번역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번역서의 경우 계약에 묶여있지 않는 이상 '먹힐법'한 제목으로 바꾸어 내는 일도 낯설지만은 않다.  

근데... 그 제목 바꿀때 말이다. 
'먹힐법'하고 '팔릴법'한 눈길을 끄는 제목으로 바꾸어서 내는 것이
가끔은 경박하고, 몹시 부끄러운 경우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두 책의 경우, 책꽂이에 꽂아두기 민망한 제목의 이 책들의 원제는 기발하고, 독창적이기 그지없어서
볼때마다 제목을 뭣같이 바꾼 출판사가 원망스럽고 짜증난다.   

알리사 발데스 로드리게즈의 <The Dirty Girls Social Club>은 보스톤대학 신방과를 나온 여섯명의 동창생 이야기이다.
라틴 아메리카계 1.5세인 그들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되는데, 그 여섯명의 시점에서 번갈아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재기발랄한 문장, 좀 많다 싶지만, 어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개성있는 여섯명의 주인공들. 가정폭력에서 인종차별, 남녀차별, 동성애, 1.5세의 고민 등 여러가지 문제를 가볍지 않게 다루고 있다.

칙릿을 연상시키는 서른살 먹은 여자들을 꼬이는 제목 '서른 살의 다이어리'의 원제는 <The Dirty Girls Social Club> 리뷰에 쓴것처럼 제목을 거칠게 직역하여 '망할년 클럽'이라고 내기는 힘들지 모르겠지만, 바꾼 한국어 제목이 성의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제목이 부끄럽다고!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바뀐 제목의 책이었는데, 얼마전 신간 체크하다가 또 하나 발견  

 

독특한 제목과 표지의 <A Short History of Tractors in Ukrainian >

'비아그라 코미디'라고 불리우는 이 책은 여든살의 아버지가 삼십대 금발의 가슴큰 돈밖에 모르는 러시아 여자와 결혼하게 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을 코믹하게 다루고 있으면서, 그 이면에 노인문제, 외국인 신부 문제, 이민, 불법체류자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우크라이나어로 쓴 트랙터의 짧은 역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책을 다 안 읽어봐서 모르겠다.

다만, 이런 독특한 제목의 책을, 책꽂이에 꽂아두면 꼭 역사책 같아보이기도 하고, 우크라이나어책 같기도 하고, 트랙터의 역사책 같기도 할 이 사랑스러운 제목이 평범하고 우악스럽게 바뀌어 버렸다는 것은 몹시몹시 유감이다.  


 

 

 

 

 

 

적고보니 둘 다 멋진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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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2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09-10-2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글을 읽으니 오래전에 한번 공론화 되었던 외화의 제목 번역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나네요.예전에는 외화 제목이 모두 한국어로 번역되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냥 외국 제목 그대로 하는것이 대세가 되었지요.
위에 나온 것처럼 The Dirty Girls Social Club을 그대로 직역해서 '망할년 클럽'이라고 번역하면 아주 어색할 제목이 영화에도 많은데 이것 저것 신경쓰기 귀찮아서 그냥 외국어 제목을 쓰는것이 정착 된것 같습니다.
그래도 책의 경우는 아직까지 착실하게 한국어로 번역되는데(하이드님 말씀처러 호볼호가 갈리지요),만일 영화같은 추세가 출판계에도 들어온다면 A Short History of Tractors in Ukrainian는 아빠가 결혼했다가 아니라 어 쇼트 히스토리 오브 트랙터 인 우크라이나로 쓰여질 날도 얼마 남지 않을것 같습니다.ㅎㅎ 설마 이렇게 될까요??